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7일 민주노동당 당대회에서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참여당)의 통합 안건이 통과됐다.

형식상 당대회라는 절차를 밟았지만, 실상은 당 지도부가 당의 최고의결기구인 당대회를 무력화시키는 과정이었다. 지난 8월과 9월 당대회에서 연거푸 부결된 민주노동당과 참여당의 통합 건을 지도부가 다시 올려 기어이 통과시켰기 때문이다. 

특히, 9월 25일 당대회 결정, 곧 참여당을 배제한 진보 통합을 추진하라는 결정을 지도부는 전혀 이행하지 않았다. 민주노동당 기관지 〈진보정치〉(542호)를 보면, “민주노동당은 9·25당대회 부결 뒤에도 진보대통합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갖고 국민참여당, 통합연대 등 관련 정당·단체와 협의를 추진해 왔다.” 

11월 27일 민주노동당 당대회에서 참여당 통합 반대 캠페인을 벌이는 당원들  당대회를 거수기로 삼는 당 지도부에 대한 환멸·반감·실망 분위기 속에서도 분명하고 꿋꿋하게 반대 목소리를 보여 준 반대파 

소수 지도자들이 당 위에 군림하며 당대회 결정을 가볍게 무시한 것이다. 물론 그 전에도 민주노동당이 노동자 민주주의의 모범은 아니었다. 당원들은 토론만 할 수 있을 뿐, 결정은 지도부가 흔히 언론을 통해 발표했다. 그러나 당대회가 적어도 기층의 의사를 최소한이나마 반영할 수 있었다. 

그런데 당 지도자들이 9월 25일 당대회 결정을 두 달 만에 대놓고 번복했다. 당대회를 소수 지도자들의 거수기로 삼은 것이다. 지도부가 자신들의 입장에 반하는 당대회 결정은 인정하지 않겠다고 선포한 셈이다.

절차만이 문제가 아니다.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참여당과 통합을 추진하면서 강령과 당헌을 후퇴시켰다.

이미 6월 정기 당대회에서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 제한”을 삭제하는 등 좌파 사회민주주의 강령을 그보다 온건한 강령으로 대체하더니, 이번에는 참여당 측의 반대로 자신들이 금과옥조처럼 말하던 5·31 합의문에도 못 미치는 강령으로 합의했다. 당의 정치적 지향을 밝히는 강령 전문이 없고, 5·31 합의문에서 맨 앞에 배치돼 있던 노동 분야는 한참 후순위로 밀려났다. 

게다가 민주노동당의 노동조합 기반을 상징하는 노동 부문 할당제가 당헌에서 빠졌다.(강령과 당헌의 후퇴는 〈레프트21〉 온라인 기사 ‘3자 통합 정당의 강령과 당헌 — 진보의 원칙과 가치가 삭감되다’를 참조하시오.) 

“자본주의 폐해 극복” 같은 강령의 급진적 요소와 계급 정당의 면모를 부담스러워 한 참여당 측의 견해를 민주노동당 지도부가 전격 수용한 것이다. 

정치적 기대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한 당대회

이 통합은 대의원들한테 정치적 기대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민주노동당 당권파 지지자들은 당대회장에서 사전 결의대회까지 치르면서 대의원들을 동원하려 했지만, 대의원 참석자 수는 9월 25일 당대회 때보다 크게 줄었다. 9월 25일 당대회에는 7백87명이 참석한 반면, 11월 27일 당대회에는 6백27명이 참석했다. 1백60명이나 줄었다!

민주노동당 내부에서조차 이번 통합 과정에 대한 실망과 반감, 환멸이 만만치 않음을 방증한다.

그래서 “압도적 가결”이니 “높은 일치성”이니 하는 평가를 내리며 희희낙락하는 것은 어이가 없다.

참여당과의 통합에 반대하거나 적어도 문제가 있다고 보는 대의원 상당수가 불참했다. 당권파 지도자들의 ‘들러리’가 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민주노동당 창당 대표였던 권영길 의원과 민주노총 김영훈 위원장이 당대회에 불참했던 것도 그런 심정이었을 게다.

‘들러리’

일부 대의원들은 당대회에 참석했다가 표결을 앞두고 퇴장하기도 했다. 

이런 정황에서도 꿋꿋하게 대회장에서 반대표를 행사한 대의원들이 10퍼센트였다. 이 대의원들은 찬성파들의 야유, 비아냥에도 결코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게 참여당과의 통합을 반대했다.

그러니 “압도적 가결”이니 “높은 일치성”이니 하는 따위의 얘기는 차안대(눈가면)를 한 경주마마냥 근시안적 단견이다. 차안대는 경주마의 공포심이나 불안감을 덜어 주려고 사용하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계급적·정치적으로 이질적인 참여당과 화학적 결합을 이루기 어려울 것이다. 특히, 기층으로 갈수록 이런 이질성이 낳을 불일치와 갈등은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민두홍 울산시당 중앙대의원이 당 게시판에 올린 글은 참여당과의 통합을 마지못해 찬성한 기층 당 활동가의 심정을 잘 보여 준다.

“저 또한 두렵습니다! 보듬어 지켜야 할 가치와 신념은 내동댕이쳐지고, 피와 살 같은 동지들이 사분오열하진 않을지… 

“운동가의 패기와 순수는 온데간데없고, 총선의 유불리와 함수관계에만 매몰되진 않을지…

“모든 것을 걸고 당에 복무하던 동지들을 수만의 자유주의 세력들과 맞바꿀 순 없습니다. 그들이 필요해서 찬성표를 들었던 건 분명 아니었습니다.

“오랜 기간 제가 사는 지역에서 저와 당을 지지하던 우호적 대중들이 이명박 집권4년을 겪으면서 뼈저리게 느낀다며 저에게 하는 말! (명령이라 봐도 무방할 듯) ‘제발 힘을 키워라! 그래서 한나라 집권만은 막아달라!’였습니다.”

참여당과라도 통합해서 어떻게든 진보정당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싶어 하는 당원들의 바람과, 참여당 최고위원 천호선의 다음 발언은 정반대 방향을 향하고 있다.

분열의 씨앗

“‘87년 체제’ 이후에 분열됐던 진보적 자유주의 세력과 사회민주주의 세력들을 통합해내는 것들을 저희는 굉장히 중요한 과제[로 보며]” “그렇게 될 때 갖는 의미는, 민주당을 혁신시킬 수 있는 힘을 좀 더 가질 수 있고 진보를 혁신시킬 수 있다.” “이 과정을 통해 새로운 대통합정당이 이르면 2013년에도 창당이 가능하다.” 

천호선은 이번 3자 통합을 민주당과의 야권 통합으로 가는 디딤돌로 삼으려는 반면, 다수 민주노동당 당원들은 어떻게든 진보정당의 힘과 영향력을 확대하고 싶어 ‘참여당과라도’ 통합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정반대 방향을 향하는 두 견해에 대해 대충 얼버무리거나(이정희 대표는 “총선 때까지는 이대로 갈 것이라는 유시민 대표의 말을 믿는다”는 무책임한 답변을 했다) 참여당을 견인할 수 있다는 허세를 부렸다. 그러나 이번 통합 과정에서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강령과 당헌 등에서 참여당의 요구에 끌려갔을 뿐이다.

무엇보다, 상이한 계급 기반을 가진 정당들의 통합에서 갈등과 분열은 피할 수 없다. “3자가 합당하는 것은 노동자와 중산층의 연대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정치적 선택”(최장집)이기보다는 상이한 계급적 기반에서 비롯한 상이한 정치 방침 때문에 수시로 갈등이 표면화될 공산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