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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 년 - 이라크 민중 혁명이 제국주의를 패퇴시켰을 때

1958 년 - 이라크 민중 혁명이 제국주의를 패퇴시켰을 때

이라크인들은 제국주의의 멍에에서 벗어난 민주적이고 평등한 사회를 위해 투쟁한 경험을 밖에서 찾을 필요가 없다. 그들은 제국주의에 맞선 풍부한 투쟁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 중에도 1958년은 특별한 해였다. 당시 이라크 민중은 제국주의 국가[영국]와 그에 빌붙은 자국의 지배자들을 몰아냈다.

야바위꾼들

1931년 거대한 저항을 겪은 영국은 직접 통치의 어려움을 깨닫고 이라크를 형식적으로 독립시켰다. 그러나 1950년대까지 이라크는 독립 국가의 모습을 한 영국 제국주의의 속국이었다. 형식적으로 하쉬미트 왕조가 통치하고 있었지만 아무도 그것이 실세라고 믿지 않았다.

영국군은 두 곳의 공군기지에 주둔했고, 영국 관료들은 이라크 정부의 모든 부서에 “전문가”로 참여했다. 영국의 후원 아래 이라크 내 23개 가문이 56퍼센트의 민간 상업과 산업 자본을 소유했고 토후들이 대토지를 소유하고 있었다. 이들은 모두 영국 제국주의와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부역자들”이었다. 옛 오토만제국 지방관료 출신인 누리 알 사이드는 이들 부역자들을 대표하는 노련한 정치인이었다. 그는 대중의 저항이 일어나면 순식간에 영국 대사관으로 도망갈 준비가 돼 있었다.

영국 정보부는 이런 이라크 지배자들을 가리켜 “야바위꾼들의 독재정치”라고 표현했다.

1950년대 석유호황을 타고 이라크 경제가 성장했지만 평범한 이라크 사람들은 혜택을 받지 못했다. 당시 바스라에 파견된 한 영국인 관료는 자신이 목격한 끔찍한 가난 앞에서 몸서리쳤다. 그는 왜 당장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지 의아해했고, 나중에 일어난 사건은 그가 옳았음을 입증했다.

제국주의 억압과 사회적 불평등 앞에서 이라크 민중은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그들은 “알 와쓰바(1948)[도약]”에서 “알 인티파다(1952)[봉기]”로, 그리고 마침내 “알 다우라(1958)[혁명]”로 투쟁을 꾸준히 발전시켰다. 투쟁의 한가운데는 새로 등장한 노동계급이 있었다.

이러한 급진화 속에서 1958년 영국 제국주의의 지배를 연장하기 위한 바그다드조약 체결 소식이 전해지자 아랍 민족주의에 영향을 받은 “자유 장교단”이 군사쿠데타를 일으켰다. 쿠데타가 성공한 것은 거리로 쏟아져나온 시위대 때문이었다. 당시 시위는 종교적·종족적 분리를 뛰어넘은 모든 피억압 민중의 축제였다. 그들은 3천 명의 군인이 일으킨 쿠데타를 혁명으로 만들었다.

제국주의와 무능한 지배계급을 상징하는 누리 알 사이드는 여장한 채 도망치다가 살해당했고 영국 제국주의는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받았다.

1958년의 교훈은 명확하다. ‘제국주의는 대중 투쟁으로 무찌를 수 있다.’ 오늘날의 이라크인들은 이 교훈을 따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