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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파괴한 인류 문명 발상지

폴 먹가(영국의 좌파 언론인)

문명의 표준”을 결여한 “야만인들”이라는 표현은 영국의 〈선〉이 이라크 국민을 두고 한 말이다. 그러나 이라크의 역사를 보면, 이런 인종 차별은 역겹기 그지없다.

오늘날의 이라크 땅은 인류 문명의 위대한 업적을 이룬 본고장이다. 현대 이라크의 남부 지역에는 인류 최초의 진정한 도시들의 웅장한 유적이 널려 있다. 우루크(Uruk), 라가쉬(Lagash), 니푸르(Nippur), 키쉬(Kish), 우르(Ur, 성서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출신지로 추정되는 곳) 같은 곳이 바로 그런 도시들이다.

기원전 3천 년경 바스라 북부에서 발전한 수메르 문명은 문자를 고안한 최초의 문명이었다. 《길가메시 서사시》는 세계 최초의 위대한 문학 작품 중 하나로, 성서에 나오는 홍수 이야기의 뼈대를 이룬다.

수메르 문명은 이라크를 관류하는 두 강,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를 끼고 발전했다. 그 지역 전체가 메소포타미아[그리스어로 “두 강 사이에 있는 땅”이라는 뜻]로 알려졌다. 풍부한 농업 생산물 때문에 “비옥한 초승달 지대”라는 별명도 붙었다. 그 뒤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수백 년 동안 새로운 문명들이 흥망을 거듭했다.

니네베·바빌론·님루드(Nimroud)·아수르(Assour)의 인상적인 유적들은 이 사실을 보여 준다. 영국 침략자들이 약탈한 예술품이 대영박물관에서 보여 주는 것처럼 말이다.

오늘날 서양의 법학자들은 기원전 1728년부터 1686년까지 바빌로니아를 지배한 함무라비 왕의 법전을 근대법의 기초 중 하나로 보고 있다. 천문학과 수학의 기초도 상당 부분 메소포타미아에서 발전했다. 지금 우리가 쓰는 달력, 시간 체계, 각도 측정법도 모두 바빌로니아의 수학에 기원을 두고 있다. 24시간, 60분, 60초, 360도 원, 이 모든 것이 수메르인의 발명품이다.

기원전 6백 년경 바그다드 인근의 바빌론은 세계 문명의 중심지 중 하나였다. 유럽의 다른 어떤 곳보다 앞서 있었다. 유명한 바빌론의 공중 정원은 “고대 세계의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였다.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투스(기원전 480∼425년)는 바빌론의 찬란함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는 자신의 저서 《역사》에서 이렇게 썼다. “앗시리아에는 거대한 도시들이 엄청나게 많다. 그 중에서도 이 시기에 가장 유명하고 가장 강성한 곳은 바빌론이었다.

“바빌론만큼 웅장한 도시는 없다. 성벽을 따라 1백 개의 문이 있는데, 모두 놋쇠 상인방[창, 입구 따위의 위에 댄 가로대]이 번쩍거리고 있다. 가옥은 대개 3∼4층이고, 도로는 모두 곧게 뻗어 있다. 성 한가운데에는 단단한 벽돌로 축조한 탑이 있었다. 길이와 너비가 1펄롱[길이의 단위로 201.17미터]씩이었다. 그 위로 두번째 탑이 올라가 있고, 다시 세번째 탑이 올라가는 식으로 해서 8층까지 쌓아올렸다.

문명의 중심지

“비가 거의 오지 않는 지역이지만, 강의 관개 수로를 이용해 작물을 기르고 수확한다.

“여러 가지 수단을 동원해 육지에 수로를 냈다. 바빌로니아 전체가 운하로 연결돼 있다.

“우리가 아는 모든 나라 중에서 이렇게 풍요로운 곳은 없다. 이 평원 국가 전역에서 수많은 야자수가 자라고 있다. 이 야자수는 대부분 과실수이고, 이런 수확을 통해 바빌로니아인들은 빵과 포도주, 꿀을 얻는다.”

1천 년 후에 이라크는 다시 한번 당대 세계 문명의 중심지가 됐다. 이슬람 제국이 스페인과 모로코에서부터 북아프리카를 지나 아라비아 반도와 그 밖의 지역까지 확장됐다.

AD 762년에 압바스조 칼리프라고 하는 새로운 지배자들이 티그리스강 유역에 새 수도를 건설했다. 처음에 마디나트 아스 살람(Madinat as Salam, 평화의 도시)이라고 불렸던 수도는 곧 바그다드가 됐다.

AD 1천 년경 야쿠트(Yakut)라는 작가는 바그다드를 이렇게 묘사했다. “바그다드는 티그리스강 좌우에 거대한 반원 두 개를 이루며 형성됐다. 그 지름이 무려 18킬로미터나 된다.

“양쪽 강둑을 따라 꽤나 멀리 뻗어 있는 시내는 광장과 정원, 주택들과 아름다운 산책로가 정비돼 있고, 물산이 넘쳐나는 시장과 모스크, 공중목욕탕이 가득했다.

“2백만 명 이상이 거주했다. 커다란 거리들이 도시 전역에 뻗어 있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수로를 이용해 사계절 내내 각 가정에 충분한 물을 공급했다. 거리와 정원, 광장이 규칙적으로 관리됐고, 누구든 도시로 들어와 살 수 있었다. 거리에는 불을 밝혔다.

“모스크들은 규모도 크고 무척 아름다웠다. 또, 많은 대학과 병원, 남녀 각각의 진료소, 정신병원도 있었다.”

