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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를 의심하는 이들을 위한 마르크스주의 ⑧:
생태 문제를 분석의 출발로 삼은 마르크스

마틴 엠슨 영국의 지구 온난화 반대 활동가. 지은 책으로 《기후변화 ─ 왜 핵에너지는 대안이 아닌가》(다함께)가 있다.

인간 사회와 지구 환경 간의 생태적 관계는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의 중대한 관심사가 됐다.

인간이 환경에 영향을 끼친다는 점을 부인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예컨대 강으로 흘러 들어간 유독성 화학 물질과 죽은 물고기 간의 연관은 쉽게 알 수 있다.

온실가스 배출이 기후 전체에 끼치는 영향은 좀더 포착하기 어렵지만 더 중요하고 논쟁적인 쟁점이다. 그러나 산업혁명 이래 화석 연료를 태워서 나온 가스와 지구 온난화 사이에 연관이 없다고 주장하는 과학자는 찾아보기 힘들다.

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인간 사회의 발전에 관한 글을 썼을 때 그들은 인간과 자연환경 간의 관계가 중요하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엥겔스는 마르크스의 역사 이론을 요약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류는 정치·과학·예술·종교 활동을 하기 전에 먼저 의식주부터 해결해야 한다.” 이 말은 수렵·채집인부터 그리스 제국과 로마 제국 시대 사람들, 봉건 영주와 농노에 이르기까지 역사 전체에 적용될 수 있다.

이처럼 [인류가] 자연에 의존한다는 점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사회 구조의 발전을 이해하는 방식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그러나 인간은 단지 자연에 종속된 존재가 아니다. 농업이 등장한 이래 농부들은, 다른 사람들이 먹고 입고 연료로 쓰는 곡식의 수확량을 늘리려고 자연 환경을 바꾸는 기술을 사용해 왔다.

농업이 사회의 식량을 대부분 생산하는 방식이 되기 훨씬 오래 전부터 인간의 활동은 자연에 영향을 끼쳤다. 아마 가장 분명한 사례는 벌채(伐採)일 것이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농업을 위한 벌목 탓에 땅이 침식돼 오래된 항구와 피난항이 흙으로 메워지는 등 중대한 문제들이 발생했다. 노르만 정복 시절부터 서유럽은 인구 팽창으로 벌채가 크게 늘었다. 이 과정은 유럽 각국이 식민지 지배 야욕 때문에 해군을 대규모로 육성하기 시작한 1500년대 이후 더욱 빨라졌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등장하기 전에는 인간의 활동이 자연에 끼치는 영향은 지리적으로 제한돼 있었으며 세계의 생태계에 끼친 영향도 미미했다. 자본주의가 발전해 지배적 경제 체제가 되자 인간이 자연환경에 끼치는 영향은 더 빠르고 강력해졌다. 동시에, 자본주의의 핵심인 경제적 경쟁 때문에 자연을 보는 관점도 매우 달라졌다.

마르크스는 다음과 같이 썼다. “처음으로 자연이 순전히 인간을 위한 대상이 되고 순전히 유용한 물질이 됐다. [자연이] 더는 그 자체의 힘으로 인식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자연의 자율적 법칙을 이론적으로 발견하는 일은 자연을 소비 대상으로 삼거나 생산수단으로 삼아 인간의 욕구에 자연을 종속시키려는 책략일 뿐이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기술을 혁신적으로 사용하고, 세계로 뻗어나가고, 노동자들의 노동으로 원료에서 이윤을 최대한 뽑아내려 애쓰는 체제이기 때문에 자연을 전례 없는 규모로 ‘착취’한다고 생각했다.

최근 존 벨라미 포스터 같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생태 문제에서 보여 준 통찰들을 복원해야 했다. 그동안 마르크스주의는 흔히 반(反)생태적이라고 비난받았다. 특히, ‘녹색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비난했다.

이런 비난은 흔히 두 가지로 나타났다. 첫째, 옛 소련 같은 나라들에서 벌어진 끔찍한 환경 파괴를 진정한 사회주의 국가의 소행으로 혼동하는 데서 비롯한 비난이다. 둘째, 마르크스주의가 단지 인간 사회의 산업 성장과 기술 발전을 추구할 뿐 지구가 어찌되든 개의치 않는다고 보는 데서 비롯한 비난이다.

마르크스주의를 후자처럼 이해하는 것은 조야한 오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모두 오늘날 자본주의의 환경 문제라고 부르는 것들에 대한 우려를 명확히 표명한 바 있다. 엥겔스는 벌채가 낳은 문제들을 흥미롭게 설명하면서 단기적 이익을 노리고 생산하는 자본가들이 오직 눈앞의 성과에만 몰두한다고 말했다. 자본가들은 자신이 판매한 상품이 어찌되든, 자신들의 활동이 자연에 어떤 영향을 끼치든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엥겔스는 이렇게 말했다. “쿠바의 산기슭을 불태우고 그 재에서 한 세대 동안 충분히 사용할 양의 비료를 얻어 수익성이 매우 높은 커피나무를 기르는 스페인 농장주들은 무엇을 걱정했는가! 나중에 열대성 호우로 토양의 표면이 쓸려 내려가 앙상하게 바위만 남았을 때도 그들이 과연 걱정했을까?”

마르크스주의는 자연 세계를 중심으로 해서 자본주의 생산과 인간 사회를 모두 이해하기 때문에 어째서 환경 파괴가 이윤을 바탕으로 하는 체제의 논리적 귀결인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는 생태 위기가 자연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에서 비롯했음을 안다. 문제의 원인이 사회에 있으므로 해결책은 사회를 변혁하는 것이다.

자본주의가 단기적으로 특정한 환경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지라도, 궁극적으로 자본주의는 자연을 당장의 이윤을 위해 ‘수탈’해야 할 자원이 아니라 보호·보존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는 다른 체제로 대체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