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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 캘리니코스 논평:
철저히 파산한 유로존

유로존 위기가 발생한 근본 원인은 ‘파산’이다. 그러나 파산한 것은 경제만이 아니다. 지적·도덕적·정치적 파산도 동시에 발생했다.

최근 사례를 들겠다.

첫째 파산은 지적 파산이다. 〈라디오 4〉의 ‘투데이’ 프로그램이 인터뷰한 경제학자들은 죄다 그리스가 디폴트하고 유로존에서 탈퇴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경제학자들이 유로존 공식 정책과 대립되는 대답을 할 때마다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자들은 충격을 받아 입을 쩍 벌렸다.

〈파이낸셜 타임스〉 칼럼니스트 사무엘 브리턴의 최근 칼럼 제목은 “왜 나는 그리스 긴축 국민투표에서 ‘반대’를 찍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가”였다.

브리턴은 1970년대 통화주의의 탄생에 기여한 인물이므로 이번 사태에 전혀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그는 이 칼럼에서 올바른 지적을 했다.

“그리스에 금융 지원을 제공하는 조건 중 하나는 그리스가 한층 더 가혹한 재정 긴축을 집행하는 것이다.

“이런 요구는 2008년에 견줘 그리스 국내총생산 규모가 9퍼센트, 산업생산이 거의 23퍼센트나 하락한 상황을 무시한 것이다.

“그리스 실업률이 17퍼센트나 되는 것도 무시했다.

“국제 기구와 채권국 들은 그리스한테 허리띠를 졸라매라는 말만 반복해서 했다.”

둘째 파산은 도덕적 파산이다. 그리스 총리 파판드레우가 새로운 추가 긴축안을 국민투표에 부치기로 결정한 것은 절망적인 상황을 극복하려는 최후의 수단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 결정이 불러온 후폭풍에 타격을 입었다.

특히, 유럽연합 엘리트들 ― 특히 앙겔라 메르켈과 니콜라 사르코지 ― 의 무지막지한 분노는 많은 것을 보여 줬다.

이들은 그리스 민중이 임금·연금과 일자리 축소, 공공서비스 악화와 증세에 관해 발언권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에 분노했다.

이렇게 대중의 의사를 무시하고 위로부터 결정을 강요하는 것은 지금까지 유로존 계획이 추진된 방식이었다.

그러나 이제 메르켈과 사르코지는 유로존 내 재정 통합을 강화하려 한다.

이것은 유로존의 민주주의를 더 약화시킬 것이다. 선출되지 않고 민주적으로 책임을 지지 않는 관료들 ― 독일이 밀어붙이는 안이 받아들여진다면 심지어 유럽법원 ― 이 회원국들의 조세와 지출을 감독할 것이다.

유럽법원

셋째 파산은 정치적 파산이다. 2주 전 G20 정상들이 프랑스 칸에서 회동했다. G20의 설립 목표는 중국, 인도, 브라질 등 ‘신흥 공업국’을 포함하는 국제 기구를 통해 전 세계적 경제 협력을 강화하겠다는 것이었다.

2008, 2009년에 열린 G20 정상회담이 세계경제를 구했다는 것이 ‘통설’이다. 그러나 이번에 G20은 무엇을 성취했는가? 전혀 없다. 물론, 모든 이가 그 책임을 그리스의 정치적 격변으로 돌린다. 그러나 변명일 뿐이다.

메르켈과 사르코지는 그리스 같은 작은 나라에 분풀이를 하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3주 전 열린 또 한 차례의 유로존 ‘위기 해결’ 정상회담에서 결정하기로 했던 ‘구제’ 안도 결정하지 못했다.

그러나 많은 부채를 가진 유로존 은행과 정부 들을 구제하는 데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이 필요로 하는 막대한 자금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는 큰 문제다.

그래서 EFSF 의장이 베이징으로 날아가 손을 벌리는 망신을 당해야 했다. 옛날 같았으면 미국이 나서 강제로 합의를 만들고 자금 마련을 도왔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 경제가 정체 중이고 덜떨어진 티파티 인사들이 하원을 좌우하는 상황에서 버락 오바마는 이 일을 할 수 있는 정치적·재정적 자본이 없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이렇게 논평했다. “미국의 지도력이 약해진 세계의 모습이 궁금한 사람은 유로존 위기를 보면 된다. 유로존 위기는 서방 진영의 약점을 만천하에 보여 줬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미국 정부는 중국이 유로존 구제를 도울 수 있다는 소식을 듣고 긴장했다.”

유로존 지도자들은 이미 유럽의 구제 정책을 감독하고 있는 IMF한테도 유로존을 구할 돈을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오바마는 영국 총리 데이비드 캐머런의 도움을 받아 IMF 분담금 증액 방안을 무산시켰다.

이것은 부분적으로는 미국과 영국 정부가 분담금을 늘려선 안 된다는 국내의 정치적 압력을 받고 있기 때문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유로존이 알아서 돈을 확보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1930년대 대공황 당시 레온 트로츠키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 인류의 위기는 혁명적 지도력의 위기로 표현되고 있다.”

오늘날 그것은 전적으로 자본주의 지도력의 부족으로 표현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