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2월 전 세계인들은 이집트에서 민중이 독재자 호스니 무바라크에 맞서 싸우면서 혁명을 일으키는 것을 지켜봤다. 

그러나 지금 대다수 주류 언론들은 이집트에서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말한다. 이집트 항쟁을 취재했던 BBC 프로듀서 오기 보이체프는 〈가디언〉에 기고한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더 나은 나라를 만들려고 목숨을 걸고 싸운 수많은 여성과 남성 들의 용기를 무시하려는 것은 아니다.

“무바라크를 몰아낸 것은 군부 인사들이었다. 무바라크가 물러나지 않으면 모든 군사 지원을 끊겠다는 미국 백악관의 압력에 군부가 굴복한 것이었다.”

독재자가 법정에 선 것도 보이체프의 비관적 평가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현재 상황을 경구를 약간 바꿔 말하자면 이렇다. ‘독재자가 법정에 섰다. 독재자 만세!’” 

나도 올 2월에 카이로에 있었다. 나는 2월 6일 카이로 광장에 설치된 간이 연단 뒤에 서서 구호를 외치고 환호하는 군중을 경의의 눈으로 쳐다봤다.  

일자리 안정을 요구하며 정부 청사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 이집트 석유 노동자

그러나 이 기사를 쓰면서 내 머릿속에는 공항에서 오는 길에 보았던 헌병들을 가득 태운 트럭들과 타흐리르 광장 진입로에 서 있던 탱크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당시 나는 이렇게 경고했다. “이집트 혁명은 전진하고 있다. … 그러나 이집트 국가는 아직 건재하다.” 

일주일도 되지 않아 무바라크는 쫓겨났다. 무언가 상황을 변화시키면서 민중 항쟁과 국가 사이의 세력균형도 변화시켰다. 미국 정부가 당황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파업

당시 이집트 혁명이 거리를 넘어 작업장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타흐리르 광장을 점거한 군중의 성분도 변했다. 파업 중이던 버스 노동자들이 타흐리르 광장에서 독재 정권 타도와 제헌의회 구성을 요구하는 리플릿을 나눠 줬다. 

파업 중이던 카스르 알아이니 병원 의사들, 우체국 노동자 대표단들, 카이로 대학 직원 수천 명이 타흐리르 광장 시위에 동참했다. 수에즈 운하 노동자들은 전면 파업에 나섰다. 

마할라의 초대형 방직 공장들도 멈췄고, 마할라 노동자들은 장군들이 소유하는 이곳의 아홉 개 공장을 점거했다.  

이집트 항쟁의 마지막 주부터 이집트 노동계급은 혁명 과정을 직접 결정하는 새로운 구실을 하게 됐다. 

이집트 민중 항쟁 때문에 국가 최상층부가 분열했다. 정부 자체의 존립이 위태로웠기 때문에 장군들이 무바라크를 희생시켜야 했던 것이다. 

지난 6개월 동안 장군들은 1월 25일 시작된 이집트 혁명의 태풍을 잠재우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들은 혁명의 압력에 떠밀려 국가 기구를 ‘정화’하고 시위대가 거리를 통제하도록 허용해야 했다. 

그러나 동시에, 2월 혁명이 이룩한 성과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무바라크의 장군들은 권력을 놓치지 않았다. 7월에 일어난 사건들을 보면 장군들이  자신감을 조금 회복했고, 심지어 행동에 나설 동맹들을 결집하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  

7월 초, 항쟁 동안 죽은 혁명 열사들에게 정당한 대우를 하고 핵심 정권 인사들에 대한 재판을 빨리 진행하라고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발생했다. 당시 시위 참가자들은 최저임금 인상도 요구했다.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에 천막들이 다시 등장했고, 에삼 샤리프 총리는 각료들을 물갈이 했고 내무부 장관을 해임했다. 

그러나 대중 시위의 동력은 점차 약해졌다. 

