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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으로 가는 진보대통합이어선 안 된다

4·27 재보궐 선거에서 참패(자세한 선거 평가: '이명박 심판 투표의 열기를 이제 투쟁 건설로 이어가자', '과연 야권연대가 '반드시 가야 할 길'이 됐는가?')한 후 이명박 정부의 위기는 심화하고 있다. 이번 패배가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참패로도 이어질 것이라는 위기감 속에 우파의 분열은 커지고 있다.

민주당과 진보정당들이 손을 잡은 ‘야권연대’를 통해 한나라당 후보들을 떨어뜨린 이번 선거 결과는 모순된 영향을 미칠 듯하다.

한EU FTA 처리 반대 농성중인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와 악수하는 손학규 그 후 손학규와 민주당은 한EU FTA 처리를 사실상 방조했다.

우선, 이명박의 선거 참패와 위기를 보면서 노동자들의 사기가 높아질 것이다. 이것은 이번 메이데이 집회에서도 드러났다. 한국노총 집회에는 무려 15만여 명이 참가했고, 민주노총의 서울 집회에서는 오랜만에 경찰 저지를 뚫고 행진도 했다. 행진 대열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표정에서도 기대와 흥분을 느낄 수 있었다.

한편, 이번 선거 결과는 투쟁 건설보다는 야권연대를 더 강화해서 투표와 선거로 이명박을 심판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더 키우고 있다.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는 “야권연대의 정당성에 대해 어떤 의문도 망설임도 없어[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예 야권연대를 넘어서 야권 단일정당을 만들자는 민주당 이인영과 ‘국민의 명령’ 문성근 등의 목소리도 다시 힘을 얻기 시작했다. 진보신당 대통합파가 중심인 ‘복지국가 진보정치연대’도 복지국가 강령을 중심으로 야권 단일정당을 만들자고 주장한다.

계급정치 포기

이 단체 공동대표인 진보신당 박용진 부대표는 진보정당의 독자성과 진보의 가치를 고수하는 것은 “낡은 진보”라고 폄하한다. 진보정당과 자본가 정당의 차이가 “작은 차이”일 뿐이라는 것이다. 사실상 지난 10년 넘게 어렵게 건설해 온 진보정당을 없애자는 말과 같다. 사회진보연대의 비판처럼 이것은 “노동자 계급정치의 포기”라고 할 만하다. 그래서 야권연대를 주장하는 진보 인사들 중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야권 단일정당론은 지지하지 않는다.

그런데 선거에서 표의 논리에만 갇혀 있는 야권연대론이 바로 야권 단일정당론을 부추기고 있다는 점을 봐야 한다. 실패하지 않으려면 ‘진정성 있는’ 야권연대가 필요하고 그러려면 아예 당을 합쳐야 한다는 논리가 득세하게 되는 것이다. ‘연립정부도 되는데 단일정당은 왜 안 되냐’는 것이다.

이처럼 야권연대의 논리는 진보정당의 독자성과 진보의 가치를 훼손할 수밖에 없다. 물론 지금 반MB 대중 정서가 야권연대로 대개 수렴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대중의 급진화와 자신감 회복이 아직 민주당을 뛰어넘어서 당장 행동에 나설 만큼은 아닌데다가 노동자 투쟁이 그런 세력 관계를 뒤흔들 만큼 활발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거에서 야권연대 후보에 대한 비판적 투표조차 한사코 반대할 수는 없다.

그러나 민주노동당 지도부처럼 “발은 계급투표에, 머리는 야권연대에” 둘 수 있다며 민주당과 일관된 계급연합을 추구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것은 진보정당을 오른쪽으로 이동시키며 진보의 가치를 훼손하고 있다.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는 “명예, 자존심, 다 버릴 수 있다. … [그러나] 진보의 정책만은 포기할 수 없다”고 했지만 이미 진보정당들은 이번 선거에서도 민주당과 연합하기 위해 일부 진보 정책들을 포기했다. FTA ‘폐기’와 고리원전 1호기 ‘폐쇄’가 ‘재검토’와 ‘안전선 검증’으로 바뀐 것이 대표적이다.

나아가 진보정당들이 반자본주의·반제국주의 가치를 버리고 더 오른쪽으로 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예컨대 진중권은 최근 “1917년 러시아 혁명의 향수, 1930년대 민족해방운동의 추억으로 먹고사는 것도 진보라 할 수 있을까?”라며 “대중이 지지할 만한 형태로 진보와 정당을 리디자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규항의 비판처럼 “좌파적 신념은 접고 … 주류 사회에서 편히 살기로 한 사람들이 … ‘내가 달라졌다’고 말하지 않고 ‘세상이 달라졌다’”고 하며 진보의 가치를 공격하는 것이다.

한EU FTA 야합

야권연대로는 진정으로 이명박을 저지하기도 힘들다. 당장 한EU FTA 관련 진통이 그것을 보여 줬다. 민주당은 야4당과 ‘한EU FTA 비준 저지’를 합의해 놓고는 재보선이 끝나자마자 한나라당과 한EU FTA 비준안 처리를 합의해 버렸다.

진보정당들이 강력히 반발하자 민주당 박지원은 “야4당 정책연합 합의문을 어제서야 봤다”며 “합의문은 굉장히 좋긴 하지만, 우리에게는 현실이 있다”고 했다.

결국 국회 농성을 불사한 진보정당들을 의식해 민주당이 한나라당과 합의를 번복했지만, 한나라당의 강행 처리를 막지는 않았다. 사실상 묵인한 것이다. 이런 일은 계속 반복될 것이다. 이미 민주당은 재보선 전에도 진보정당과 ‘부자 감세 반대’를 합의해 놓고는 한나라당의 취득세 인하를 합의해 준 바 있다.

그리고 이것은 야권연대가 이명박에 맞서는 투쟁의 발목을 잡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왜냐하면 근본적으로 자본가 계급에 기반해 그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민주당은 노동자 투쟁을 달가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손학규가 “노동이 존중되는 세상”을 말하는 동안에도 전북에서 민주당 지방정부는 전북 버스 노동자들의 파업을 짓밟고 있었다. 그런데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이런 민주당을 폭로하며 비판하지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