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를 의심하는 이들을 위한 마르크스주의 ⑦ 국가자본주의와 사회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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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자본주의가 휘청거리자 각국 정부는 국가 개입으로 체제를 구출하는 데 혈안이다. 지난 20년 동안 시장이 최선이라는 말을 귀가 따갑게 들었는데, 이제 국가가 돌아온 것이다.

이런 상황 변화는 무슨 대단한 이론 때문이 아니라, 실용적 이유 때문이다. 오늘날의 위기는 국가가 자본주의의 작동에 필요한 규칙들을 정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되고 중요한 경제 주체로 직접 나서야 함을 보여 준다. 이런 상황 변화 때문에 사회주의자들은 딜레마에 부딪힌다. 만약 기업 파산과 국가 지원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분명히 사회주의자들은 국가 지원과 국유화를 선택할 것이다. 정신 나간 체제 탓에 기업이 파산하고 일자리가 사라지도록 놔둬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여기서 더 나아가야 한다. 마찬가지로, 국가가 사회주의의 동력이라는 환상을 품어서는 안 된다.

국가는 언제나 자본주의의 능동적 요소였다. 19세기 말에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사회주의자들이 국가의 이런 구실을 사회주의적 대안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국가 통제와 국가 생산이 사회주의라면, 엥겔스가 말했듯이 나폴레옹, 메테르니히, 비스마르크도 사회주의 운동에 포함시켜야 한다.

거기에다 오늘날에는 조지 부시를 포함해 더 황당한 자들도 추가해야 할 것이다. 2008년 가을에 미국 정부는 은행들을 서둘러 지원했다. 당시 미국 경제학자 누리엘 루비니는 부시, 헨리 폴슨[미 재무부 장관], 벤 버냉키[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가 “미국을 미국사회주의연방공화국으로 바꿔 놓은 볼셰비키 삼인방”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렇게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구제 금융과 국유화를 추진한 정부는 미국 역사상 자유시장 방임주의 이데올로기를 가장 맹신하는 정부였다.”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경고했음에도 일부 사회주의자들은 계속해서 자본주의와 사적 소유를 동일시하고 사회주의와 국가 소유 · 통제를 동일시했다. 이런 논리에 따라 그들은 스탈린 치하의 러시아 같은 사회를 사회주의로 여겼다. 당시 러시아에서는 사적 소유가 거의 허용되지 않았지만, 평범한 노동자들에게 러시아는 거대한 수용소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이것은 “사회주의 전통”의 [전체가 아니라] 한 조류였을 뿐이다. 다른 사회주의자들은 사회주의를 아래로부터의 노동자 권력으로 보았다. 이 전통에서는 민간 자본과 국가자본주의가 모두 적이다. 이 전통의 사회주의자들은, 국가가 자본주의 체제의 악영향을 통제해 체제를 구출하고 체제를 더 원활하게 작동시키는 방식을 두고 국가자본주의라고 불렀다.

따라서 이 전통의 사회주의자들이 러시아 혁명을 일으켰다는 것은 아이러니해 보일 수 있다. 사실, 1917년 러시아 노동자들은 민간 자본뿐 아니라 국가 자본에 맞서 싸웠고, 레닌은 유명한 팸플릿 《국가와 혁명》에서 사회주의자의 통제 아래 국가 권력이 강화되는 것이 곧 사회주의라는 견해를 비판했다. 오히려 레닌은 사회주의에서는 기층이 주도하는 민주주의를 통해 국가가 결국 사멸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1920년대에 러시아 혁명이 퇴보하고 노동자들이 권력을 잃어버리자 사회주의와 ‘국가자본주의’를 동일시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늘어났다. 러시아의 새로운 특권층은 노동자들의 이름으로 국가를 장악했지만, 다른 국가들과 경쟁을 벌이는데 자신의 권력을 사용했다.

그래서 엄청난 논리적 모순이 나타났다. 만약 사회주의가 국가 통제와 국가 소유라면, 사회주의는 세계 자본주의의 많은 지역에서 이미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흔히들 러시아를 그렇게 봤다. 또, 어떤 이는 중국과 쿠바를 사회주의라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렇게 본다. 제3세계 독재 국가들을 사회주의로 본 사람들도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자본주의 핵심부에서도 국가의 구실이 증대했다. 군산복합체는 국가가 준통제하고 ‘계획’하거나 때로는 완전히 통제하고 ‘계획’하는 것을 잘 보여 주는 사례다. 더욱이 전시에는 대다수 자본주의 국가들이 민간 부문을 축소시키거나 긴밀하게 통제했다.

흔히 1980년대와 1990년대에는 민영화 때문에 “국가”가 후퇴하고 “국가자본주의”가 약화했다고들 한다. 그러나 그것은 해괴한 방식의 ‘국가 후퇴’였다. 일부 이론가들은 “능력 개발 국가(enabling state)”를 주장했다. 이제 국가는 민간 부문이 더 잘 작동할 수 있게 해 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최상층 집단이 ‘민간기업’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국가를 강탈할 수 있는 능력만 커졌다.

그러나 그것은 이제 부메랑 돼 돌아왔다. 국가가 민간 부문을 구출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국가자본주의가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체제 구출”을 위해 국가 개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조차 이것이 사회주의라는 말에는 코웃음을 친다. 사회주의는 대다수 사람들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체제다.

다시 루비니의 말을 들어보자. “사회주의는 정말이지 미국에서 잘 실현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부자와 빽있는 자와 월스트리트를 위한 사회주의다. 이 사회주의는 이윤은 사유화하고 손실은 사회화한다. 그래서 미국 납세자들은 3천억 달러를 세금으로 내야 한다.”

러시아 사회주의자 니콜라이 부하린은 자본주의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잘 설명했다. 자본가 계급은 양쪽에 호주머니가 달린 코트를 입고 있는데, 한쪽 호주머니는 민간기업이라 부르고 다른 쪽 호주머니는 국가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자본가들은 필요에 따라 둘 사이를 이동한다. 오늘날 자본가들이 어디까지 이동할지는 불확실하다. ‘국가 대 민간’을 둘러싼 논쟁에서 진정한 핵심은 효율성이 아니다. 효율성의 모범이라는 은행들이 과연 효율적인가. 오히려 진정한 쟁점은 지배계급 정책과 그들간 갈등이다. 기업주들에게 중요한 문제는 체제를 구출하려면 그들이 얼마나 멀리까지 나아가야 하는가,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 자신이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를 것인가다. 은행들에서 그칠 것인가 아니면 울워스[호주의 대형 슈퍼마켓 체인]나 자동차 산업까지 손 봐야 할까?

사회주의자들이 논쟁을 벌이는 목적은 다르다. 부하린이라면 정말 중요한 것은 코트의 어떤 호주머니를 선택하느냐가 아니라 자본가들의 코트 자체를 벗기는 것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번역 이종길

맑시즘2017: 17년 전통의 국내 최대 마르크스주의 포럼 / 7월 20일(목) ~ 23일(일) / 장소: 서울 / 주최: 노동자연대 맑시즘2017: 17년 전통의 국내 최대 마르크스주의 포럼 / 7월 20일(목) ~ 23일(일) / 장소: 서울 / 주최: 노동자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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