미국 학자들의 연구도 이런 사실을 확인한다.

“10세기에 바그다드는 세계 지식의 수도가 됐다. 이란인, 아랍인, 무슬림, 그리스도교인, 유대인, 문인, 과학자 들이 이 도시로 모여들었다.

“학자들은 높은 지위를 차지했다. 천문학자들은 별의 위치를 확정하고 태양년의 길이를 정했다.

“바그다드의 지혜의 전당(Academy of Wisdom)이 역동적인 과학 중심지로 떠올랐다. 지혜의 전당의 대규모 도서관은 번역 작업의 성과를 수용하며 풍성해졌다.

“인종과 종교에 상관 없이 모든 학자가 이 곳에서 연구할 수 있도록 초청됐다. 그들은 보편적 유산을 보존하는 데 관심을 가졌다. 그들은 아랍어만 사용했지만 특별히 이슬람만을 고집하지도 않았다.

지식의 메트로폴리스

“그리스도교도였던 야히아 이븐 마사와이(Yahya ibn Masawayh)는 열병과 위생학, 영양학에 관해 많은 저술을 남겼다. 그의 저술 중에는 최초의 안과 논문도 있다.

“흔히 주요 모스크 주위에 들어선 서점들에는 책이 아주 많았다. 그뿐 아니라 공공 도서관은 누구에게나 개방됐다. 바그다드는 지식의 수도였다. 풍요로운 문학적 중심지로서 아랍 문학을 찬란히 빛냈다. 시 문학도 계속 발전했다.

“노래와 음악은 다른 지역보다도 아마 바그다드에서 더 중요했을 것이다. 위대한 역사학자 이븐 할둔(Ibn Khaldun)은 이렇게 썼다. ‘바그다드에서 열린 멋진 연주회들은 아직까지 잊혀지지 않는 추억들을 남겼다.’

“교양 있는 바그다드 시민들은 삶의 풍요를 즐겼다. 그들은 술집에서 어울리거나 일부는 교외의 그리스도교 수도원에서 모이기도 했다. 샤부슈티(Shabushti)가 쓴 《수도회서(修道會書)(Book of Convents)는 바그다드의 술집들을 잘 묘사하고 있다.

“분명히 이런 술집에서 포도주를 마셨다. 과즙 아이스크림도 먹었다. 체스가 단연 최고의 오락거리였고, 주사위 놀이가 그 뒤를 이었다. 공공 장소에서는 대중 오락을 즐길 수 있었다.

“이 문명에 커다란 존경을 표해야 한다. 이 보편 문화의 중심지에서 예절, 세련된 취미, 보통 교육, 종교와 철학 사상의 경합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이런 것들 덕분에 메소포타미아의 이 도시가 세계의 여왕이 될 수 있었다.”

미군과 영국군이 잿더미로 만들고 있는 유산이 바로 이것이다.


근대 유럽 문명의 요람

바그다드를 중심으로 한 이슬람 세계의 빛나는 문화와 학문은 유럽에서 르네상스라고 부르는 문예 부흥의 초석이었다.

고대 그리스가 몰락하고 다시 AD 5세기 이후 로마 문명이 붕괴하자 서유럽은 이른바 “암흑 시대”로 빠져들었다. 문화와 문명이 쇠퇴했다.

바그다드 같은 도시들, 그리고 코르도바, 톨레도, 그라나다 등 스페인에서 융성한 이슬람 도시들의 아랍 학자들이 문화와 문명의 불꽃을 계속 타오르게 했다. 아리스토텔레스, 유클리드 같은 고대 문화와 과학의 대가들의 저작을 아랍어로 번역한 것이 바로 그들이었다. 이 아랍어 저작들을 다시 라틴어로 옮기는 과정을 통해 지식이 유럽으로 보급됐다.

아랍 학자들은 모든 분야에서 새로운 진보를 이룩했다. 예를 들어 수학사 교과서에는 이렇게 나온다. “역대 수학자들의 맨 선두에는 알-화리즈미(Al-Khwarizmi)가 있다.” 그는 9세기에 바그다드에서 활약한 수학자다.

“그가 쓴 산수와 대수학 저작들은 가장 오래된 것들이다. 이 저작들은 동양과 서양을 막론하고 그 뒤 수백 년 동안 수학 지식의 으뜸가는 원천이었다.”

대수(代數)라는 말 자체가 “완성하다, 복원하다”의 뜻을 가진 아랍어에서 유래했다. 알고리슴(algorithm)이라고 부르는 단계적 연산도 알-화리즈미가 고안한 것이다. 알고리슴은 모든 현대 컴퓨터 기술의 기초다.

스페인의 이슬람 도시들이 이런 지식을 유럽에 전수하는 핵심 통로 구실을 했다.

역사학자 필립 히티(Philip Hitti)는 이렇게 쓰고 있다.

“무슬림이 지배했던 스페인은 중세 유럽의 지성사에서 최고의 장(章) 가운데 하나를 장식했다. 8세기 중엽부터 13세기 초까지 아랍어를 사용한 민족들이 세계 문명과 문화의 주요 담당자였다.

“고대의 과학과 철학을 재발굴해 보완하고 전달한 것은 바로 이들이었다.

“코르도바, 그라나다, 톨레도, 세비야에 설립된 수많은 교육 기관들에서 박학한 교사들이 과학과 예술의 교훈들을 가르쳤다.

“바로 이런 이슬람 교육 기관들이 근대 유럽 문명의 요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