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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핵무기, 어떻게 봐야 할까?

마르크스주의자는 북핵을 포함한 모든 핵무기를 반대한다. 그러나 북한의 핵실험은 미국의 제국주의적·군국주의적 대북 압박의 산물이다. 한반도 평화와 비핵화를 이루려면 이것이 중단돼야 한다.

북한 핵실험에 대한 입장은 북한 핵 반대와 미국 책임론의 비율을 어떤 균형으로 제기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관련 있다. 만약 지금의 정치 상황에서 북핵 반대를 전제로 내세우거나 북한과 미국을 공평무사하게 비난한다면 그것은 잘못이다.

예컨대 진보정치연구소 '희망설계본부'는 "핵실험을 통해 북한[이] 판을 바꿔버렸다"며 "이제 남는 문제는 북한의 핵을 해체시키고 북한의 추가적 행동을 막는 일이다" 하고 주장했다. 외교가에서 CIA 요원이라는 소문이 돌 정도로 친미 성향인 "반기문의 역할"을 논하는 것도 그렇고, 명의를 눈여겨보지 않으면 어느 당 연구소인지 알기 어려운 진술이다.

또, 지난 13일 민주노동당 중앙당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최백순 '전진'기관지 편집위원은 "현재 핵실험을 실시한 것은 북한이기 때문에 문제의 본질은 북핵"이라며, 압도적 비율로 미국을 비난하는 '다함께'입장이 결국 북핵에 면죄부를 준다고 주장했다.

2001년 9월 11일 뉴욕 월드트레이드센터 쌍둥이 빌딩이 무너졌을 때 문제의 본질은 테러리즘이었는가? 9·11 직후 국제 반전 운동은 '테러 반대'와 '전쟁 반대'하는 식의 양비론에 빠지지 않고 사태의 핵심 ― 테러를 빌미로 한 미국의 전쟁 몰이 ― 을 정확하게 간파했기 때문에 강력한 반전 운동을 건설할 수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진보진영은 좌파민족주의 세력의 핵심 부분이 북한 사회를 어떻게 생각하든 관계 없이 그들과 함께 힘을 모아 미국의 패권 추구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북한 추종자로 오해받을 것을 우려해서, 또는 진보진영 내 핵 억지력 주장을 비판하려다 핵심에서 빗나가서는 안 된다.

핵 억지력?

물론 진보진영 내에는 북한의 핵실험에 대해 무비판적인 견해가 있다. 북한이 핵실험을 통해 전쟁 억지력을 갖게 됐다는 주장이 그런 경우다. 이는 "[북한 핵무기가]조선반도와 주변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수호하는 데 이바지하게 될 것"이라는 북한 당국의 주장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핵실험을 통해 전쟁 억지력을 확보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미국은 핵 1만여 기 가운데 7천6백50개를 실전 배치하고 있는 반면, 북한은 최대 6∼7기를 가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것도 아직 낮은 기술 수준에 의한 것이다. 핵탄두 소형화 기술과 미국 본토에 닿을 수 있는 미사일 개발 여부는 아직 확인된 바 없다.

"핵 공포의 균형"라는 지극히 냉전적인 용어가 지닌 정치적 문제점은 제쳐두고라도, 이런 비대칭적인 균형을 두고 "핵 공포의 균형"이라고 얘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최근 북한의 핵기술에 관한 보도를 보면 종종 과장을 발견하게 된다. 〈한겨레〉는 "[19]89년 5월 김책공대의 연구진이 발표한 '실내온도하 핵융합 반응의 실현'이란 수준급 논문은 세계 물리학계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고 보도했다(10월 14일치).

그러나 최무영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에 따르면, "상온 핵융합"(물리학 용어)은 아직까지 물리학에서 가능한 것으로 입증되지 못했다. 1990년대 후반에 미국 유타대학 화학자 2명이 "상온 핵융합" 논문을 발표했으나 1년 뒤 사실이 아님이 밝혀져 대학에서 쫓겨났다.

또, 전쟁 억지력 확보를 주장하는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가 한반도 전쟁 위기를 얘기하는 것은 모순이다. 박경순 한국진보운동연구소 상임연구원의 주장처럼 미국의 제재에 대한 북한의 반발로 충돌이 일어난다 해도 이것 역시 악순환이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 줄 뿐이다.

북한의 핵무기는 한반도와 주변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이룩하기는커녕 더한층의 불안정과 긴장을 부를 것이다. 북한 핵실험이 일본·남한·대만·호주 등의 핵무장을 자극해 군사 경쟁을 가속화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차베스

이런 지적에 대해 민경우 한미FTA범국본 정책기획팀장은 "객관적인 사태 분석의 결과라기보다는 핵을 협상 카드로 사용하는 것에 대한 불만으로 그렇게 예단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일본과 남한 등이 핵무장을 하기 전에 "북미 협상이 재개"되거나, "북미 타협이 이뤄지지 않더라도 미국이 일본, 한국, 대만의 핵무장을 저지"할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이다(〈진보정치 294호>).

물론 미국은 일본과 한국의 핵무장을 막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부시가 북한의 핵실험 직후 발표한 성명에서 "한국과 일본 등 동맹국에 대한 전쟁 억지와 안전보장"을 특별히 언급한 것은 핵무장 확산 우려를 반영하고 있다. 어떤 점에서 미국은 북한의 핵 능력 자체보다 이런 효과 ― 동맹국들의 핵무장 ― 를 더 우려한다.

하지만 핵확산금지 체제의 위신이 실추한 마당에 미국이 동맹국들을 잘 관리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월러스틴이 지적하듯이 "미국 헤게모니는 쇠락"하고 있고, 이 점은 동북아의 불안정을 부추기는 요소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의 핵실험이 (없었던 때와 비교해) 주변국의 핵무장을 자극하고 있다는 것만큼은 명백하다.

북한 관료의 처지에서는 핵무장이 미국의 압박에 맞서는 "불가피한" 수단일는지 모르지만, 한반도와 동북아시아 노동자·민중운동의 처지에서는 진정한 대안이 될 수 없다. 핵 억지력이 대안이라면 노동자·민중운동은 할 일도 없고 가치도 없게 된다.

스탈린이 서방 지배계급에게 압력을 넣기 위해 사용했던 위협 무기 중 하나인 서방 공산당들의 가치는 1949년 소련이 핵폭탄 실험을 완료하고, 1953년 수소폭탄 개발에 성공한 뒤 추락했다. 코민포름이 이용가치가 없어져 1953년에 기능을 멈춘 것은 이와 관계 있다.

핵무기는 무엇보다 세계 민중의 연대에 부정적 영향만을 미칠 뿐이다. 베네수엘라의 대통령 차베스가 세계 민중의 지지를 받는 까닭은 핵무기 때문이 아니다. 미국 정부와 국내 우익의 압박 속에서도 차베스가 개혁을 제공하고 반제국주의 운동을 고무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