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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진 칼럼:
근거 없는 ‘복지 포퓰리즘 망국론’

한동안 복지담론에 편승하는 듯했던 이명박 정권이 최근 세계경제 위기가 재연되자 ‘복지 포퓰리즘 망국론’으로 원위치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정치권의 경쟁적 포퓰리즘으로 국가부도 사태를 낳은 국가들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무분별한 복지 확대”가 최근 유럽의 재정위기의 원인이 되었다면서 무상급식 반대 주민투표를 강행하려는 오세훈 서울시장에 힘을 실어 주었다.

하지만 복지 포퓰리즘이 최근 세계경제 위기와 재정 위기를 초래한 주범이라는 주장은 터무니없다. 복지 포퓰리즘이 아니라 복지국가의 해체를 목적으로 한 신자유주의가, 더 근본적으로는 과잉 복지가 아니라 자본의 과잉축적과 과잉생산이 2007~2009년 세계경제 위기의 원인이었음을 오늘날 양식 있는 주류 경제학자들은 모두 인정하고 있다.

2007~2009년 세계경제 위기가 복지국가의 위기가 아니라 신자유주의의 위기임은 이제 상식에 속한다. 또, 2010년 이후 유럽, 일본, 미국 등 주요 나라들의 재정위기 역시 “무분별한 복지 확대” 때문이 아니라, 2007~2009년 세계경제 위기에서 탈출하기 위해 이 나라들의 정부가 천문학적 규모의 경기부양 자금과 구제금융을 쏟아 부은 결과다.

재정위기

OECD와 세계은행 통계에서 몇 가지 기본적 사실들을 확인해 보자. 〈그림 1〉에서 보듯이 한국의 경우 2007년 GDP에 대한 공공사회지출의 비율은 7.6퍼센트로서 34개 OECD 나라들 중 33위였으며, 7.2퍼센트로 꼴찌를 기록한 멕시코와 거의 같은 수준이었고, OECD 평균치인 19.2퍼센트의 3분의 1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한국이 OECD 평균이라도 따라가려면 공공사회지출을 현재보다 세 배 정도로 대폭 늘려야 할 것이다.

<그림 1> GDP에 대한공공사회지출의 비율 2000-2007년 (단위:%)

이명박과 오세훈의 ‘복지 포퓰리즘 망국론’이 애호하는 사례인 그리스의 경우 이 비율은 2000년 19.2퍼센트, 2007년 21.3퍼센트로서 OECD 평균 수준이었으며, 복지 포퓰리즘을 운운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OECD 국가들 중 복지 최후진국인 한국이 복지 포퓰리즘, 과잉 복지를 걱정한다면 OECD 회원국 자격을 박탈해야 할 것이다.

대표적 복지국가인 스웨덴의 경우 이 비율은 2007년 27.3퍼센트로서 한국의 네 배나 됐지만, 2007~2009년 세계경제 위기 발발 전인 2004~2007년 소폭 감소했으며, OECD 평균치도 동일한 추세를 보였다. 따라서 2007~2009년 세계경제 위기를 이른바 과잉 복지와 연결시키는 것은 근거가 없다.

또 세계은행의 통계를 보면, 군비지출 등 공공사회지출이 아닌 정부지출까지 포함한 정부최종소비지출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 역시 한국의 경우 2007년 14.7퍼센트로서 고소득 OECD 28개국 중 26위, 즉 최하위 수준이었다. 2007년 고소득 OECD 28개국의 이 비율 평균치는 18퍼센트였으며 스웨덴은 25.9퍼센트, 미국은 16.1퍼센트였다.

