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프트21〉 온라인 독자편지로 실린 최태준 씨의 ‘진보운동의 녹색 신호등 박원순, 그리고 좌파의 과제’에 대해 내 의견을 밝히고 싶다.

최태준 씨는 박원순 당선에 광분하는 우익들을 보며 ‘한국 보수를 합리화해야 한다’고 주장해 온 사람들과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이 사람들은 한국 보수는 극우적이고 진보는 그 힘이 아주 미약하다고 본다. 그래서 극우를 공격해 힘을 축소시키고 보수를 합리화하며 진보의 힘을 키워야 이 사회가 ‘정상’적으로 발전할 거라 여긴다.

박원순을 폭행한 여성이나 극우 단체들의 집회, 〈뉴데일리〉같은 극우 황색 인터넷 언론을 보면서, 극우 세력이 강력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일들이 보여주는 것은 오히려 그 반대다. 유신과 독재정권 시절엔 박원순이 시장에 나오지 못하도록 다른 누구보다 국가가 나서서 폭력을 휘둘렀을 것이고, 우익 중년 여성은 그저 집에서 소식을 듣고 기뻐했을 것이다. 극우들은 독재국가가 자신들의 일을 해 주기 때문에 추운 겨울 손발 떨어가며 집회하느라 고생하지 않을 것이고, 〈뉴데일리〉같은 언론은 필요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극우 세력이 더는 국가를 동원해 폭력적으로 자기 의사를 관철시키기 어려워졌다는 것이 그들이 준동하는 이유다.

1987년 이후 지속된 노동자와 민중의 투쟁이 지배계급과 국가로 하여금 노골적인 폭력을 통한 지배가 더 비싼 대가를 치를 수 있음을 보여 줬고, 지배자들은 강제수단과 함께 생활상의 양보, 형식적 민주화, 이데올로기 수단의 정교화 등으로 지배를 유지하려 해 왔다.

보수의 합리화를 자기 실천목표의 중요한 하나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민주주의를 바란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들이 생각하는 합리적 보수가 자본주의에 비판적인 사상과 세력에 대한 존중과 같이, 비판에 관용적인 태도를 가진 세력을 말하는 것에서도 이를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이 합리적 보수로 여기는 서구 부르주아들이 ‘테러와의 전쟁’을 계기로 ‘국가안전법’을 제정해 일상적으로 무슬림을 감시하고, 납치와 감금을 자행하면서 기본적인 형법도 지키지 않는 걸 보면, 보수의 합리화 전략에 의문을 던져봐야 한다.

합리적 보수의 등장은 계급투쟁의 의도하지 않은 효과일 수 있다. 합리적 보수는 아마도 대중 저항이 지배자들을 위협하고 대중에 대한 양보 없이 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어렵다고 느껴지는 상황에서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 지배세력과 반공주의 이데올로기는 분단, 전쟁, 독재정권 등에 그 사회적 기반을 갖고 있고, 이런 기반들의 많은 부분이 지금도 남아 있다. 이런 사회적 기반에 대한 타격 없이, ‘대화와 타협’으로 보수를 합리화하고 반공 이데올로기를 끝장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순진한 것이다.

또 우리는 그런 대중 저항의 시대에 보수의 합리화가 아니라 보수 지배체제 전체를 뒤엎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