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선 여사가 2011년 9월 3일 향년 82세로 생을 마감했다.

이소선 여사는 이번에 갑자기 쓰러지기 직전에도 희망버스를 타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을 담아 고공 농성을 하는 김진숙 동지에게 ‘죽지말고 반드시 살아서 싸워 이겨야 한다’고 전했다.

“노동자가 뭐냐. 세상의 모든 것을 만들고 움직이는 게 노동자가 아니냐. 정규직이 나서서 비정규 노동자들과 싸워야 해결되는 거야. 정규직이고 비정규직이고 힘을 합쳐야 해. 비정규직 문제 해결하지 못하면 민주노총도 아니다. 학생들도 힘을 합쳐 싸워야 해. 학생들도 결국은 노동자가 되지 않냐.” 그녀는 이 몇 마디 말을 최근 십여 년 동안 항상 되풀이했다.

모든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어머니였던 이소선 여사

그녀는 타고난 투사는 아니었다. 아들 전태일이 근로기준법 책을 보고 있는 게 못마땅해 빈 솥에 숨기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는 1970년부터 남은 평생을 노동운동가로 살아 왔다. 아들의 유언에 따른 것이었다.

“태일이가 ‘나는 절대로 살아날 수는 없어요. 5분 있다 죽을지 3분 있다 죽을지 모르니, 엄마, 내 말 잘 들으세요’ 하더니 ‘노동자들은 캄캄한 암흑 세계에서 일하고 있는데, 나는 보다가 더 볼 수가 없었어요. 내가 죽어서 그 캄캄한 암흑세계에 작은 창구멍을 하나 낼 테니까, 내가 죽으면 노동자와 학생 들이 모두 힘을 합해 그 창구멍을 조금씩 넓히는 데 힘을 보태주세요. 그러면 빛이 보일 거예요. 어떻게든 하나가 돼서 싸워야 돼요. 둘이 되도 안 돼요. 어머니가 이걸 실천하지 않으면, 나를 지금까지 키운 것이 위선이 되는 거예요. 위선자가 되지 말고 꼭 …’ 그렇게 ‘꼭 … 꼭 …’ 할 때마다 피가 목에 고여서 말을 못하는 거야. 칼로 목 아래를 따니까 피가 풍풍 나와. 태일이가 ‘내가 부탁하는 말 꼭 … 꼭 …’ 할 때마다 피가 뿜어져 나왔어.”

그 이후로 청년들이 목숨을 바쳐 독재에 항거할 때마다 그녀는 마치 자신이 죄를 지은 듯 가슴이 찢어지는 듯 했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자신이 제대로 싸우지 못해 독재를 물리치지 못했다며 스스로를 질책했다. 매일 밤마다 신경안정제를 먹지 않으면 잠을 이루지 못하면서도 남은 평생 저항을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박정희 유신 독재와 전두환 신군부 하에서 수배 생활을 겪었고 세 차례나 구속이 됐다. 경찰서에 잡혀간 횟수는 2백 50번이 넘었다. 노동청장이 찾아와 거만을 떨자 아예 목덜미를 이빨로 깨물어 쫓아 버린 일화는 그녀가 얼마나 패기 넘치는 투사였는지를 말해 준다.

투사

엄혹한 독재 상황에서 건설한 청계피복노조와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은 그녀가 일찍이 공들여 만든 조직이었다.

그녀는 노동운동의 대모로서 쓴 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오도엽 시인과 한 인터뷰에서 1998년 겨울, 4백42일 동안 유가협 천막 농성을 했던 기억을 꺼내 놨다. “4백42일을 국회 앞에 천막 치고 농성을 하지 않았냐. 억울하게 죽은 우리 자식들 명예 회복시키고 진상 규명하라고 막 싸우지 않았냐. 386이고, 예전에 민주화 운동 했다가 뺏지를 단 사람이고 웃기지도 않아. 우리를 보면 누런 서류 봉투로 얼굴을 가리고 지나간다. ○○○의원, 이리와 봐. 내 얼굴 똑바로 보고 지나가. 그라면 부리나케 도망간다.”

2010년 전태일 열사 40주기 행사에서 발언하는 이소선 여사

 5년 전 전국노동자대회 때 전태일 노동상 시상을 하러 그녀가 단상에 올라 왔다. 시상을 마치고 단상을 내려가던 그녀가 갑자기 다시 올라 와 사회자의 마이크를 잡아채서는 노동조합 간부들을 향해 일갈했다.

“도저히 그냥 갈 수 없어서 한마디 하렵니다. 입으로만 노동자는 하나라고 외치면 뭐 합니까. 가장 밑바닥에서 소외되고 고통받는 비정규직을 나 몰라라 해서 어찌 민주노총이라 할 수 있습니까. 지금 정규직이라고 천년만년 정규직 할 것 같습니까. 정규직이 비정규직과 손잡고 싸우지 않으면 얼마 못 가 정규직도 비정규직 신세가 돼 발목에 쇠사슬 차고 노예처럼 일하게 될 겁니다.”

그녀는 배우려는 사람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칭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야. 그냥 남들한테 물어보고 살았어. 물어보고 남들한테 배우고 살았어. 나는 참 잘 물어보는 사람이야.”

투쟁의 현장에서 그녀의 음성은 노동자와 활동가 들에게 용기를 주었고 초심을 잃지 않게 해 줬다. 그녀의 진심어린 말을 이제 다시 들을 수 없어 마음이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