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진과 날라리 외부세력’으로 표상되는 청년들의 동참은 희망버스가 기존 연대 운동과 구분되는 점이다. 경제 위기 속에 치솟는 등록금과 청년 실업으로 대표되는 무한 경쟁 속에서 고통이 목까지 차오르고 있다고 느낀 청년·학생 들은 더는 노동 문제를 먼 미래의 일로 치부하지 않았다.

그래서 적잖은 학생들과 네트워크화된 청년 모임들이 경찰의 무자비한 탄압 속에서도 멀리 부산까지 연대 투쟁에 동참했다.

사실 노동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지지를 보내는 청년·학생 들이 늘고 있다는 징후는 대학 청소 노동자 투쟁이나 현대차 비정규직 투쟁에 대한 지지 여론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1차 희망버스에 참가한 한 청년은 참가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는 홍익대 청소 노동자 파업 당시 학생이었습니다. 협상이 타결되기까지 49일 동안 한 번도 농성장에 가보지 않아서 부끄러웠습니다. 제가 버스를 타야만 했던 것은, 만약 부산에 가지 않으면 더 큰 후회를 할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녀가 그렇게도 추웠던 겨울에 왜 85호 크레인에 올라야 했는지 궁금했습니다. 전후 상황이 뭔지 잘 몰라도 응원하고 싶었습니다.”(《깔깔깔 희망버스》, 후마니타스)

6월 11일 7백50여 명이 출발한 1차 희망버스 탑승자 중 절반 이상이 바로 이런 청년·학생 들이었다.

아랍혁명, 유럽의 저항, 월가 점거 운동에서도 청년·학생 들의 저항과 반란은 더 큰 투쟁으로 나아가는 도화선이 되곤 했다.

따라서 좌파는 이런 ‘미래를 잃어버린 세대’들의 분노를 운동의 요구로 제시하고 개방적으로 이들을 운동에 동참시켜야 한다. 그리고 청년·학생 들과 조직된 노동자들이 서로의 투쟁을 고무하고, 연대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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