박상표 칼럼 돼지독감보다 정리해고가 더 무서운 나라

박상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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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프트21> 12호 | 발행 2009-08-15 | 입력 2009-08-13

올봄 미국과 멕시코에서 시작된 돼지독감의 유행이 여태껏 꺾이지 않고 있다. 대유행(pandemic) 6단계를 선언한 세계보건기구는 지난 7월 초부터 공식 피해 집계마저 포기할 지경에 이르렀다. 8월 4일까지 돼지독감으로 사망한 사람은 최소한 1천1백54명에 이르며, 감염자로 확인된 사람도 적게 잡아도 16만 2천3백80명을 넘어섰다. 한국의 감염자 수도 1천7백 명을 훌쩍 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감염자 1천7백 명 중에서 사망자는 아직까지 단 1명도 없다.

반면 쌍용자동차 정리해고와 총파업 과정에서 무려 4명이 가슴 아프게 희생됐다. 지난 5월 27일과 6월 11일에 각각 1명씩 조합원 두 명이 심근경색으로 목숨을 잃었다. 7월 2일에는 희망퇴직을 신청한 노동자가 자신의 승용차에서 연탄불을 피워 놓은 채 자살했다. 7월 20일에는 옥쇄농성에 돌입한 노조 간부의 아내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노동자들은 이미 그 답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정리해고는 더 많은 살인을 예고하고 있다”며 절규했다.

그렇다. 한국은 돼지독감보다 정리해고가 더 무서운 나라다. 현실적으로 돼지독감으로 죽을 가능성보다 정리해고로 죽을 가능성이 훨씬 높은 야만의 땅이다. 정리해고의 배후에는 게걸스럽게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의 탐욕이 숨어 있다. 탐욕스러운 자본은 대테러진압용 전기충격총 ‘테이저건’과 발암의심물질을 가득 담은 최루액, 방어무기가 아니라 공격무기로 둔갑한 방패와 곤봉 등으로 무장한 경찰력이라는 든든한 스폰서를 두고 있다.

자본과 공권력 사이의 스폰서 관계는 최근 낙마한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 인사청문회나 삼성 X파일의 떡값 리스트 등을 통해 조금 알려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쌍용자동차 사태처럼 노골적으로 그들의 관계가 공개된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사측과 경찰이 합동작전을 펼쳐 농성노동자들의 인권을 침해한 사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사측은 단전, 단수, 의료진 차단 등의 반인권적인 조처를 취했으며, 경찰은 “물과 식량을 차단하라”는 문건을 작성한 사실이 발각됐다. 쌍용자동차 사측이 7월 27일 의료진 출입을 전면 차단했음에도 이명박 정부는 모르쇠로 일관하다가 8월 6일에야 뒤늦게 한승수 총리가 지시해 의료진의 출입과 식수의 반입을 허용했다.

전문가들은 국내에서 돼지독감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은 것은 보건당국의 예방대책이 잘 작동했기 때문으로 판단하고 있다. 보건당국의 조기진단, 조기격리, 조기치료 정책이 적절했다고 볼 수 있다. 돼지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감염된 환자들을 빨리 찾아내서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되지 않도록 격리하고 감염 초기에 치료약을 투여한 것이다.

자본의 스폰서

그런데 정부는 왜 쌍용자동차 사태에서는 노동자들의 희생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한 적절한 대책을 세우지 못했는가? 국민의 인권과 생명을 지켜야 할 정부가 쌍용차 사태에 공권력을 투입한 것 외에 모든 대책에서 수수방관한 것은 과연 누구의 이익을 옹호하기 위함인가? 정부는 왜 노동자들의 농성을 폭력적으로 진압하듯이 이른바 ‘먹튀 자본’으로 악명이 높은 상하이차에 공권력을 투입하지 않았을까?

쌍용자동차 정리해고의 직접적인 원인은 헐값 매각과 부실경영에 있었다. 헐값 매각은 노무현 정부가 주도했다. 당시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과 이희범 산업자원부 장관은 중국을 방문해 중국 정부 인사들과 쌍용차 투자 문제를 논의했다. 이들이 논의를 시작한 바로 다음 날 상하이차의 헐값 인수가 시작됐다. 이후 상하이차는 국책은행인 기업은행 등으로부터 4천2백억 원이 넘는 엄청난 금액을 지원받았으나 투자와 연구개발은 등한시한 채 엔진기술 등 핵심기술 이전과 유출만을 일삼았다. 당연히 영업이익은 줄어들고 경영은 부실해질 수밖에 없었다.

일반적으로 경제 위기가 닥치면 자살과 살인, 심장마비에 의한 사망 건수가 늘어난다. 따라서 정부는 공공지출을 증가시킴으로써 실업과 관련된 자살을 미리 막을 책임과 의무가 있다.

최근 의학전문지 <랜싯>에는 영국 옥스퍼드대와 런던대 연구자들이 1970년부터 2007년까지 유럽연합 26개 국의 자료를 분석한 ‘경제 위기 시 공중보건의 영향’에 관한 연구 결과가 실렸다. 지난 27년 동안 유럽에서는 실업률이 1퍼센트 상승할 때마다 65세 이하의 자살자 수가 0.79퍼센트씩 늘어났으며, 살인도 증가했다. 만일 정부가 실업보험을 비롯한 공공지출을 증가할 경우, 실업과 관련된 자살을 0.038퍼센트 줄일 수 있다고 한다.

가까운 일본의 통계만 보더라도 경제 위기 시 정부가 어떤 구실을 해야 하는지 분명하게 알 수 있다. 2009년 상반기 동안 일본의 자살자가 1만 7천 명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의 자살자 수가 역대 최고 속도로 증가한 것이다. 2009년 상반기에 일본 내 자살자는 2008년 상반기보다 7백68명(약 5퍼센트)이 증가했다. 일본의 전문가들은 이렇게 급증하고 있는 자살자는 경기 침체의 영향이며, 장기 침체에 특별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경제 위기는 아직까지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현재와 같은 경제 위기 상황에서는 앞으로도 기업의 파산과 정리해고가 언제 일어날지 모르고, 실업률이 줄어들 가능성은 희박하다. 정리해고가 살인이라는 반인권적인 비극이 더는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서는 정부의 공공지출이 4대강 삽질 같은 엉뚱한 곳이 아니라 실업이나 고용 대책 등에 적절하게 사용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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