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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장벽 붕괴 20년 특집 ④-2:
국가자본주의론 ─ 실천을 뒷받침하는 이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것을 보며 많은 좌파들이 사회주의는 실패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우리는 옛 소련과 동유럽 국가들이 국가자본주의이고 세계 체제의 핵심적 일부라고 봤다. 국가자본주의론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2차대전 승전 63주년 기념 군사 퍼레이드 - 옛 소련은 서방과의 군사적 경쟁의 논리에 종속됐다.

내가 1961년에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의 전신인 소셜리스트리뷰그룹(Socialist Review Group)에 가입했을 때 다른 좌파 동지들은 우리를 “국가자본주의론자들”이라고 불렀다. 이것은 우리가 국가자본주의를 좋아했기 때문이 아니라(우리 회원 중에는 이런 이유로 가입한 사람이 있다는 풍문이 있기는 했지만) 옛 소련과 중국, 동유럽 국가들이 모종의 사회주의 국가나 노동자 국가라는 생각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렇게 주장했다. 정부 정책을 놓고 토론할 때조차 투옥을 걱정해야 하는 곳에서, 노동자들이 국가를 통제하고 자유롭게 사회주의를 건설하고 있다고 어떻게 믿을 수 있는가?

이런 주장은 당시 영국에서든 국제적으로든 극좌파 사이에서 극소수 견해였다. 심지어 옛 소련과 중국의 여러 측면에 비판적이던 사람들도 이 나라들을 서방 자본주의보다는 낫다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국가자본주의론은 옛 소련과 동유럽 국가들에 대한 비판 이상의 것을 담고 있었다. “국가자본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한 덕분에 우리는 소수 중 소수가 됐다. 옛 소련이 사회주의가 아니라는 주장에 동의한 사람들 대다수는 옛 소련이 서방 자본주의와 매우 다른 종류의 사회라는 결론, 즉 옛 소련은 계급 사회이기는 하지만 지배계급과 경제 작동 방식이 자본주의와는 완전히 다른 사회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1930년대부터 트로츠키를 후원한 미국의 사회주의자 막스 샤흐트만은 이런 견해를 이론적 형태로 제시했다. 이런 견해는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도 녹아 있다.

이런 견해는 매우 위험한 실천적 함의를 담고 있었다. 이런 견해를 받아들인 사람들은 옛 소련이 서방 자본주의보다 질적으로 더 나쁘다고 생각했다. 이 논리를 그대로 따르면 서방 자본주의를 지지하고 따라서 옛 소련에 반대하게 되며, 그 결과 소련을 지지하는 좌파들에 반대하게 된다. 조지 오웰은 국가에 공산당 지지자 명단을 넘겨 줬고, 샤흐트만은 1961년 미국의 쿠바 침공을 지지했다.

체제의 경제적 동학

“국가자본주의” 이론이 이끌어 낸 결론은 매우 달랐다. 국가자본주의론은 동유럽 국가 지배자들이 경쟁 논리에 따라 국가를 운영한다는 인식에 근거한 이론이다. 동유럽 국가들은 비록 국내에선 경쟁이 없었지만 국제적으로는 서유럽 국가들과 경쟁했다. 시간이 갈수록 시장을 둘러싼 경쟁이 늘어나긴 했지만, 압도적으로는 군사적 경쟁이었다. 이런 상황은 서방 경제에서 기업들이 경쟁하는 것과는 달라 보이기도 했지만, 체제의 경제적 동학이라는 면에서는 같은 효과를 냈다.

동유럽 지배자들은 노동자들을 최대한 쥐어 짜내 만든 잉여를 산업 발전에 투입해야 이런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는 칼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묘사한 상황과 정확히 일치했다. 마르크스는 자본가들이 서로 상품 판매 경쟁을 하다 보면, 서로 “축적을 위한 축적”을 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스탈린 시절 강제노동수용소에서 일하는 어린 소년

축적 경쟁은 두 가지 결과를 낳는다. 한편으로 축적 경쟁은 대규모 경제 위기를 낳고 다른 한편으로 지배계급을 무너뜨릴 잠재력을 지닌 노동계급을 만들어 낸다. 제 아무리 억압적이고 전체주의적인 국가도 노동계급을 무한정 통제하지는 못하는 법이다.

국가자본주의론의 창시자 토니 클리프는 1947년에 쓴 책에서 이 이론을 대략적으로 제시했다. 우리는 1970년에 다음 10년을 전망하며 이 이론을 더 명확하게 다듬었다. 우리는 옛 소련이 결국 서방 자본주의가 위기에 빠지는 것과 같은 이유로 경제 위기가 발생해 무너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때까지도 전 세계의 3분의 1을 통치하고 있던 이른바 ‘사회주의’ 국가들을 포기한다는 것은 대다수 좌파들에게는 최악의 비관론에 빠지는 것과 다름없어 보였다. 그러나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자 더는 진실을 회피할 수 없었고, 그들은 대개 사회주의도 실패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반대로 우리에게 1989년에 벌어진 사건은 어떤 종류의 자본주의든 착취당하는 사람들의 대중적 저항에 취약하다는 사실을 보여 준 사례였다.

국가자본주의론에서 나오는 논점 하나를 더 얘기하겠다. 동유럽 국가들의 위기가 세계 체제 안에서 벌이는 축적 경쟁에서 비롯한 것이라면, 그들이 서방식 자본주의로 전환한다고 해서 이런 위기를 피할 수는 없다. 브레즈네프와 고르바초프 치하에서 시작된 소련 경제의 위기가 [이른바 ‘서방식 자본주의’로 전환한 뒤인] 1990년대에 심화했고 더 나아가 오늘날 세계경제 위기로까지 이어진 것을 보면 우리가 옳았음을 알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제 그런 이론이 뭐가 중요하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오늘날 국가자본주의론이 여전히 유효한 이유는 이것이 동유럽 국가들에만 적용되는 이론이 아니기 때문이다. 국가자본주의론은 서방에도 적용된다. 오늘날 서방 경제의 최소 3분의 1이 국가 부문이다. 데이비드 하비 같은 저명한 마르크스주의자조차 여전히 국가 부문을 자본주의에서 일탈한 것이라고 보지만, 우리는 체제의 핵심적 일부라고 본다.

여기엔 매우 실천적인 함의가 있다. 내가 소셜리스트리뷰그룹에 가입했을 때, 이 단체의 강령은 이렇게 시작했다. “사회가 계급으로 나뉘어 있기 때문에 전쟁은 피할 수 없다.” 국가는 자본주의 체제의 일부고 무장력의 증강은 국가 간 경쟁의 한 형태이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전쟁이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언젠가 레닌이 썼듯이, 혁명적 이론 없이 혁명적 실천이 있을 수 없다. 레닌이 조금 과장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국가자본주의론을 받아들였다면 [옛 소련과 동유럽이 붕괴했을 때] 좌파 전체가 더 강력했으리라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번역 차승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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