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5일 민주노동당 임시당대회에서 표결에 참여한 대의원 7백87명 중 5백10명만이 참여당과의 통합안에 지지를 보내면서 안건이 부결됐다. 안건 통과에 필요한 3분의 2의 벽을 넘지 못한 것이다.

이로써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와 당권파 지도부가 지난 몇달 동안 진보대통합을 파탄시키면서까지 추진해 온 참여당과의 통합 시도는 결정적인 타격을 입었다.

참여당과의 통합 결정은" 진보의 반쪽을 버리는 것입니다." 25일 민주노동당 임시당대회가 시작되기 전 민주노동당 당원들이 참여당과의 통합에 반대하는 캠페인을 하고 있다.
25일 민주노동당 임시당대회가 시작되기 전 보건의료 노동자가 참여당과의 통합에 반대하는 캠페인을 하고 있다.
김소연 기륭전자 분회장과 김형우 금속노조 부위원장이 참여당과의 통합에 반대하는 노동자들의 선언을 들고 있다.

이번 당대회는 처음부터 강력한 반발 속에 소집됐다. 다함께를 비롯한 참여당과의 통합 반대파들이 민주노동당 안팎에서 반대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벌이는 가운데, 당 지도부는 수임기관 운영위 내부의 반발 때문에 직접 대의원 서명을 받아 당대회를 소집해야 했다.

당대회를 앞두고 노동조합·진보단체 활동가들의 통합 반대 입장과 성명서 발표가 빗발쳤고, 결정적으로 당대회 3일 전에 권영길·강기갑·천영세 민주노동당 전 당대표들의 통합 반대 입장이 발표됐다.

당대회 바로 전날 장장 6시간에 걸친 민주노총 중집 회의 결과도 통합 반대 노조 지도자들의 강력한 반발 때문에 “참여당은 선통합 대상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는 결정이 내려졌다.

통합안이 3분의 2 지지를 얻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낀 당권파 지도부는 ‘단지 참여당이 통합 대상인지 아닌지 당론을 정하자는 것일 뿐, 진보신당 통합파를 배제하자는 게 아니’라는 물타기를 해 왔고, 이런 점을 반영한 수정안이 나온다는 얘기도 있었다.

하지만 이날 당대회의 의미가 참여당과의 통합 찬성이냐 반대냐를 “양자택일”하는 자리라는 점이 너무나 분명했기 때문인지 결국 이런 수정안은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 당대회는 참여당과의 통합을 추진하는 세력과 그것을 반대하는 세력의 정면 대결로 진행됐다. 역대 최대 규모의 대의원이 참석한 것도 그 반영이었다.

이런 뜨거운 열기와 엄청난 긴장감 때문인지 당대회 사회자는 “격조있는 토론”을 거듭 강조했다.

“민주노총의 정치방침은 분열해선 안 된다는 것”

당대회 초반부터 참여당과의 통합 반대파들의 기세를 올려 준 것은 전격적으로 신상발언에 나선 민주노총 김영훈 위원장이었다. 김영훈 위원장은 민주노총 내부 견해 차이가 뚜렷해 매우 부담스러운 상황이었음에도, 민주노총의 대표로서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진보정당과 민주노총의 단결을 위해 어떤 선택이 필요한지 분명히 했다.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이 25일 민주노동당 임시당대회에서 민주노총의 분열을 막기 위해 참여당과의 통합안에 찬성해선 안 된다는 연설을 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단순히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는 조직이 아닙니다. 민주노동당을 만든 조직입니다.

“그런데 오늘 이 안건이 통과되면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 방침과 충돌하게 될 것입니다. 보수 야당들이 민주노총 내 출세주의자들과 힘을 합쳐 민주노총을 먹잇감으로 삼을 것입니다.

“또 누구는 통일전선을 말하지만, 통일전선 운동의 핵심은 노동계급의 지도력입니다. 지금 저는 마지막으로 도청을 사수하는 사수대의 심정입니다. 제게 유일한 정치 방침이 있다면 그것은 분열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김영훈 위원장의 이 용기있고 올바른 입장 표명은 이날 당대회에서 참여당과의 통합을 추진하는 세력이 결코 승리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예감하게 했다. 이후 벌어진 찬반토론에서는 양쪽의 주장이 팽팽하게 대립했다.

