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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 반자본주의 선언(알렉스 캘리니코스, 책갈피)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는 반자본주의 운동 내의 가장 유명한 구호다. 알렉스 캘리니코스는 새 책 《반자본주의 선언》에서 “우리가 다른 세계를 어떻게 건설할 수 있을가?”라는 문제를 둘러싼 논쟁에 기여하고 있다. 늘 그렇듯이 캘리니코스는 우리 대부분이 아직 손이 미치지 못한 중요한 책들과 글들을 모두 읽었다. 어떤 논쟁이 진행중인지 알고 싶은 바쁜 활동가들과 초심자들에게 이 책은 커다란 가치가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동지애를 가지고 여러 주장들을 다룬다. 새로운 운동이 파괴적인 종파주의를 피하려면 우리는 비난하지 않고 이견을 표명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캘리니코스는 비판하기 전에 먼저 경쟁하는 입장들을 간결하고 공정하게 요약한다.

캘리니코스는 마르크스주의가 현대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최고의 방법임을 증명한 뒤에 두 가지 문제를 제기한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고 어떻게 갈 수 있는가? 그는 자본주의 체제의 동학이 어떻게 인류의 멸망을 가져올 수 있는지를 소름끼치게 묘사한 수잔 조지의 글을 인용하면서 오직 혁명만이 우리가 원하는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주장한다. 자본주의는 이윤을 추구한다. 대중 행동이 이 경향을 완화할 수 있지만 결국 모습을 다시 드러낸다.

자본주의를 패퇴시킬 수 있는 힘과 동기를 가진 유일한 사회 집단은 노동계급이다. 캘리니코스는 선진 자본주의 세계의 노동계급이 지난 25년간 패배를 겪었고, 산업의 역사가 깊은 일부 나라에서 제조업이 쇠퇴했음에도 우리에게 필요한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는 사람들의 힘은 변하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이것은 좌파 내에서 친숙한 주장이지만 캘리니코스는 이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입장을 명확하고 간결하게 다시 정리한다. 또, 캘리니코스는 사회주의적 목표를 정의하는 좀더 까다로운 시도를 감행한다. 많은 사회주의자들은 “유토피아주의”라는 창피한 딱지가 붙을까 봐 이 문제를 회피했다. 1917년 이전에 좌파 내에서는 미래 사회에 대한 추측이 꽃을 피웠다. 윌리엄 모리스, 아우구스트 베벨, 에밀 졸라와 볼셰비키 당원이자 과학소설 작가인 알렉산더 보그다노프 등이 이 논쟁에 기여했다. 스탈린주의의 등장은 좌파에게 단일한 형태의 사회주의를 강요했다. 심지어는 소수의 반스탈린주의 좌파들도 러시아 사회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 자기 정치를 정의했다. 이제 우리의 목표를 정의할 때가 다시 돌아왔다. 캘리니코스는 사회주의에 도덕적 근거가 필요하다고 현명하게 주장한다. 마르크스주의에서 도덕적 측면을 제거하려는 시도들은 모두 결국 무의식중에 도덕을 다시 불러와야 했다. 사회주의가 도덕적으로 우월한 삶이라고 깨달았을 때만 사람들은 그것을 위해 싸울 것이다.

캘리니코스는 어떤 종류의 사회주의 사회에도 필요할 네 가지 가치를 내놓는다. 정의, 효율성, 민주주의와 지속가능성. 이는 그러한 가치들이 정의하기 힘들고 모호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데이비드 베컴은 자신이 축구를 잘하기 때문에 자신이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 중 하나가 된 것이 ‘정의로운 일’이라고 믿을 것이다. 연대는 노동계급 운동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 중 하나이다. 그러나 조지 부시 2세는 나토 국가들 사이의 ‘연대’를 부르짖었다. 캘리니코스는 정의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개인들이 자신이 가치있다고 믿는 삶을 사는 데 필요한 능력을 공평하게 계발할 수 있는데 필요한 자원을 제공받을 수 있는” 상태. 이것은 또 다른 “십계명”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출발점으로 보인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이러한 정의를 물론 보장하지 못한다.

또한 캘리니코스는 사회주의적 계획의 문제를 다룬다. 우리는 이제 억압적이고 비효율적인 스탈린주의 소련의 경제가 계획경제였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우리는 진정한 사회주의적 계획이 어떤 것인지 질문해야 한다. 캘리니코스는 경제학자 팻 데빈의 《민주주의와 경제계획》의 관점을 빌어 최대한의 탈집중과 중앙집중적 조율이 결합된 계획경제의 모델을 제안한다.

