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06년에 고려대학교에서 출교를 당했다. 막 통폐합된 고려대 병설보건대 학생들에 대한 학벌주의적 차별, 그리고 고려대 당국의 총학생회 불법화 시도에 항의하다가 표적징계를 당한 것이다. 2005년 이건희 명예 철학 박사 학위 수여식 때 나와 동료 학생들이 반대 시위를 벌여서 이건희를 망신 준 것에 시위에 대한 학교 당국의 보복 성격도 컸다.

그런데 얼마 전, 고려대 의대생 세 명이 동료 여학생을 성추행했다는 소식을 들었고, “이런 놈들이 의사가 돼서는 안 된다. 의사가 되지 못하게 막는 방법은 출교뿐이다” 하는 주장들도 간간히 들었다.

처음에는 충분한 전후 조사를 한 연후에 징계 수위가 논의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별 조사도 없이 마녀사냥 속에 사건 발생 14일만에 출교라는 초강경 징계를 당한 트라우마가 컸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사건이 발생한 지 한참 후에도 고려대 당국이 여전히 상벌위원회를 열지 않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피해자가 받을 고통이 너무 클 것이라고 생각했다. 같이 기말고사까지 보게 했다는 소식을 들었는 땐 너무나 황당했다. 모든 성추행·성폭력 사건에선 피해자 보호가 최우선인데, 도대체 고려대 당국은 이런 상식조차 없는 것인가!

등록금 문제, 경쟁 교육 문제 등에서 고려대 당국이 비상식적이라는 것은 이미 익히 알고 있었지만, 사회적 지탄을 받는 성추행범들을 처리하는 문제에서조차 이럴 거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학교 다니는 내내, 그리고 출교 당한 내내 그랬지만, 졸업한 후까지 고려대 당국은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여’ 주는 것 같다.

가해자들이 초호화 변호인단을 꾸렸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 중 한 명이 혐의를 부인하고 있으며 피해자의 모든 문자 메시지를 열람하겠다고 요청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이놈들이 정말 파렴치범이구나. 출교를 요구해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방학 때 학교에 갈 때마다 출교를 요구하는 졸업생들의 1인 시위가 간간히 보였고, 지금 와서 하는 생각이지만, 그 1인 시위에 동참하지 못했던 것이 부끄럽다.

어제 피해자의 언니가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와서 그간의 속사정을 털어놨다는 소식을 들었다. 성추행 가해자들은 처음 피해자가 ‘다 기억난다’고 했을 때 미안하다고 한 게 아니라 ‘어떻게 알았냐, 우린 망했다’ 하고 반응했다고 한다.

가해자의 부모는 “피해자가 문제가 있었다, 우리 아들은 잘못이 없다” 하고 말했다고 한다. “이런 게 알려지면 가해자도 끝난 거지만 피해자도 이제 끝나는 것”이라는 협박까지 했다고 한다. 기사를 읽자마자 무심코 욕지거리를 내뱉을 뻔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고려대 상벌위원회는 출교가 아니라 퇴학 쪽으로 가닥을 잡은 듯하다. ‘이건 아니다’ 싶었다.

학생운동 출교 14일 vs 성추행범 퇴학까지 77일+α

내가 출교당했을 당시엔 4월 17일에 상벌위원회가 열렸다. ‘사건’ 발생 12일만이었다. 그리고 고작 이틀만인 4월 19일에 출교가 통보됐다.

그런데 지금은? 77일이나 흘렀다. 그것도 최초 언론보도일을 기준으로 할 때다. 지금 고려대 당국은 퇴학 방침을 정해 놓은 듯하고, 마지막으로 성추행범들에게 소명 기회를 주겠단다.

어이없는 것은 ‘2006년에 출교시킬 때 절차를 충분히 지키지 않아서 법원 패소를 했으므로, 이번에는 충분한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것을 이런 늑장 대응의 이유로 대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출교 무효 소송 당시 법원은 “징계가 과하다”, “피해자에 해당하는 학생처장이 상벌위원장이어서 공정성에 문제가 있다”, “학교 당국이 원인을 제공한 측면이 있다”, “소명 기회가 충분치 않았다” 등의 이유를 출교 무효의 이유로 들었다. 이게 지금과 유사한가? 고려대 당국의 ‘변명’보다는 ‘성추행범 부모가 권력자라더라’ 하는 항간의 소문에 더 귀를 기울이게 되는 이유다.

고려대 상벌위원회는 출교를 결정해야 한다.

범행 사실이 명백하고, 반성의 기미도 없고, 오히려 피해자 탓을 하고 있는 이 파렴치범들이 의사를 직업으로 삼을 기회를 줘선 안 된다. 게다가 징계수위가 퇴학에 그칠 경우 성추행범들은 가장 빠른 경우 한 학기만에 복학할 수 있다. 그러면 피해자는 도저히 학교를 다닐 수 없을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출교를 요구했던 것이다. 이 때문에 피해자 측도 출교를 요구하고 있다.

학생운동 탄압에만 적극적으로 사용되는 징계권

사실 이런 파렴치한 일이 학교에서 벌어지고, 이에 대해 징계를 요구하는 일이 벌어지는 게 낯설다. 적어도 내가 재학 중에 고려대 당국이 공론화했던 징계는 도서관 몰카 사건 한 건을 빼면 모두 다 등록금 투쟁 등 학생운동에 대한 징계였기 때문이다.

2004년에 고려대는 등록금 투쟁을 주도한 학생회장들을 징계하려다 실패했다. 2005년 이건희 시위가 있자 50명 징계를 공언했다가 실패했다. 그리고 결국 2006년에 7명 출교를 비롯 19명이 학생 운동 과정에서 징계를 당했다.

나는 출교 당시 한 처장에게 폭행을 당할 뻔했다. 그런데 오히려 고려대 당국은 내가 달려들었고, 자해공갈을 벌인 패륜아라고 날조 공표했다. 이렇듯 학생 운동에 대해서는 사실관계까지 날조하며 적극적으로 징계하는 고려대 당국이, 성추행범들에게는 관대하기 이를 데 없다. 도대체 이게 교육기관인가? (최근에 서울대도 본관 점거 학생들에게 징계를 엄포했다고 하는데 실현된다면 징계권 남용의 대표 사례가 하나 추가될 것이다.)

다음 주 초면 아마도 상벌위원회 결정이 내려질 것 같다고 한다. 그간 고려대 당국의 행태를 봤을 때 올바른 징계 결과가 나올 성 싶지 않다. 문제를 바로 잡으려면 학생들이 나서야 한다. 졸업생인 나도 뭔가 할 수 있겠지만 재학생들, 특히 학생회들이 움직인다면 효과적일 것이다.

출교 철회 운동 당시처럼 상벌위원회 교수님들께 편지를 쓸 수도 있고, 상벌위원회가 열리는 장소 앞에서 팻말 시위를 할 수도 있다. 이미 18일에 출교 촉구 기자회견이 열렸던데, 상벌위원회 앞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것이다.

학생운동에 대한 보복으로서 출교는 나쁜 것이지만, 이 파렴치범들은 출교당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