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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출교 무효 판결의 의미:
“자본에 복종하는 대학에 대한 경종”

[편집자] 조명훈 기자가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을 만나 출교생들의 투쟁과 출교 무효 판결의 의미에 대해 들었다. 홍세화 기획위원은 ‘입시폐지 대학평준화 국민운동본부(준)’의 대표이기도 하다.

그동안 고려대 출교생들의 투쟁에 지지와 연대를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출교 무효 판결의 의미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고려대 출교생들이 출교처분 무효 확인 소송에서 승리한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인문 정신·비판 정신·저항 정신의 전당이어야 할 대학이 돈에 대한 자발적 복종의 길로 가고 있는 것에 최소한의 상식인 법이 제어를 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 대학이 어떻게 이 지경까지 오게 됐는가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김민수 교수 사건도 그랬고, 이번 출교 사건도 그렇고 최소한의 양식이자 상식인 법의 힘을 빌려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런 점에서 대학생, 대학 당국 등 대학인들과 한국 사회 구성원들이 ‘오늘날 한국 대학이 어떤 위치에 있는가’ 하는 것을 곱씹어 봐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고려대 출교 문제가 사회적으로 주목받는 까닭이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옛날에는 대학을 ‘우골탑’이라고 불렀는데, 이제는 신자유주의 흐름과 맞닿아 그냥 ‘돈탑’ 아니면 ‘기업탑’이라고 부를 만하지요. 대학 건물에 삼성관이니 포스코관이니 하는 이름을 붙이고, CEO를 총장으로 불러오고 하는 것이 마치 기업 집단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고려대 출교 사태는 자본에 굉장히 자발적으로 복종하고 사회에 대한 비판적 안목이나 인문 정신 같은 것이 설 자리가 없는, 대학 본연의 자세에서 한참 벗어난 [현실을 보여 주는] 대표적 예였죠.

표면적으로는 보건대와 관련한 문제였지만, 실제는 삼성 이건희 박사학위 수여 저지 시위를 했던 학생들에게 괘씸죄가 적용됐던 것 아닙니까? 그래서 언론들도 고려대 출교 사태를 우리의 대학, 또 한국 사회의 자화상을 돌아보는 계기로 다뤘던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고려대 당국이 항소를 내부적으로 결정했다는 얘기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습니다.

출교라는 제재는 배제입니다. 차이의 문제, 생각이 서로 다른 문제 등을 ‘넌 아니야’라는 식으로 배제하는 것이죠. 이런 것은 앵똘레랑스(불관용)의 전형입니다. 학교가 어떻게 학생들에게 그럴 수 있습니까?

이처럼 제 정신이 아니라고 할 만큼, 신자유주의 기업 집단이 돼 버린 대학 당국자들의 행태가 대학에서 전혀 견제받지 않는 구조로 나아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고려대 출교생들은 5백여 일째 본관 앞 농성을 하고 있습니다. 고려대 출교생들과 그들의 투쟁을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으시다면?

고려대 출교생들이 지금까지 싸워 온 것은 의미가 대단히 큽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5백여 일 동안이나 싸워야 할 만큼 대학인들, 특히 학생·교수 들의 연대가 미약했던 것은 아쉽습니다. 우리 교육 과정이 기존 체제 질서에 대한 자발적 복종을 내면화시키고 있고, 학교 당국이 이런 흐름에 앞장서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려대 출교생 같은 학생들이 있다는 사실이 더욱 소중하게 다가옵니다. 지금껏 외롭게 싸워 온 고려대 출교생들에게 다시 한번 연대의 인사를 하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이런 사회 불의에 맞서 저항하고, 또 한국 사회에 이런 저항의 양분과 토양이 마련될 수 있도록 같이 노력하고 모색하고 실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5백일 넘게 천막 농성을 벌이고 있는 출교생들

“고려대 당국은 법원 판결 인정하라”

조명훈

“출교 무효!”
재판장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법정은 사람들의 환호로 떠나갈 듯했다. 고려대 출교생들과 이들의 승리를 염원하며 방청석을 가득 메운 학생·노동자 들이 한데 어울려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천막 농성 5백35일째인 10월 6일, 고려대 본관 앞 천막에서 만난 출교생들은 그 어느 때보다 자신감에 차 있었다. 강영만 동지는 “재판 이후 출교 사태가 사회에 얼마나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 문제인지 다시금 깨닫게 됐다”며 “사회 전체의 여론을 등에 업고 싸운다는 생각으로 지지와 연대를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김지윤 동지는 “학교 안에서는 진보적 학생들이 단결해 더 광범한 학생·직원·교수 들의 지지를 이끌어내고, 학교 바깥에서는 ‘시민사회연대’가 출교에 반대하는 사회적 목소리를 모은 것이 법정 투쟁 승리의 원동력이었다”고 말했다.

출교생들은 2학기가 개강하자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법원에 제출할 탄원서를 조직했다. 강의실 출석 투쟁도 하고 개강 연설도 하면서 일주일 만에 1천 명이 넘는 학생들에게 ‘출교 무효’ 탄원서를 받았다. 1백여 명의 고려대 환경미화 노동자들과 30여 명의 고려대 교수들도 탄원에 동참했다.

학교 바깥에서는 ‘부당징계·학생자치탄압 반대 학생시민사회연대(이하 시민사회연대)’가 출교생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돼 주었다. ‘시민사회연대’에 속한 민주화를위한교수협의회·교수노조·대학노조·학생교육대책위 등 진보적 시민·사회 단체들이 탄원서 수백 장을 조직했다.

그러나 지난 5백여 일이 늘 희망으로 가득했던 것은 아니다. 출교생들은 특히 학교에 아무도 없는 방학 때나 투쟁의 전망이 보이지 않을 때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그럴 때마다 출교생들이 고비를 넘길 수 있었던 힘은 ‘연대’에서 나왔다고 주병준 동지는 말했다. “학생들과 노동자들의 지지가 없었다면 아마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거예요. 특히 올해 대학생대회에 모인 전국의 대학생들이 보여 준 연대는 정말 감동적이었어요. 천막에 지지 방문 왔던 〈시사저널〉 노동자들, 명절 때 외롭지 말라고 찾아와 맛있는 음식을 해 준 고려대 환경미화 노동자들, 이랜드 노동자들, 민주노동당 당원들도 잊을 수 없죠.”

사회적 파장이 큰 투쟁들도 출교생들을 격려하는 힘이 됐다. 출교생들은 뉴코아·이랜드 노동자들의 투쟁 덕분에 올 여름을 어렵지 않게 이겨낼 수 있었다고 했다. 천막 안의 시계는 그렇게, 한국 사회의 시계와 맞물려 흘러가고 있었다.

고려대 본관 앞 천막에는 참 어렵게 ‘봄’이 찾아왔지만 이 잠깐의 봄도 못마땅한 고려대 당국은 벌써부터 항소를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새롭게 투쟁 의지를 다지는 출교생들의 얼굴이 진지해 보였다. 서범진 동지는 이렇게 말했다.

“법원의 판결은 우리가 앞으로 운동을 건설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거예요. 사법부까지 출교의 부당성을 인정한 것은 출교 철회 운동에 대한 지지를 확대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이제야 강의실 문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출교생들이 강의실 문을 활짝 열어 젖히고 돌아갈 수 있도록 더 많은 학생·노동자 들의 지지와 연대가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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