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6일

카다피, 인접 국가 튀니지의 독재자 벤 알리의 몰락을 보고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다. 튀니지 혁명가들을 비난하는 장문의 성명 발표.

2월 15일

리비아 동부의 벵가지에서 저항이 일어나면서 중동과 북아프리카 전역으로 확산하는 혁명 물결에 리비아가 휩싸이다. 이 저항에 카다피 정권이 가혹한 반격에 나서다.

2월 17일

리비아에서 열린 첫 번째 ‘분노의 날’에 네 도시에서 집회가 열리다. 군대가 발포해 2백30여 명 사망.

2월 18일

무장 반란이 시작되자 카다피 군이 급격히 수세에 몰리다. 이후 며칠 동안 주요 대도시에서 혁명적 위원회들이 등장해 식량 배급과 치안 조직.

2월 21일

전투기 조종사 두 명이 시위대 공격을 거부하고 말타에 착륙. 카다피 군에서 대량 탈주 발생. 탱크에서 벗어날 수 없도록 손이 묶인 채 탑승한 군인들이 탱크와 함께 전소된 채 발견. 2월 말이 되자 트리폴리를 제외한 모든 대도시를 반정부군이 점령. 트리폴리에서도 대중 시위 발생.

3월 3일

버락 오바마가 카다피 퇴진 요구. 사흘 뒤 영국 ‘외교관들’이 리비아에 밀입국한 뒤 반정부군에 잡혀 추방당하다.

3월 5일

혁명 세력들의 협력을 목표로 임시 과도정부위원회 결성.

3월 6일

카다피가 야만적인 반격에 나서다. 카다피 군이 신속하게 반정부군을 벵가지로 몰아내다.

3월 8일

데이비드 캐머런과 오바마가 리비아에 대한 ‘전면적인’ 군사적 옵션을 검토. 미국과 독일은 유엔이 비행금지구역을 선포하는 것에 반대. 프랑스 사르코지는 공습 주장.

3월 15일

카다피 군이 벵가지 재공세 시작.

3월 17일

유엔 안보리가 ‘민간인 보호’를 위해 ‘필요한 모든 수단’을 승인하는 것을 10 대 5로 가결.

3월 19일

2003년 이라크 침공 이후 가장 규모가 큰 공습 시작. 전쟁이 교착 국면에 빠지고 반정부군은 이제 나토의 공군력에 의지.

7월 17일

미국이 과도정부위원회를 리비아의 공식 정부로 인정.

7월 27일

영국도 과도정부위원회를 인정.

8월 22일

반정부군이 트리폴리로 진격하면서 카다피 몰락의 서막이 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