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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도가니〉 파문:
폭력과 비리의 도가니는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광주 인화학교 농아원생들을 상대로 자행된 끔찍한 만행들이 영화 〈도가니〉를 통해 폭로됐다. 광주시청, 시교육청, 검찰, 사법부 등까지 연결된 더러운 연결망이 드러나면서 충격을 주고 있다.

2006년 ‘인화학교 성폭력대책위’(이하 대책위)가 2백 일 넘게 투쟁할 때 광주시는 집시법 위반, 공무집행 방해 등으로 대책위를 고발했다. 성폭력 사태가 불거진 이후에도 광주시교육청은 해마다 약 30억 원을 인화학교에 지원한 반면, 공립특수학교를 만들라는 대책위 요구는 “예산이 없다”면서 4년이나 거부했다.

5년여 간 지속된 ‘인화학교 성폭력대책위’의 끈질긴 투쟁이 장애인 복지시설의 폭력·비리 문제를 사회적 화두로 만들었다. 사진은 2007년 시위 모습.

사건 초기 국가인권위의 권고로 이사 네 명이 해임됐지만, 법원은 학교 측의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다. 학생들이 항의 표시로 교장에게 밀가루와 계란을 던졌을 때, 검찰은 학생 16명을 ‘폭행, 업무 방해’ 혐의로 입건했다. 단지 시장 면담을 요구하며 투쟁했던 대책위 집행위원장에게는 징역 10월을 구형했다

광주시청, 시교육청, 법원, 검찰은 성폭력 문제에 무능하게 대처했던 것이 아니라, 대책위의 인화학교 정상화 요구를 적극적으로 방해·탄압해 온 것이다. 최선을 다했다는 이들의 변명이 역겨운 까닭이다.

새빨간 거짓말

이것은 인화학교만의 문제도 아니다. 1996년 평택 에바다, 2006년 성람재단 등 장애인 복지시설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친인척 관계로 맺어진 세력들이 주요 보직을 독차지하면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왔던 것이 폭로됐다. 그때마다 정권은(한나라당이든 민주당이든) 일관되게 가해자를 옹호했고 장애인과 연대 단체 들을 탄압했다.

이것은 이 나라에서 국가가 장애인들을 민간 시설에 수용한 뒤 운영비만 지원하는 정책을 취해 왔기 때문이다. 장애인들을 시설에 수용하면 그들이 사회로 나와서 일하고 교육받을 수 있도록 건물 구조, 대중교통, 노동 조건, 교육 제도 등을 바꾸지 않아도 된다. 인화학교 관계자가 최근 국정감사에서 성폭력 직원을 다시 채용한 것이 ‘학교 정상화’를 위한 것이었다고 뻔뻔하게 말할 수 있었던 이유다.

국내 많은 장애인 복지시설들은 한국전쟁 이후 외국의 원조 단체나 선교 단체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 시설들은 수십 년 동안 국가 보조금으로 운영비를 충당하면서도, 사유재산이라는 이유로 설립자의 후계자들이 운영한다. 그래서 장애인 복지시설을 물려받은 이들은 마음만 먹으면 수억에서 수십억 원에 이르는 국가 보조금을 남용하면서 지역 유지 행세를 할 수 있다. 이렇게 국가와 시설주가 ‘누이 좋고 매부 좋고’ 하는 사이에 그 안에서 생활하는 장애인들은 인간 이하의 생활을 감수해야 한다.

최근 인화학교 대책위는 단지 폐교만이 아니라 사회복지법인 취소를 요구하고 있다. 광주시청 역시 여론의 압력 때문에 폐교 후 법인을 취소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과거 장애인 시설에서 문제가 폭로돼도 관계자 몇 명만 처벌받을 뿐 그들의 일가 친척이 포진한 법인은 그대로 남아 시설을 계속 운영하는 일이 흔했는데, 이를 막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법인이 실제로 취소될 때까지 아래로부터 압력이 지속돼야만 한다.

장애인 수용시설이 종종 비리의 ‘도가니’가 되는 까닭은 장애인들이 사회와 격리된 채 교육받거나 일을 하는 구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장애인 운동은 일반 학교에서 장애·비장애 학생과 함께 교육받을 수 있도록 편의시설과 특수교사를 확충하고, 일반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지고 장애인을 고용하라고 요구해 왔다.

공공기관과 공기업, 사내유보금을 수백조 원 쌓아 둔 대기업부터 법이 정하는 만큼이라도 장애인 고용을 늘리도록 강제해야 한다.

노동자 운동은 이런 장애인 운동과 요구를 적극 지지하고 연대해야 한다. 이 나라에서 장애인들의 집단적이고 사회적인 투쟁은 1987년 말에 시작됐는데, 1987년 6월 항쟁과 7~9월 노동자 대투쟁으로 정치적 공간이 열리고 싸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기 때문이었다.

근본적으로는 교육을 ‘인적 자원’을 만들기 위한 것으로 여기고, 노동을 자본 축적 수단으로만 보는 체제의 논리에 도전해야 한다. 지배자들이 봤을 때 장애인은 비장애인보다 교육 경쟁과 착취 측면에서 효과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장애인들은 교육과 노동 현장에서 배제돼 있다. 그래서 장애인들은 비장애인보다 자립적으로 생활하기 어려운 조건에 처해 있다.

그러나 장애인이 불편하고 고통스런 삶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결코 불가피한 일이 아니다. 이라크에 참전했다가 팔다리를 잃은 한 미군이 최첨단 기술 덕분에 수영·서핑 등을 즐기고 국가보훈처 차관보를 지낸다는 사실은 이를 보여 준다. 그러나 국가로부터 외면받는 다수 장애인들은 극빈층에 속하며 이런 생활을 누리지 못한다.

경쟁적 축적이 아니라 인간의 필요에 따라 자원과 서비스를 배분하는 사회에서만 장애인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