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 참여당, 통합연대가 최근 합의한 과도 강령은 5·31 합의문(‘진보정치대통합과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을 위한 진보진영 대표자 연석회의 최종 합의문’)에 비해서 후퇴했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통합을 추진하며 잠정 합의했던 8·28 합의문에도 못 미친다.

5·31합의문도 반자본주의적 요소가 희미해지고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노동 존중”이라는 표현으로 대체되는 등 민주노동당 창당 강령에 비해서는 후퇴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5·31 합의문 전문에는 “세계 변혁운동의 이상과 역사적 성과를 비판적으로 계승”하고 “자본주의의 한계와 폐해를 극복”한다고 돼 있었다. 또, “남한 자본주의와 북한 사회주의의 한계를 넘어”서고, “초국적 자본과 재벌 등 모든 독점 권력을 반대하고, 노동자 민중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사회생활 전반의 진정한 주인이 되는 정치권력을 수립”한다고 명시돼 있었다. 참여당은 5·31 합의문의 이런 내용이 ‘편향된 이념적 접근’이라며 껄끄러워 했다.

그리고 결국, ‘3자 통합 정당’ 강령에서는 5·31 합의문의 ‘전문’이 완전히 삭제됐다. ‘참여당이 진보로 이동하면서 5·31 합의문도 동의했으니 통합해도 진보적 가치는 후퇴하지 않을 것’이라던 민주노동당 지도부의 말은 사실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미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참여당과의 통합을 위해 급진적인 성격의 창당 강령을 후퇴시킨 바 있는데, 이제 3자 통합 정당의 강령에서도 더 후퇴하게 된 것이다.

전문이 삭제된 것만 문제가 아니다. 강령 본문의 각 조항들에서도 전반적 후퇴가 발견된다.

첫째, 노동자 중심성이 희미해졌다. 5·31 합의문이나 8·28 합의문에는 노동자 진보정당답게 노동 관련 조항이 가장 앞부분에 배치돼 있었다. “노동시간 대폭 단축을 통한 일자리 창출”이나 “파견제 철폐”, “동일노동 동일임금 보장”, “노동3권의 완전 보장” 등이 강령의 가장 우선적인 부분이었던 것이다. 이에 대해 참여당은 “‘노동자 정당’의 면모를 보이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며 거부감을 드러내 왔다. 결국 ‘3자 통합 정당’ 강령에서는 노동 관련 내용이 강령의 맨 뒷부분으로 밀려났다.

전반적 후퇴

반면, 강령 전문이 없는 상태에서 “보편적 복지사회를 실현한다”가 첫째 강령으로 제시되고 있다. 민주노동당 창당 강령의 반자본주의적 지향이 사라진 상황에서, 이것은 결국 새로운 통합당의 전반적인 지향점이 ‘복지사회’로 낮아진 느낌을 준다.

둘째, 복지 요구 수준도 낮아졌다. 무상의료 구현 앞에 “단계적”을 삽입했고, 초중등 교육에 대한 “즉각적 무상교육”이 “의무교육”으로 바뀌었으며, 대학을 포함한 고등교육에 무상교육을 확대한다는 구절 앞에도 “단계적”이라는 단서가 붙었다. “돌봄노동과 가사노동을 사회화하여 국가가 이를 책임진다”도 “돌봄노동과 가사노동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강화한다”로 완화됐다.

셋째, 참여당의 친자본주의적 성격을 반영하듯, 생산수단에 대한 소유 관련 내용도 대폭 후퇴했다. “토지 사회화 추진”이 삭제됐고 “국가 기간산업 및 사회 서비스의 민영화를 중단”한다는 내용이 “민영화 추진을 중단”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이미 민영화된 것을 되돌리겠다는 함축은 사라진 것이다. “투기적 금융자본 규제 등 금융부문의 공공성 강화와 사회화 추진”도 사라졌다.

넷째, 반제국주의와 민주주의 관련 내용도 후퇴했다. 국정원 같은 “폭압기구를 해체”한다는 내용이 삭제됐다. 또, 한반도·동북아의 비핵·평화 체제를 구축하는 것과 “연동”해서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겠다고 돼 있다. 주한미군이 존재하는 상황에서는 한반도 평화가 가능하지 않는데도 주한미군의 우선적 철수를 분명히 하지 않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5·31합의문에 명시돼 있던 반신자유주의의 핵심 과제인 “한미FTA, 한EU FTA 반대”도 사라졌다. 대신, “불평등 조약과 협정을 개정, 폐지”하는 것으로 모호하게 처리했다. FTA 추진의 원죄가 있는 참여당과의 통합 때문에 벌어진 후퇴일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참여당과의 통합이 진보적 원칙과 가치를 후퇴, 삭감시키며 진보의 정체성 훼손을 낳을 것이라는 우려가 사실이었음을 증명한다. 실제 통합당의 강령 확정 과정에서 또 어떤 추가적 후퇴가 있을지도 걱정된다.

 

당헌도 후퇴했다

 

민주노동당, 참여당, 통합연대가 합의한 당헌안도 8월 28일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합의한 것에 비해 후퇴했다. 강령과 마찬가지로 당헌도 전문이 삭제됐다. 8·28 당헌 합의안 전문에는 “신자유주의와 분단체제를 극복하고 평등과 통일, 생태와 평화, 국민이 정치의 주인이 되는 새로운 세상을 열고자 한다”, “노동자, 농민, 빈민, 중소영세상공인, 시민, 여성, 청소년, 장애인, 이주노동자, 사회적 소수자의 권리를 실현하는 정당이다” 등의 내용이 있었다.

“중앙위원회는 지지 단체에 일정수의 당대회 대의원을 배정할 수 있다”는 내용도 삭제됐다. 이에 따르면 노동 할당 대의원 제도도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노동 할당 대의원 제도는 민주노총 조직 노동자들의 권익과 목소리를 반영하려는 노동자 정당 고유의 제도인데 말이다.

무엇보다 진보정당의 민주적 성격을 대표했던 ‘진성당원제’의 원칙이 크게 훼손됐다. 과도기 당의 중요한 결정권을 모두 50명 안팎의 전국운영위원회에 둔 것이다. 기층의 의견을 민주적으로 반영하기 위한 대표적 제도인 대의원 구조도 없어졌다.

뿐만 아니라, 총선 후보도 지역에서 합의가 되지 않으면 전국운영위원회에서 결정하기로 했다. 총선 후보를 평당원들이 철저히 검증하고 선택할 권리도 없어지는 것이다. 반면, 이 상황에서 “당이 추천하는 공직선거 후보자를 지원”하는 것을 ‘당원의 의무’로 새롭게 추가했다.

결국 3자 통합 정당은 그 추진 과정과 결과물 모두가 비민주적이고 노동자 민주주의와 진성당원제를 파괴하고 있다. 이래 놓고서 대외적으로는 “당원들이 당의 중요한 정책과 진로를 결정하는 당원민주주의를 올바로 구현”(3자 통합 선언 기자회견문)하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진보의 원칙과 가치를 훼손하는 참여당과의 통합 시도는 즉각 중단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