찬성 쪽 대의원들은 ‘참여당의 과거는 문제가 있는 게 사실이지만 그들이 5·31 합의문을 지지하면서 과거를 반성하는 상황에서 배척해서는 안 된다’, ‘여론조사를 보면 현장의 노동자들의 다수가 소통합이 아니라 더 폭넓은 통합을 원한다’, ‘진보진영이 벽을 만들면 안되며, 나만 진보라고 고집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는 집권할 수가 없다’, ‘분열은 당 결정을 따르지 않기 때문이며, 당론을 정하고 그것을 따르면 되는 것이다’는 등의 주장을 펼쳤다.

하지만 통합에 반대하는 대의원들은 이에 대해 효과적으로 반박하며 진보의 정체성 유지와 단결을 호소했다.

참여당과의 통합 반대 캠페인을 주도적으로 이끈 다함께 소속의 서울 중구위원장 김인식(다함께 운영위원)은 “오늘 민주노동당의 결정을 전체 진보진영과 노동자 민중 운동이 주목하고 있습니다”하며 안건 부결을 호소했다.

“민주노동당이 모진 탄압과 억압에도 성장한 것은 민주노총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참여당 문제 때문에 민주노총에서 분열이 생기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 미래를 도모하기 어렵게 만듭니다.

“당론만 정하자는 얘기는 솔직하지 않습니다. 민주노동당이 참여당과 통합 당론을 결정하면 진보대통합에 합류하려 한 진보신당 통합파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될 것입니다. 거꾸로 돌아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분열은 돌이킬 수 없습니다.

“반대로 오늘 우리가 이 안건을 부결시킨다면 더디더라도 진보진영의 단결을 도모할 초석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참여당과의 통합이 아니라 진보진영의 단결이야말로 진정한 보증수표입니다.”

전남 곡성의 박웅두 대의원은 반대 토론에서 “과거를 묻지 말자는데 어떻게 묻지 않을 수 있습니까”하고 비판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 경찰이 농민들을 짓밟고 선혈 낭자하게 진압하던 기억이 납니다. 참여정부와 유시민 일당이 그랬습니다.

“저는 지금 추곡수매제 부활하라는 서명을 받고 다니고 있습니다. 한미FTA 반대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수매제 없애고 한미FTA 추진한 정부가 누구입니까. 참여정부입니다. 그 사람들이 뿌린 씨앗이 농민에게 피눈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자연에서도 서로 종이 다른 것을 교합하는 이종교합으로 만들어진 생물은 새로운 씨앗을 만들지 못합니다.”

“진보의 반쪽을 품어야 합니다”

그밖에도 인천시당 이용규 위원장, 보건의료노조 나순자 위원장 등이 진보의 분열을 막기 위해 참여당과의 통합안을 부결시키자고 호소했다.

무엇보다 이날 당대회의 절정은 민주노동당 창당 주역인 권영길 전 대표의 가슴 절절한 호소였다.

"진보의 반쪽은 여기 안에 있지만 반쪽은 우리 밖에 있습니다. 그 동지들 우리가 품어야 합니다!”  권영길 전 대표가 발언을 하고 있다.
"내가 반대하는 이유는 민주노총을 흔들고 뿌리를 뽑아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권영길 전 대표가 열정적으로 발언을 하고 있다.

“저는 노동계에서 제사를 지내는 제사장이었습니다. 많은 동지들을 제 손으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열사들을 가슴에 묻었습니다. 그들을 가슴에 묻으면서 노동자 민중이 집권하는 날을 만들 것이라고 다짐했습니다.

“한진중공업 김주익이 85호 크레인에 목을 맸을 때 노무현은 ‘분신으로 투쟁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85호 크레인에는 김진숙이 있습니다. 김주익이 목 매 죽고, 농민 전용철, 홍덕표가 맞아 죽고, 허세욱이 불타 죽는 일이 언제였습니까? 누구 책임입니까? 용서할 수는 있어도 잊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내가 반대하는 이유는 민주노총을 흔들고 뿌리를 뽑아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참여당과의 선통합시 민주노총은 살아남지 못합니다. 사분오열될 것입니다.

