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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에 해방이 올 것인가?

카다피의 42년 독재도 종말에 이르렀다. 이번에 반정부군은 리비아의 수도 트리폴리로 진격했다. 도시 곳곳에서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다.

카다피 체제의 종말은 환호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리비아에서 벌어진 투쟁의 본질은 애초 그 투쟁을 고무한 튀니지와 이집트의 혁명과는 이제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서방이 그 투쟁을 이용하면서 그리 된 것이었다.

이는 데이비드 카메론이 혁명에서 영국군이 한 구실을 상찬할 때 단적으로 드러난다.

권력

리비아의 반란은 더는 서방의 부와 권력에 도전하는 반란이 아니게 됐다.

2월에 민중혁명은 카다피를 몰락 직전으로 내몰았지만 카다피 지지 무장 세력의 반격에 부딪혀 물러나야 했다.

혹독한 억압 탓에 많은 리비아 사람들은 비행금지구역 설정을 요청하고 나섰다. 금지구역 설정이 생명을 구하는 중립적인 방법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유엔은 전면적 군사 개입을 의결했다. 튀니지와 이집트에서 친서방 독재자들이 몰락한 후 서방 정부들이 다시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열렸다고 본 것이다.

제국주의 세력은 리비아의 반란을 가로채 자신들의 이해관계(무역 협정과 국제 석유 거래)를 유지하려 한다. 이들은 어떤 정부가 들어서건 자신들한테 조건을 강요할 권리가 있는 양 생각한다.

그러나 현재 카다피 정권에 맞서 단결한 반정부 세력들은 리비아 재건에서 서방의 구실을 두고 분열할 듯하다.

나토는 3월 19일부터 8천5백 회 넘게 폭격에 나섰고, 그 특수부대가 지상에서 작전을 벌이고 있으며 무인공격기가 폭격과 정보 수집에 나섰다.

서방 정부들은 자국 노동자에게 ‘긴축 드라이브’를 강요하는 한편, 리비아 폭격에 쓰일 자금은 별 탈 없이 조달했다.

강대국들은 이 전쟁에 성공적인 ‘인도주의적 개입’이라는 표지를 붙이려고 안달이 났다.

그러나 서방의 동기는 ‘인도주의’와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진정으로 민주주의와 자유를 염려하는 사람들이 바레인, 예멘, 사우디아라비아의 반정부 운동을 그리도 홀대한다는 말인가?

그 이유는 그곳 독재자들이 친서방 세력이기 때문이다. 서방의 지도자들은 거리낌 없이 독재자들과 협력을 맺었다. 리비아에서 반란이 일어나기 직전까지도 그들과 카다피의 협력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서방은 한때 카다피를 ‘미친 개’라고 부르기도 했지만 이것은 토니 블레어가 2004년과 2007년에 카디피와 협력하는 데 걸림돌이 되지는 않았다.

혐오스런 카다피의 자리에 누가 들어서건 한 가지는 분명해 보인다. 서방은 자신과 협력할 수 있는 정부만을 옹호하려 할 것이다.

카다피가 몰락하고 그 자리에 친서방 정권이 들어선다면 서방의 지배자들은 이 지역에서 다시 발판을 얻는 셈이 된다. 더욱이 다른 곳에 개입할 자신감마저 얻게 될 것이다.

그러나 카다피의 몰락은 서방의 지배들한테 모순적인 효과가 있다.

수십 년 지배 끝에 무너진 야만적 독재자의 말로를 지켜본 다른 곳에서도 대담한 저항이 벌어질 수 있다. 특히 시리아의 바사르 알 아사드에 맞선 투쟁이 그러할 것이다.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에 확산된 반란의 정신이 고무된다면 현재 카다피의 종말을 반기는 서방의 지도자들은 다시 한 번 반제국주의 운동에 위협받는 처지가 될 것이다.

리비아의 ‘합법’ 정부

서방은 과도국가위원회를 리비아의 합법 정부로 승인했다.

그러나 이 위원회는 모든 반정부 세력의 지지를 얻지는 못한다.

최근 미스라타의 반정부 세력들이 과도국가위원회 인정을 거부했으며 트리폴리로 진격한 반정부군의 일부 역시 마찬가지다.

봉기 초기에는 지방의 혁명적 장교들이 위원회를 주도했다.

카다피 정부에서 부역하다가 이탈한 사람들이 벵가지로 몰려들면서 이들과 장교들 사이에 갈등이 커졌다.

서방은 혁명의 주도권을 쥐고 싶었기 때문에 이탈자들을 부추겼다. 나토가 폭격을 시작하면서 과도위원회는 이탈자들의 차지가 됐다. 이들이 서방과 ‘협력’할 수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과도위원회 지도자 무스타파 압델 잘릴은 2007~2011년 카다피 정부에서 법무부 장관을 지냈던 자다.

지난달 그는 과도위원회 무장 세력들의 지휘자가 다른 반정부군에 살해당하자 집행 위원회 전체를 교체했다.

다른 지도자 칼리파 헤프타는 리비아 군이 1980년 차드를 침공했을 당시 대령을 지냈던 자다.

그는 20년 넘게 미국 버지니아 주에서 살다 올해 초에 돌연 리비아에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