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편지
보수의 ‘합리화’?
〈노동자 연대〉 구독
최태준 씨는 박원순 당선에 광분하는 우익들을 보며 ‘한국 보수를 합리화해야 한다’고 주장해 온 사람들과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이 사람들은 한국 보수는 극우적이고 진보는 그 힘이 아주 미약하다고 본다. 그래서 극우를 공격해 힘을 축소시키고 보수를 합리화하며 진보의 힘을 키워야 이 사회가 ‘정상’적으로 발전할 거라 여긴다.
박원순을 폭행한 여성이나 극우 단체들의 집회,
그러나 이런 일들이 보여주는 것은 오히려 그 반대다. 유신과 독재정권 시절엔 박원순이 시장에 나오지 못하도록 다른 누구보다 국가가 나서서 폭력을 휘둘렀을 것이고, 우익 중년 여성은 그저 집에서 소식을 듣고 기뻐했을 것이다. 극우들은 독재국가가 자신들의 일을 해 주기 때문에 추운 겨울 손발 떨어가며 집회하느라 고생하지 않을 것이고,
1987년 이후 지속된 노동자와 민중의 투쟁이 지배계급과 국가로 하여금 노골적인 폭력을 통한 지배가 더 비싼 대가를 치를 수 있음을 보여 줬고, 지배자들은 강제수단과 함께 생활상의 양보, 형식적 민주화, 이데올로기 수단의 정교화 등으로 지배를 유지하려 해 왔다.
보수의 합리화를 자기 실천목표의 중요한 하나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민주주의를 바란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들이 생각하는 합리적 보수가 자본주의에 비판적인 사상과 세력에 대한 존중과 같이, 비판에 관용적인 태도를 가진 세력을 말하는 것에서도 이를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이 합리적 보수로 여기는 서구 부르주아들이 ‘테러와의 전쟁’을 계기로 ‘국가안전법’을 제정해 일상적으로 무슬림을 감시하고, 납치와 감금을 자행하면서 기본적인 형법도 지키지 않는 걸 보면, 보수의 합리화 전략에 의문을 던져봐야 한다.
합리적 보수의 등장은 계급투쟁의 의도하지 않은 효과일 수 있다. 합리적 보수는 아마도 대중 저항이 지배자들을 위협하고 대중에 대한 양보 없이 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어렵다고 느껴지는 상황에서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 지배세력과 반공주의 이데올로기는 분단, 전쟁, 독재정권 등에 그 사회적 기반을 갖고 있고, 이런 기반들의 많은 부분이 지금도 남아 있다. 이런 사회적 기반에 대한 타격 없이, ‘대화와 타협’으로 보수를 합리화하고 반공 이데올로기를 끝장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순진한 것이다.
또 우리는 그런 대중 저항의 시대에 보수의 합리화가 아니라 보수 지배체제 전체를 뒤엎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