이는 그동안 ‘발전국가’의 전형으로 간주돼 온 한국이 오히려 신자유주의가 추구하는 ‘작은 정부’를 충실하게 추종하는 나라라는 사실, 따라서 역으로 한국은 앞으로 정부지출을 늘릴 여지가 충분하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오늘날 한국의 정부 부채는 매우 양호한 수준이며, 재정 역시 상당히 건전한 편이다. 〈그림 2〉에서 보듯이 한국의 경우 2010년 GDP에 대한 정부부채의 비율은 33.9퍼센트로 OECD 31개국 중 28위로서 가장 낮은 편에 속했다. 2010년 이 비율의 OECD 평균치는 97.6퍼센트로서 한국의 세 배였으며, 국가 부도 위기에 직면했던 그리스의 경우 이 비율은 1백47.3퍼센트였다. 한국의 경우 정부 부채가 현재 수준의 세 배 정도로 재정적자가 늘어나도 OECD 평균 수준이며, 그리스처럼 국가부도 위기에 처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또 〈그림 3〉에서 보듯이 한국의 일반정부의 재정수지 역시 매우 양호하다. 1993~2010년 중 한국의 일반정부 재정수지는 GDP 대비 2.74퍼센트의 흑자를 시현한 반면, OECD 나라들 일반정부의 평균 재정수지는 GDP 대비 3.3퍼센트의 적자를 보였다. 한국의 재정은 ‘균형재정’으로 이름 높은 독일보다도 ‘건전’하다.

<그림 2> GDP에 대한 정부부채의 비율 2002-2012년 (단위:%)
<그림 3>GDP에 대한 재정수지의 비율 1993-2012년 (2011-12년은 예측치, 단위:%)

OECD 28개 국 중 26위

현재 한국 정부는 상당 기간 재정적자를 감당하면서도 복지지출을 증대시킬 수 있는 여력이 충분하다. 하지만 조세수입 이상의 정부지출이 이루어질 경우 재정적자가 늘어날 것이고, 이는 장기적으로 국가 부채를 증대시킬 것이다.

따라서 장기적으로 국가 부채를 증대시키지 않고 복지지출 재원을 확보하려면 정부지출의 구성을 조정하거나(예컨대 4대강 예산을 무상급식 반값등록금 예산으로 전용하는 것) 조세수입을 증대시켜야 한다(예컨대 부자감세 철회). 그런데 현재 한국은 정부지출 중 복지지출 비중이나 GDP 대비 조세수입 비율이 OECD 나라들 중 최하위 수준이기 때문에, 정부지출 중 복지지출 비중과 GDP 대비 조세수입 비중을 약간만 높여도 복지재원은 얼마든지 확보할 수 있다.

OECD 자료를 보면, 한국의 경우 2007년 정부지출에서 사회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26.4퍼센트로 OECD 34개국 중 꼴찌여서, 스웨덴 53.6퍼센트, 미국 44.3퍼센트보다 낮은 것은 물론이고 멕시코 37.2퍼센트보다도 한참 낮았다. 또 〈그림 4〉에서 보듯이 한국은 2008년 GDP 대비 조세수입 비중은 26.5퍼센트로서 OECD 33개국 중 29위로 최하위 수준이었으며, 스웨덴 46.3퍼센트, 그리스 32.6퍼센트는 물론 OECD 33개국 평균치인 34.8퍼센트를 크게 하회했다.

<그림 4>GDP에 대한 조세수입의 비율 2002-2009년 (단위:%)

한국과 미국을 비롯한 신자유주의 국가들의 경우 세금을 적게 걷어 적게 쓴다면, 스웨덴 등 북유럽 나라들은 많이 걷어 많이 쓰는 것이 특징이다. 격화되는 사회양극화를 조금이라도 완화하려면, 또 해고가 곧 살인이 되는 이 잔인한 세상을 약간이라도 바로 잡으려면, 많이 걷어 많이 쓰는, 즉 소득재분배와 복지지출 증대를 할 수 있는 북유럽형 재정정책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은 얼마 전에 벌어진 런던 소요와 같은 사회적 대폭발과 체제 위기 상황에 직면해, 복지 과잉이 아니라 복지 부재가 위기와 ‘망국’의 원인임을 깨닫기 전에는, 결코 스스로 개혁적 복지를 수용하지 않을 것이다. 이명박 정권의 근거 없는 ‘복지 포퓰리즘 망국론’을 비판하고 진보적 복지 대안의 구체화를 위해서도 반자본주의 대중투쟁을 건설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