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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노동자 운동 전망:
노동자들의 불만이 투쟁으로 표출될 가능성이 높다

이명박 정부의 경제 위기 고통전가 속에 노동운동 위기론도 확산되고 있다.

금속노조가 지난 13일 주최한 ‘노동운동, V자 상승 가능한가?’ 토론회에서는 물론 사회민주주의연대, 좋은정책포럼, 혁신네크워크가 19일 공동 주최한 ‘노동운동의 활로는 있는가’에서도 상당수 진보성향 학자와 활동가들이 “민주노총은 실패”(하부영 울산혁신네크워크 대표)했고, “천덕꾸러기”(주대환 사회민주주의연대 대표)라는 비관적 평가를 쏟아 냈다.

경제 위기 고통전가 정책 때문에 쌍용차 투쟁 같은 저항이 더 큰 규모로 벌어질 수 있다. ⓒ이윤선

노동운동에 혁신할 과제가 산적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상당수 논자들이 위기 극복을 위한 제대로 된 대안을 제시하지 않고 지나치게 비관적으로 전망하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사람들의 암울한 정서에는 지난해 노동자 투쟁에 대한 비관적 평가가 배경으로 깔려 있다. 하지만 지난해 투쟁에서 노동운동이 일방적으로 밀리기만 한 것은 아니다.

정부와 기업주들의 공세는 노동자들의 저항에 부딪쳐 일부는 좌절됐고, 일부는 관철됐다 해도 첨예한 전투를 치르는 동안 대중의 반감이 커졌다. 비록 노동자들이 손에 쥔 성과는 적었지만 그렇다고 이명박의 정치적 입지가 강해진 것도 아니다.

이명박과 기업주들의 전방위적 공격에 맞선 우리측의 저항도 거셌다. 언론노조 파업, 화물연대 파업, 쌍용자동차 파업 등 노동자 투쟁은 정치 쟁점으로 떠올라 반이명박 투쟁의 구심이 됐다.

일련의 투쟁은 경제 위기 고통전가와 이명박의 반민주적 공격에 맞서 저항운동의 축을 형성하며 잠재력을 과시했고, 향후 전투가 한층 격렬해질 수 있음도 보여 줬다.

따라서 현재 계급 세력 균형에서 정부와 기업주들이 일방적 우위에 있다고 볼 수는 없다.

지난해 파업 건수가 전년 대비 12퍼센트 증가하고 근로손실 일수가 다소 줄어든 것은, 노사관계가 악화하는 한편 불균등한 양상임을 보여 준다. 쌍용자동차, 대림자동차 같은 자본 구조가 취약한 작업장, 과도한 인수합병으로 재정난이 심한 금호타이어 등에서 대량해고와 투쟁이 있었지만, 자동차·전자·반도체·철강 등 주요 수출산업의 핵심 업체들은 달랐다.

특히, 현대·기아차가 한국 정부를 포함한 주요 수출 대상국의 재정 투입에 힘입어 매출이 늘고, 부품업체들도 연동 효과를 누리면서 금속노조 소속 작업장 대부분에서 정리해고 압력이 일시적으로 줄었다. 따라서 대형작업장 노동자들의 파업은 많지 않았다. 연쇄 부도 위기에 직면해 정부가 중소기업 대출 만기를 일괄 연장한 것도 마찬가지로 구조조정 지연 효과를 냈다.

그러나 올해 산업투쟁 양상은 지난해와 사뭇 달라질 수 있다. 수출 주력산업의 실적 개선에 영향을 준 몇몇 요인이 올해도 지속될지 불확실하고, 무엇보다 세계경제가 다시 악화될 수 있는 상황이라 임금 삭감, 구조조정 압력은 더 커질 것이며, 노동자들의 누적된 불만이 행동으로 나타날 가능성도 높다.

막대한 재정 투입이 경기 추락을 막으면서 기업주들의 손실을 보전하고 수익을 대폭 늘렸지만, 노동자들의 삶을 개선하지는 않았다. 기업의 실적 개선은 일차적으로 노동자들에게 고통을 전가하는 것으로 뒷받침됐다. 게다가 정부가 재정적자 부담을 다시 노동자에게 전가할 것이므로 따지고 보면 기업주들이 거둔 수익은 이중의 노동자 공격을 전제로 한 셈이다.

경제지표가 개선됐다는데도 이처럼 노동자들의 삶이 지속적으로 후퇴하고 있기 때문에 누적된 불만이 투쟁으로 표출할 가능성도 높다. 그래서 삼성경제연구소도 “금융위기가 외형적으로 다소 진정되면서 지금까지 축적된 조직원들의 피로감이 실망과 불만으로 표출”될 수 있다고 예측했다.

