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 혁명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콜린 바커가 역사적 경험을 돌아보며 혁명이 부딪힐 문제와 이후 과제를 분석한다. 콜린 바커는 영국 사회주의자로 《21세기 사회주의》(다함께)의 저자이자, 《혁명의 현실성》(책갈피)의 공저자이다.


이집트와 아랍 각지에서 계속되는 혁명은 중요한 질문을 제기한다. 무엇이 혁명적 상황을 낳는가? 

러시아 혁명가 레닌은 두 가지 서로 충돌하는 조건들이 충족될 때 혁명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즉, 착취자가 더는 옛 방식으로 지배할 수 없고, “하층 계급들이 더는 옛 방식으로 살기를 바라지 않는” 상황에서 혁명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2011년 2월 이집트 혁명의 하루  이런 투쟁을 통해 대중은 급속히 발전한다.

역사가 찰스 틸리는 ‘이중 권력’에 관한 레온 트로츠키의 설명에서 영감을 얻어 혁명적 상황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첫째, 정부는 자신의 일상적 지배 기구에 대한 부분적 통제를 도전 세력에게 잃는다.  

둘째, 상당수 국민이 도전자의 주장을 지지한다. 

셋째, 정부는 도전자와 지지자들을 진압하지 못한다. 즉, 심각한 정치 위기가 발생해 경쟁 세력들 사이에 발생하는 투쟁을 통해 그것이 해결되는 상황인 것이다. 

이런 조건이 지속되는 동안 혁명적 상황이 지속되는 것이다. 어떤 세력이 단일한 정치적 권력 중심을 재확립하면 혁명도 끝나는 것이다. 

이런 포괄적 정의를 사용하면 대단히 다양한 결과를 낳을 많은 상황이 혁명적 위기 상황에 포함될 것이다. 어떤 상황은 사회주의자들에게 진정한 기회를 제공할 것이고 다른 것들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예컨대, 대다수 군사 쿠데타는 잠시라도 그런 ‘혁명적 상황’을 낳는다. 그러나 쿠데타가 좌파가 활동하기 적절한 공간을 창출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물론, 여기서도 예외는 있다. 1917년 여름 코르닐로프 장군의 쿠데타 위협은 러시아 혁명을 왼쪽으로 급진화시켜 볼셰비키를 강화시켰다. 

또, 쿠데타는 때때로 그 이상의 결과를 낳기도 한다. 예컨대, 1974년 4월 포르투갈에서는 옛 파시스트 정권을 전복시킨 군사 음모가 발생했고, 그것은 18개월간 지속된 혁명적 상황이 발생하는 계기가 됐다. 

의회

꼭 군부 때문이 아니더라도 인구 대다수가 혁명에 참가하지 못하는 혁명적 위기도 있다. 

1976∼78년 사이 스페인에서 파시즘이 종식되는 과정에서는 사회당과 공산당이 참가한 ‘협정’이 맺어졌다. 이 협정의 목적은 파시즘 종식 과정에서 급진적 도전이 나타나는 것을 막는 것이었다. 

1980년대 대다수 주요 라틴아메리카 나라들에서도 군부 독재가 비슷한 방식으로 종식됐다. 이 협정들에는 군부 독재 아래 살인과 고문을 자행한 자들을 처벌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1989년 폴란드와 헝가리의 ‘공산주의’ 정권들은 야당 인사와 공산당 지도자 들 사이의 ‘원탁 회의’를 통해 종식됐다. 노동자 파업과 시위가 한 구실은 거의 없었다.  

심지어 한 지식인은 헝가리에 의회민주주의를 가져다 준 혁명을 ‘언론이 만들어 낸 사건’으로 규정했다. 새 정부는 신자유주의 시장 개혁과 사유화를 신속하게 진행했고, 많은 옛 공산당 관리들이 부유한 민간 자본가가 됐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아파르헤이트에 반대하는 투쟁이 매우 컸지만, 아프리카민족회의(ANC)는 옛 백인 지배자들과 타협을 하고 지배자들의 범죄를 용서하고 특권을 보호했다. 

