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7월 24일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버시바우 미 대사와 전화통화를 한다. 그리고 그는 한국의 약가적정화방안에 대해 미국에게 사전 통보하고, 한국의 약가정책에 간섭할 수 있게 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싸웠다”고 보고한다. 그는 이와 관련한 청와대 회의의 내용까지를 친절하게 미국에 알려 준다.

2008년 1월 16일 이명박 당선인은 당선자사무실에서 버시바우 미 대사 등을 만난다. 그는 이 자리에서 FTA 비준을 위해 쇠고기 시장 개방이 조속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고, 1월 17일 현인택 통일부장관은 미 대사에게 “캠프데이비드 방문이 이상적일 것”이라면서 “방미 전에 쇠고기 전면개방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위키리크스를 통해 밝혀진 미대사관의 국무부 보고 전문에 나오는 한미FTA 협상과정의 일부다. 한국 협상대표라는 자가 한국의 정책 결정과정과 그 배경을 미국 대사에게 보고하고, 자신이 미국의 이익을 위해 “필사적으로 싸웠다”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한국의 협상 부대표는 국민들에게는 “쌀은 막았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더니 정작 미국에게는 2015년에 쌀 개방을 한다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이것이 한미FTA 협상의 진실이다.  

한미FTA를 해도 정책결정권은 한국에 있다고? 거짓말! 이미 약값을 내리는 약가적정화 방안은 한미FTA 협상이 시작된 때부터 미국의 승낙을 받아야 했다. 그리고 이 ‘약가적정화방안’은 결국 현재 실종됐다. 쇠고기 협상이 국민건강을 위한 것이었고 대통령의 방미와는 상관이 없다고? 거짓말! 캠프데이비드에 가서 조지 부시와 골프카트를 타려는 생각에 엿 바꿔 먹은 것, 바로 쇠고기 개방이었다. 

오로지 미국과 미국의 거대기업들, 그리고 한국의 재벌들과 관료 자신들을 위한 협상이었다. 민주당 정권과 지금의 한나라당 정권의 FTA 협상과정 모두가 그랬다. 

짝짜꿍

아니나 다를까 FTA를 체결한 정당답게 민주당은 국회외통위에서 한나라당과 짝짜꿍을 맞추고 있다. 9월 1일 민주당 외통위간사인 김동철 의원은 민주당을 대표해 남경필 외통위원장과 “미국 의회에서 한미FTA 비준동의안 처리가 객관적으로 명확해지는 시점에 여야 간사 합의를 거쳐 동의안을 상정한다”고 합의했다. 도대체 왜 한국 국회 일정을 미국 의회 일정과 맞추어야 하는가. 위키리크스에서 드러난 한국의 여러 정치인들과 관료군상들의 행동을 떠올릴 때만 이해가 갈 행동이다.  

사정이 이러다보니 한나라당이 외통위에 한미FTA 비준동의안을 상정하려 하자 민주당과 한나라당 사이에서는 한미FTA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 의회가 ‘객관적으로’ FTA 처리를 시작했다 아니다라는 황당한 설전만 벌어졌다. 그리고 결국 비준동의안은 직권상정됐다. 

한국의 국회는 한미FTA 협정문의 글자 한 자도 고칠 권한이 없으므로 외통위 비준동의안 상정은 매우 중대하다. 한나라당이 마음만 먹으면 국회의장 직권상정으로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수도 있다. 

민주당은 직권상정에 항의한답시고 남경필 외통위 위원장에게 ‘양보’를 받아냈다. 그런데 이 양보가 가관이다. “미 의회가 한미FTA 이행법안을 제출하거나, 미 하원이 TAA(무역조정지원법)을 처리할 때까지 비준동의안을 심의 개시하지 않겠다”는 것. 이것은 뒤집어 말하면 “미 의회가 한미FTA를 처리하면 한국도 한미FTA를 처리한다”는 내용일 뿐이다. 이것이 양보인가? 

‘미 의회 일정에 따라 상정’한다는 합의가 이제는 ‘미 의회 일정에 따라 국회 처리를 한다’는 것으로 오히려 확대됐다. 이러한 합의의 주역인 김동철 의원은 9월 19일 위키리크스에서 ‘한국 국민들의 미 쇠고기 수입에 대한 비판을 약화시키기 위해 미국이 대만에 수입조건 완화를 압박해야 한다’는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진 외통부 지역통상국장 안총기에 대해 ‘매국노’라 지칭했다. 그러나 미국 의회 일정에 맞추어 한국 국회도 FTA 처리를 하자고 합의한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정작 무엇이라 불러야 한단 말인가? 

차별점

여기까지는 한미FTA ‘체결당’과 ‘비준추진당’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이니 놀랍지도 않다.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민주노동당이다.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한나라당의 직권상정에 대해 민주당과 공동으로 규탄 기자회견을 했을 뿐 민주당의 황당한 작태에 대해서는 한마디의 비판도 하지 않고 있다. 

이번만이 아니다. 9월 1일 미국 의회 일정에 따른 상정을 합의했을 때에도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민주당을 비판하지 않았다. 현재 국회에서 한미FTA 문제에 대해 민주노동당은 민주당과 차별점을 찾기 힘들다.  

한미FTA는 누가 봐도 민주당과 진보정당이 가장 큰 입장 차이를 보이는 사안 중 하나다. 지난 한EU FTA에서 민주당이 국회 퇴장을 통해 ‘사실상 동의’해 이른바 ‘야권연대’의 진정성이 문제가 된 바 있다. 그리고 지금 민주당은 다시 한번 사실상의 한미FTA 동의를 위해 한나라당과의 합의를 차곡차곡 쌓아 나가고 있다. 그런데도 왜 민주노동당은 민주당의 이러한 행태를 비판하지 않는 것일까? 설마 현 민주노동당 지도부에게는 ‘야권연대’가 한미FTA보다 더 중요한 건 아닌가?

진보정당도 물론 보수야당과 사안별 연대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연대는 비판을 삼가는 것을 전제조건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민주당이 한미FTA에 대해 반대하는 시늉만이라도 하게 하려면 민주당의 배신 행위에 대한 강력한 비판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리고 이것이 민주노동당의 구실이다. 국민참여당과의 합당을 추진하더니 이제는 민주당에 대한 비판까지 포기했다는 것일까?  

“망국적 한미FTA 폐지하자. 굴욕 졸속 반민주적 협상을 중지하라”, “숭고한 민중을 우롱하지 마라 … 4대 선결조건, 투자자 정부 제소, 의제도 없는 쌀을 연막전술로 펴서 쇠고기 수입하지 마라. 언론을 오도하고 국민을 우롱하지 마라.” 허세욱 동지의 유언이다. 

민주노동당이 한미FTA에서조차 민주당과의 연대를 위해 비판을 삼간다면 허세욱은 무엇을 위해 자신을 불살랐단 말인가.

허세욱은 유서에 “모금은 하지 말아 주세요. 전부 비정규직이니까” 하고 썼다. 비정규직이 정규직보다 많은 현실을 만든 것은 바로 노무현 정부였다. 그리고 그를 계승한 정당이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이다. 민주노동당이 이를 잊으면 더는 민주노동당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