“넥타이 부대를 대표하는 사무금융노조가 반대하고 있습니다. 전국 공공운수노조가 반대하고 있습니다. 금속노조가, 건설노조가, 보건의료노조가, 비정규직노조가, 언론노조가, 교수노조가 반대하고 있습니다. 서울, 인천, 강원, … 등에서 민주노총 지역 본부장들이 반대하고 있습니다!

“참여당과의 통합을 결정하면 또 다른 진보정당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동의할 수 없는 세력들이 모여 또 하나의 진보정당을 만드는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1997년과 2007년 대선에서 우리는 실패했습니다. 진보진영의 반쪽만 지지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2002년과 2004년에 우리는 함께 해서 크게 성공했습니다. 여러분 자주, 평등, 평화의 새 세상 이루자던 진보의 반쪽은 여기 안에 있지만 반쪽은 우리 밖에 있습니다. 그 동지들 우리가 품어야 합니다!”

권영길 전 대표의 혼신을 다한 진심어린 연설을 들으면서 많은 대의원들이 눈시울을 붉혔고 눈물을 흘렸다. 연설 중간에도 계속해서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권영길 전 대표의 연설은 이날 표결 결과에 쐐기를 박는 구실을 했다.

그리고 바로 이 때문에 참여당과의 통합 찬성 세력의 일부는 이 연설에 매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연설 중간에 ‘연설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는 핑계로 고성을 지르고 삿대질을 하며 연설을 방해한 것이다. 창당 주역이자 전 대표이며 몇 차례나 민주노동당의 대통령 후보를 하기도 한 사람에 대한 존중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이것은 사회자가 거듭 강조한 “격조있는 토론” 자세와는 거리가 멀었으며 많은 사람들의 눈쌀을 찌푸리게 했다. 참여당 문제가 진보진영 내부 분열만 낳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생생한 사례이기도 했다.

참여당이 통합대상인지를 확인하는 민주노동당 임시당대회에서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은 찬성 표결에 손을 들지 않았고,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는 찬성하는 비표를 들고 있다.

기쁘고 힘이 나는 소식

그러나 결국 진보의 분열과 정체성 훼손을 감수하며 참여당과의 통합을 추진해 온 세력은 패배했다. 안건 부결이라는 결과가 확인되자 참여당과의 통합을 찬성한 지도부와 대의원들은 망연자실한 때문인지 당대회 마지막에 항상 부르던 민주노동당 당가도 부르지 않고 모두 황망히 자리를 떴다.

반면 진보가 아닌 친자본주의 정당과의 무원칙한 통합을 반대한 대의원들과 그들을 지지한 사람들은 모두 진보의 가치와 단결을 지켜냈다는 기쁜 마음으로 서로를 고무했다.

사실 민주노동당 당권파 지도부는 지금껏 참여당과의 통합이 진보를 분열시키고 진보의 정체성을 훼손한다는 비판을 무릅쓰고 진보대통합을 파탄내면서까지 참여당과의 통합에 매달려 왔다. 하지만 이런 무리한 밀어붙이기는 끝내 성공하지 못했다.

이는 민주노동당 안팎의 진보 활동가들이 제대로 된 진보대통합을 위해 민주노동당 당권파 지도부의 막무가내식 참여당 통합 시도에 맞서 끈질기게 헌신적으로 싸워 온 것이 마침내 결실을 맺은 것이다.

이제 참여당에서 진행하기 시작했던 민주노동당과의 통합을 위한 당원 총투표도 중단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당분간 진보정당-참여당 통합은 시도되기 힘들 것이다. 잘못된 방향을 패권적으로 추진해 온 민주노동당 당권파 지도부가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질 수 있다.

반면 당대회 결정을 디딤돌 삼아 진보신당 통합파 등과 제대로 된 진보대통합을 추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게 됐다. 이것은 노동자 단결과 투쟁에 도움이 되는 진보대통합을 염원해 온 수많은 노동자와 활동가들에게 매우 기쁘고 힘이 나는 소식일 것이다.

그동안 수개월 넘게 제대로 된 진보대통합과 참여당과의 통합 반대를 위해 싸워 온 투사들은 이 결과 앞에서 자랑스러워할 자격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