캘리니코스는 다양성에 대해 짧게 언급하고 나중에 자세히 다루었으면 한다고 덧붙인다. 다양성은 모든 종류의 사회주의 모델에서 핵심이다. 캘리니코스는 “많은 세계가 담길 수 있는 하나의 세계”를 만들자는 사파티스타의 부사령관 마르코스의 호소를 환영한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보편적 원칙들을 확인할 필요도 있다. 사회주의는 굉장히 다양한 문화적 다양성을 허용하지만 합의된 기준도 있어야 한다. 사회주의 사회는 헤비메탈 팬이나 가톨릭 미사를 옹호하는 사람들을 허용할 것이다. 하지만 연쇄살인범이나 초착취 공장 소유주는 용납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캘리니코스는 새로운 이행기 강령을 제시한다. 이것은 반자본주의 운동에서 제기된 요구들(제3세계 부채 탕감, 토빈세, 노동시간 단축, 소득 재분배를 위한 세금, 이민규제 철폐 등)을 포함한다. 그러나 “이행기”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1938년에 트로츠키가 이행기 강령을 기초했을 당시 그는 “프롤레타리아가 내놓는 진지한 요구는 모두…자본주의적 소유관계와 부르주아 국가의 한계를 뛰어넘는다”고 믿었다. 오늘날 우리는 경제 위기를 겪고 있고 대규모 개혁이 추진될 전망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본주의라는 거칠고 늙은 괴수는 쓰러지기 일보 직전에 몰려 있지 않다. 자본주의가 단순한 요구조차 들어 주지 못하리라고 믿는 것은 바보 같은 생각이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자본주의 체제를 힘껏 민다면 이 체제는 저항할 것이다. 소득 재분배를 위한 세금을 예로 들면, 자본주의는 이것을 인정할 수 있다. 수많은 대중이 압력을 가하면 이 요구를 받아들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세금이 우리 지배자들의 이윤과 생활양식을 약화시키기 시작하면 그들은 반격한다. 1973년 칠레가 고전적인 사례였다. 똑같은 일이 우리에게 반복될 수도 있다. 그러한 순간이 언제 일지 예상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배자들이 저항하면 우리는 반드시 대중 행동으로 맞대응해야 한다. 그 시점이 혁명이 시작되는 순간이 될 수 있다. 《반자본주의 선언》은 우리가 오늘날 벌이고 있는 투쟁을 위해 때맞춰 지급된 중요한 무기이다.

서평 - 아이들이 너무 빨리 죽어요 폴 방키뭉(서해분집)

많은 사람들이 ‘의료’ 하면 나이팅게일 같이 아파하는 생명을 위해 헌신한 사람들의 숭고함을 떠올릴 것이다. 제약회사들은 모두 자신들이 인류 건강을 위해 헌신하는 나이팅게일이라도 되는 양 광고한다. 그러나 제약회사들이 하는 짓거리는 정반대다. 이 책은 그런 제약회사들의 횡포와 그에 맞선 사람들의 투쟁에 관한 것이다.

매년 3백만 명이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으로 죽어간다. 그리고 해마다 2백만 명이 설사병으로, 또 다른 2백만 명이 결핵으로, 1백만 명이 말라리아로 목숨을 잃고 있다. 해마다 1천만 명이 전염병으로 목숨을 잃고 있다. 이 사람들 중에서 90퍼센트가 남반구에 몰려 있다. 또 이 병들 중 대부분이 현대의학으로 치료 가능하거나 오랫동안 생명을 연장할 수 있다.

그러나 제약회사들의 관심은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돈을 버는 일이다. 미국에서 선두를 달리는 12개 제약회사들은 매출액 중 12퍼센트 정도만을 연구개발비에 사용하고, 그 돈의 2∼3배를 광고와 경영에 쓰고 있다. IMF의 정책 방향을 이끄는 영국 재무장관 고든 브라운조차 “지구상의 인구 90퍼센트에 영향을 주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연구가 전체 의학 연구 중 겨우 1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하고 꼬집었다.

1950년대 초 페니실린과 항생제로 성장한 제약회사들은 특허로 새로운 물질을 상업화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값이 계속 떨어지는 필수 의약품을 만들기보다는 특허약을 개발하는 데 전념했다.

특허는 수많은 비극을 낳았다. 제약회사들이 특허권으로 약을 독점할 수 있었다. 약 생산을 독점한 다국적 제약회사들은 비싼 값으로 약을 팔아 막대한 수입을 챙겼다. 비싼 약을 살 수 없는 제3세계 민중은 처방전 한 장 받지 못하고 죽어가야 했다. 스위스 거대 제약회사 호프만-라 로슈는 진정제 ‘발리움’을 1킬로그램당 캐나다에서 4천8백70달러, 프랑스에서 1만 달러에 판매했다. 놀랍게도 그 약의 원가는 35달러였다.

WTO는 제약회사의 이익을 철저히 보호해 주고 있다. WTO는 무역관련 지적재산권 협정(TRIPs)을 통해 독점적 특허권을 20년 동안 보장하고 있다.

이른바 ‘프레토리아(남아공 행정수도) 소송’은 “생명이냐 이윤이냐” 하는 문제를 정면으로 부각했다.

HIV 감염자 중 70퍼센트가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있다. 그러나 감염자 중 대부분이 약이 너무 비싸 구할 수 없다. AIDS에 감염된 11세 어린이 음코시 존슨은 “아이들이 너무 빨리 죽어요.” 하며 슬픈 절규로 현실을 얘기했다. 그래서 남아공 정부는 카피 AIDS 의약품을 생산할 수 있는 법을 통과시켰다. 39개 다국적 제약회사들은 카피 의약품 중단을 요구하며 남아공 정부를 제소했다. 제약회사들은 재판에서 지면, 자국 정부의 힘을 이용할 것이라며 공공연히 협박했다. 실제로 미국은 그 후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슈퍼 301조를 발효했다. 프레토리아 소송은 제약회사들의 잔혹함을 여실히 드러냈다. 그러나 성장하는 운동으로 인해 이미지에 막대한 타격을 입은 제약회사들이 2001년 소송을 취하했다. 민중이 조그만 승리를 쟁취한 것이다.

이 책은 다국적 제약회사들의 횡포에 관한 훌륭한 보고서다. 우리는 이 책에서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실제로 약을 판 것이 아니라 생명을 팔아먹고 있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 세계는 상품이 아니라고 외치는 반자본주의 활동가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