누적된 불만

쌍용차 파업 진압 이후 노조 탄압이 도를 더해가자 일각에서는 영국의 대처와 미국의 레이건 정부 때처럼 노동운동이 심각한 후퇴를 겪는 게 아닐까 걱정한다.

그러나 영국 대처 정부가 1984~85년에 광원 파업을 공격해 타격을 주기 전에 이미 영국의 노조운동은 노동당 정부의 공격 아래 상당히 약해진 상태였다.

반면 현재 한국 노동조합운동의 투쟁력은 여전히 강력한 편이다. 이명박 정부가 민주노총 ‘탈퇴 공작’을 통해 노조운동을 약화시키려 시도했지만 그 효과도 크지 않았다. 단위 작업장 노조 십여 개가 민주노총을 탈퇴했지만, 인천지하철노조, KT노조를 제외하면 대부분 소규모 노조고 그나마 인천지하철노조는 다시 민주파 지도부가 당선했다.

게다가 통합공무원노조가 민주노총에 가입해 민주노총 ‘탈퇴공작’에 따른 조합원 감소분은 상쇄하고도 남는다.

서울지하철노조의 민주노총 탈퇴 시도도 민주파 현장 활동가들의 선동에 힘입어 수포로 돌아갔다.

이명박 정부는 올해 막대한 국가부채와 재정적자 부담을 덜기 위해 공공부문 공격을 시도하고 있다. 공기업 민영화, 교육·의료 서비스 후퇴, 임금 동결, 복지 축소, 성과급제 도입 등 공공부문 노동자에게 고통을 전가하는 것에 집착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공격은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저항에 직면할 것이다. 지난 연말 아쉽게 파업을 철회한 철도 노동자들을 비롯해 발전·가스·운수 노동자들이 다시 투쟁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제조업 부문에서도 지난해보다 투쟁이 더 벌어질 수 있다. 한국은 물론, 미국과 유럽 시장의 자동차 보조금 지원 정책이 모두 끝나고 환율효과가 상쇄된 반면, 민간 소비가 여전히 살아나지 않고 있고, 가격 경쟁도 심해져서 현대·기아차는 내수와 수출 모두에서 지난해에 비해 고전할 가능성이 있다. “현대·기아차에 2010년은 힘든 한 해”(〈월스트리트저널〉)가 될 것이란 예측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에 따라 자동차 노동자들에 대한 임금 삭감, 구조조정 시도가 충돌을 야기할 수 있다.

요컨대, 지난해 주요 수출 대기업의 실적 호전을 가능케 했던 요인들이 약발이 떨어져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모두에서 경영난이 가중되고 구조조정이 확산될 수 있다. 따라서 경영 상태가 취약한 작업장 위주였던 지난해 투쟁 양상과 달리, 올해 금속산업 부문의 전투는 더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노동부 관계자도 “올해 파업 건수와 근로 손실 일수 모두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한다.

특히, 경영 환경이 어려운 조선 부문에서는 벌써 투쟁이 시작됐다.

조선업종은 해운업과 더불어 경제 위기에 따른 국제 교역량 축소로 직격탄을 맞았고 부산 앞바다에는 차라리 정박비용이 싸게 먹혀 끌고 가지 않은 배들이 둥둥 떠 있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벌써 8개 부실 조선사가 구조조정을 하고 있고, 규모가 꽤 큰 SLS조선이 워크아웃에 들어가는가 하면, 한진중공업에서도 전체 노동자의 30퍼센트에 이르는 대량해고가 진행중이다.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은 대량해고에 맞서 지난해 하반기부터 집회와 부분파업을 시작했다.

그 밖에도 복수노조·전임자 임금 관련 노조법 대응 투쟁이 상반기 산업 투쟁의 주요 쟁점이 될 수 있다.

물론, 투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자동으로 승리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지금 현장 투사들은 인상주의적 비관론에 빠져 의기소침할 것이 아니라 다가올 투쟁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정치적·조직적 준비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지난해 쌍용차 파업에서 정부와 사측은 경찰특공대 같은 물리력은 물론, 보수 언론의 지원사격을 받으며 기업주 집단 전체의 화력을 집중해서 노동자들을 공격했다. 파산 협박 등 이데올로기적 공격과 이간질도 극심했다. 반면 우리 측은 힘을 충분히 집중하지 못했고 파산 기업의 공기업화를 통한 고용 보장 등 정치적 대안도 자신있고 분명하게 제시하지 못했다.

경제 위기 시기에 개별 작업장 투쟁에도 정부가 직접 개입하는 경우가 늘고 정치적·이데올로기적 공세가 늘어나고 있다. 노동자들의 저항이 승리하려면 노동자들도 정치적·이데올로기적 대응과 대안을 제시하는 데 힘쓰며 투쟁을 건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