시위 참가자 수가 줄어들자 7월 23일 장군들이 고용한 깡패들은 시위를 물리적으로 막아 혁명적 시위대에 큰 타격을 입혔다.  

7월 23일 군사최고평의회 건물로 행진하던 이집트 민중을 공격하는 군부  무바라크의 몰락에도 불구하고 이집트 혁명은 여전히 국가의 반격에 직면하고 있다. 

타흐리르 광장에서 군사최고평의회 건물로 행진하던 시위대는 깡패들의 기습으로 다쳤다. 

7월 29일에는 장군들을 지지하는 살라피 이슬람주의자들이 타흐리르 광장을 가득 메웠다. 

그들은 무슬림형제단 지도부를 끌어들여 그동안 거리 시위를 주도했던 세속적 혁명 세력들의 연합에 도전했다. 

8월 1일 헌병들은 광장에 남아 있던 시위 참가자와 혁명 순교자 가족 들을 폭력적으로 몰아냈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은 왜 이집트 혁명이 이 혁명에 참가한 수많은 사람의 기대를 실현하려면 조직된 노동계급이 혁명 운동의 중심에 서야 하는지 잘 보여 줬다. 

이집트 투쟁이 시작된 이후 노동자들의 의식과 조직은 크게 성장했다. 그러나 7월의 사건들은 노동자 운동이 앞으로 극복해야 하는 약점도 보여 줬다. 

세 가지 투쟁

이집트 노동자 운동이 발전하려면 작업장에서 통제권을 확보하기 위한 투쟁, 작업장 사이를 연결하는 조직을 건설하기 위한 투쟁, 그리고 국가를 상대로 노동자들의 요구를 관철하기 위한 투쟁, 이 세 가지 투쟁이 매우 중요하다. 

작업장에서 지난 6개월 동안 1천여 건의 파업과 시위가 벌어지면서 노동자들은 많은 것을 얻었다. 

파업들 때문에 부패한 사장 수백 명이 사임해야 했다. 어떤 곳에서는 노동자들은 훨씬 멀리 나갔다. 

3월에 만시예트 알카크리 병원 노동자들은 새 원장을 선출했다. 조이아 알함라 병원 노동자들도 8월에 원장을 선출할 예정이다. 

알렉산드라의 지역 의회 노동자들은 낙하산을 타고 임명된 장군 대신에 동료 노동자를 지역 의회 의장으로 선출했다. 

이들은 고무적인 사례들이지만, 아직 예외적이다. 

물론, 이집트 노동자들은 다른 나라보다 작업장 민주주의를 훨씬 더 발전시켰다.   

혁명은 갑작스런 도약과 단절로 점철된 복잡하고 불균등한 과정이다.  

노동자 의식과 조직도 불균등하게 발전하고 성숙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앞으로 몇 달 동안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 세계 경제 위기가 어떻게 전개될지가 중요한 변수 중 하나다. 

특히, 이집트 장군들의 주된 후원자인 미국 정부가 경제 위기 때문에 돈을 쏟아 부어 사회개혁을 통해 이집트 혁명을 잠재우기가 더 어려울 것이다. 

노동자와 빈민 들은 자기 힘에 의존할 때만이 지금까지 성취한 것을 지킬 수 있을 것이고 혁명을 심화하고 확대할 수 있을 것이다. 

자유주의자와 이슬람주의자를 막론하고 이집트의 모든 주류 정치인들은 작업장의 ‘혼란’에 경악했고 “생산이란 바퀴”가 다시 굴러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위해서는 혁명적 노동자 정당을 건설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집트 혁명 정당이 이 과업을 완수하려면 많은 지지자를 확보할 뿐 아니라, 전략적으로 명확해야 한다. 그럴 때만이 수많은 가능성으로 가득한 혁명 과정을 세계 노동계급의 역사적 승리로 이끌 수 있을 것이다. 

출처: 영국의 혁명적 좌파 신문 <소셜리스트 워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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