ANC는 집권하고 2년 뒤부터 신자유주의를 수용했고 대다수 남아공 흑인들은 수십 년간 겪어 온 빈곤에서 계속 고통받아야 했다. 

이런 혁명들은 자유주의, 사회당, 공산당 지도자, 중간계급 야당인사, 종교 지도자 혹은 다른 누군가에 의해 민중 운동에서 ‘일탈’한 것이었다. 그들은 혁명이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정치 혁명’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으며, 옛 사회의 계급 질서는 보존됐다. 사회 계급 구조가 극적으로 변하는 사회 혁명의 가능성은 실현되지 못했다.  

심지어 대중시위가 기존 정권들을 무너뜨린 1989년 동유럽과 체코슬로바키아에서도 독립적 노동계급 투쟁과 조직은 거의 볼 수 없었다. 수많은 노동자는 시장이 확산되면 자신이 바란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사회주의는 더러운 말이 됐다.  

그러나 20년 동안 신자유주의를 겪은 다음에, 또 세계 자본주의가 위기에 빠진 상황에서 새로운 혁명적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과거의 환상이 깨지고 흥미진진한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고 있다. 

참가자들

혁명적 상황의 발생에서 그것의 궁극적 결과까지 가는 길은 직선이 아니다. 그 길에는 도약과 뒷걸음질, 전진과 후퇴가 있다. 수많은 사람이 자기 삶에서 최초로 역사를 만들기 위해 뛰어들었을 때 그런 우여곡절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 우여곡절이 장기간 지속되면서 노동자들에게 새로운 사상, 새로운 조직 형태, 새로운 희망을 만들 공간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2011년 2월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에서처럼, 민중 혁명은 참가자들이 하나로 단결했다는 정서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다. 과거의 혁명도 그랬다. 

혁명가 칼 마르크스는 1848년 프랑스 2월 혁명을 “아름다운 혁명”이라고 불렀다. 1974년 4월 포르투갈 혁명은 “꽃들의 혁명”이라고 불렸다. 

그러나 이런 혁명 첫 단계의 단결은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 민중 반란을 낳은 근본적인 원인들이 곧 사람들의 정서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지금 이집트에서 자본가, 자유주의자, 무슬림형제단 지도자 들은 반란을 종식시키려 한다. 그들은 ‘정상’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그러나 대다수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높은 실업률, 치솟는 식량가, 저임금, 사장들의 전횡은 여전히 그대로다. 

대다수 사람들은 혁명적 상황의 발생을 축하하지만, 막상 그 뒤로 별로 바뀐 것이 없는 것을 보면서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는 것이다. 

그들은 처음으로 자신의 집단적 힘을 인식했지만 그를 통해 무엇을 성취할 수 있는지 확신하지 못하는 것이다. 트로츠키의 표현을 빌리자면, ‘어린 혁명의 뼈는 아직 단단하지 않은’ 것이다.  

혁명은 소수의 참가자로 시작된다. 1917년 페트로그라드 사람들이 차르를 몰아냈다. 그러나 러시아 나머지 지역은 아직 직접 혁명에 참가하지 않았다. 한 통계를 보면, 이집트에서도 인구의 25퍼센트가 호스니 무바라크를 몰아낸 행동에 참가했다. 그것은 ‘엄청난 소수’지만 여전히 소수다.  

이집트 혁명은 대도시에서 시작됐고, 아직 소도시와 농촌으로 확산되지 않았다. 더 다양한 사람들이 자기 요구를 제기하고 싸우면서 혁명적 상황은 확산되고 깊어질 수 있다. 

그것이 일어나는 한 가지 경로는 더 많은 경제적 요구가 제기되는 것이다. 

혁명은 사회적 삶에 의문을 제기하고 투쟁하도록 만든다. 위대한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는 정치적 요구와 경제적 요구가 서로 결합되고 서로를 강화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지적했다. 

