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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의 세계 재패 전략은 성공했는가?

부시의 세계 재패 전략은 성공했는가?

김용욱

2003년이 저물어 가는 12월, 조지 부시는 의기양양하게 승리를 발표했다.

12월 12일에 사담 후세인이 체포됐다. 19일에는 리비아가 대량살상무기 포기를 선언했다. 이것이 부시의 세계 재패 전략이 성공했음을 뜻하는가?

부시의 세계 전략은 미국이 전 세계를 지배한다는 신보수파(네오콘) 특유의 과대망상에 기초하고 있지만 나름대로 현실적인 계산에 기초해 있다. 이 전략은 미국이 처한 특수한 조건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다.

미국은 경쟁 자본주의 나라들(특히 유럽)에 비했을 때 경제적으로 더 강력하지 않고 오히려 경쟁에서 조금씩 밀려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군사력은 경쟁국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우월하다. 이러한 군사적 우월함을 이용해 미국 자본주의의 경쟁력을 회복하려는 것이 바로 부시와 네오콘의 전략의 핵심이다.

부시의 세계 전략은 군사적 성공을 거두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은 손쉬운 승리를 거뒀다. 이라크에서 비록 미군을 환영하는 내부 반란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후세인과 집권 바트당은 저항을 포기한 채 순식간에 주저앉았다.

미국은 군사적인 측면에서 원하는 전리품을 얻었다. 그러나 정치적인 측면에서 미국은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미국의 일방적 행동은 세계 지배자들의 분열을 표면에 드러나게 만들었다.

서방 지배자들내 도전의 핵심은 프랑스-독일-러시아라는 소위 “반전 3국”이었다. 그러나 나머지 국가들도 이라크 전쟁에 순순히 동의하지는 않았다. 미국은 스페인·이탈리아와 동유럽 국가(럼스펠드가 “신유럽”이라 부른)를 동원해서 유럽 진영을 분열시키는 방법으로 프랑스와 독일의 정치적 도전을 봉쇄하려 했다.

그러나 이러한 분열은 냉전 당시 미국이 서방 세계에서 누린 패권뿐 아니라 냉전 직후 1991년 걸프전 당시 전 세계 지배계급들에게서 얻은 지지에 비춰 봐도 커다란 후퇴이다.

1991년 걸프전 당시 미국은 주요 서방 국가뿐 아니라 훗날의 ‘불량국가’ 시리아도 포함하는 다국적군을 구성했다. 총 전비 6백10억 달러 중 미국은 고작 70억 달러만 냈다. 나머지는 일본을 포함한 동맹국들이 부담했다.

그러나 미국은 이번 이라크 전쟁에서 전비 전액을 거의 혼자서 내야 했다. 이라크 공격에만 1천4백억 달러가 소요된 것으로 추산되고 이후로도 천문학적인 주둔 비용을 치러야 한다.

군사적으로도 미국은 현재 전지전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상황에 있지 않다. 미군은 이라크 침공 전에도 지나치게 여러 나라에 분산돼 있었다. 미군은 1백40여개 국에 파견돼 있고 그 중 25개 국에는 상당한 규모로 주둔하고 있다. 여기에 이라크 점령 때문에 지상군을 포함한 25만 명이 이라크에 묶이면서 한계에 봉착했다.

이것을 재정적으로 뒷받침하는 것도 심각한 부담이다. 미 의회는 앞으로 5년간 적어도 1조 달러의 재정 적자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다.

만약에 이라크 상황이 지금보다 악화한다면(그럴 가능성이 높다), 식민지 점령은 미 제국에 이루 말할 수 없는 부담이 될 것이다.

유럽의 제국주의 국가들도 똑같은 위기를 경험했다. 그들은 감당할 수 없는 식민지 점령 비용을 감수하느냐 아니면 제국주의적 이익을 일부 포기하고 2류 제국주의 국가로 전락하느냐는 모순에 처했다. 미국은 유럽 국가들이 식민지를 버려야 했던 과정을 뒤따라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바로 이러한 어려움 때문에 미국은 지난해 8월 이후 프랑스와 독일을 포함해 갈등을 겪은 기존 동맹들에 다시 손을 벌리기 시작했다. 이것은 미국이 이라크 전쟁과 관련해 겪은 두번째 정치적 후퇴였다.

실패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 이어 이라크에서도 군사적 우위를 거듭 확인했지만, 이것을 미국 자본주의에 도움 되는 쪽으로 바꿔 주는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오히려 이라크 전쟁 이후 미국은 군사력에 비해 대단히 취약한 경제적 처지를 반복해 실감해야 했다.

미국은 지난해 9월 멕시코 칸쿤에서 있었던 WTO 협상에서 유럽을 설득하지 못했고, G-22로 결집한 제3세계 국가들의 도전을 받았다. 결국 WTO 협상은 주저앉았다.

11월에는 마이애미 회담에서 브라질이 주도하는 일부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면서 미국이 주도하는 북미자유무역협정은 종이 호랑이가 될 운명에 처했다. 미국의 뒷마당인 라틴아메리카에서는 브라질이 주도하는 남미공동시장인 메르코수르와 유럽 자본의 영향력이 더 커질 것이다.

12월에는 유럽과의 철강 무역 전쟁에서 굴복해 WTO 판정에 따라 보호 조치(긴급 수입제한)를 철회하겠다고 발표했다.

앞으로도 미국에 대한 경제적 도전은 계속될 것이다. 이것은 미래에 지정학적 도전으로 이어질 것이다. 미국이 “악의 축” 또는 “불량국가”로 지목한 일부 제3세계 국가가 백기를 들고 투항하더라도 이러한 상황을 역전시키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러나 미국 제국주의가 위기에 빠진다고 해서 자동으로 세계가 더 살기 좋은 곳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제국주의간 경쟁이 격화하면서 자본주의의 야만적인 모습이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세계 지배계급의 분열은 우리 운동에 유리한 기회를 제공한다. 2003년에 일어난 거대한 반전 운동은 지배자들의 분열을 이용해 성장했다.

2004년을 제국주의라는 진정한 대량살상무기를 지구상에서 폐기 처분할 수 있는 도약대로 만들자. 3·20 국제 반전 공동 행동의 날은 우리 운동의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시험대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