룩셈부르크는 파업과 토지 점거 등이 확산되는 것은 혁명적 과정이 깊어지고 있음을 뜻한다고 말했다. 이런 과정은 새로운 사람들이 자신을 조직하고 자신감을 갖는 기회를 제공한다. 

옛 정부의 몰락 뒤에 나타난 새 정부는 옛 정부가 나빴다는 주장에 동의하는 척이라도 해야 한다. 

이집트에서 새 정부는 무바라크와 거리를 둬야 했다. 그러나 군대, 대기업, 작업장과 국가 기구에 여전히 존재하는 ‘작은 무바라크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 

‘작은 무바라크들’은 옛 지배자와 단단하게 연결돼 있었다. 그렇다면 그들도 제거해야 하지 않을까? 포르투갈에서 사람들은 이 과정을 ‘정화’라고 불렀다. 

부패하고 잔인한 지배자와 관리자를 몰아내는 투쟁은 혁명 과정을 강화하면서 노동자들의 사기를 높일 수 있다. 당연히 사장들의 사기는 더 떨어질 것이다. 계급들 사이에서 희노애락의 균형이 바뀌는 것이다. 

동맹

혁명적 상황에서 사람들은 빨리 배운다. ‘정상’ 조건에서는 수십 년이 걸릴 것을 몇 주, 심지어는 며칠 사이에 배울 수 있다.  

보통 사람들은 상황을 판단하는 법, 즉 적의 강점뿐 아니라 약점을 파악하는 법, 그리고 자신의 집단적 힘의 크기를 가늠하는 법을 새롭게 배운다. 

사람들은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배우지는 않는다. 트로츠키는 대중 운동이 “지속적으로 근사치를 찾는 방법”을 통해 발전한다고 말했다. 그들은 다양한 해결책을 시도하고 다양한 동맹과 대변인 들을 시험해 보는 것이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그들은 스스로도 변하는 것이다. 

노동자들은 대중 운동에 참가하면서 사회 변화와 해방을 주도할 잠재적 주체로서 자신의 힘을 때로는 개인적으로, 때로는 집단적으로 새롭게 깨닫고 자신감을 얻게 된다. 노동자들은 ‘기분이 좋아지는’ 경험을 한다. 이번에는 사장들이 속앓이를 한다.   

우리가 사회 혁명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으면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한다. 노동자들은 아래로부터 새로운 기구를 건설하고 있는가? 노동자들이 공장과 거주지 위원회, 독립 노조, 모임, 협회, 총회 등을 건설하고 있는가?  다시 말해, 새로운 민중 권력 기관이 등장했는가? 

카이로 병원에서 의사, 간호사와 미화원이 하나의 조직으로 단결한 것처럼 옛 신분과 특권 질서가 붕괴하고 있는가?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런 조직들이 서로 연결되기 시작하면, 그것은 새로운 국가 권력을 건설하는 초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대중 운동 내에는 늘 ‘너무 멀리 나가지 말자’ 하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대중 운동 내에서 보수적 층이 형성되는 것이다. 운동 내에서는 옛 지배자들과 타협해 혁명을 ‘일탈’시키려는 시도를 놓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진다. 이런 논쟁을 피할 수 없다. 문제는 좌파가 명확하고 강력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성장하는 것이다. 

좌파들은 계속 발전하고 유동적인 다양한 사상적·실천적 투쟁의 우여곡절 속에서 운동의 방향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인가? 

혁명적 상황이 반드시 성공적 혁명을 낳는다는 보장은 없다. 우리 역사는 패배로 점철돼 있다. 국내외 지배계급들은 언제나 우리 편의 약점을 이용하며, 부역자를 찾고, 운동의 흐름을 엉뚱한 쪽으로 바꾸려 한다. 정말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노동계급은 자신의 권력을 건설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다시 한 번 후퇴하고 투쟁을 다시 시작해야 할 것인가? 

출처: 영국의 혁명적 좌파 신문 <소셜리스트 워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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