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개월간 한국 사회를 흔든 희망버스가 마침내 조남호를 무릎 꿇리자, 희망버스의 다음 스텝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졌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크레인에서 내려오자마자 “희망버스의 연대 행동이 쌍용차로 향해 죽음의 행렬을 끝내야 한다”고 했고, 〈한겨레〉와 〈경향〉 등 언론들도 이 방향을 제안했다. 심지어 검찰도 송경동·정진우 동지를 두고 “내보내 주면 다시 희망버스를 타고 쌍용차로 갈 사람들”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동안 온 열정을 바쳐 연대 투쟁을 이끌어 온 희망버스 기획단은 타이밍을 잡으며 발빠르게 새로운 출발에 시동을 걸지 못하고 있다.

희망버스가 워낙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거대한 운동이었던데다 여러 투쟁 작업장 노동자들이 연대를 바란다는 점에서, 어느 한 방향을 결정하는 게 쉽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희망버스는 그동안에도 수없이 많은 문제들에 부딪혔다. 그때마다 기획단은 운동의 지속·확대를 위해 비교적 재빠르게 올바른 방향으로 대중을 이끌었고, 많은 이들이 우리의 호소에 응답했다. 이런 민주적 리더십은 희망버스 운동의 원동력이었다.

민주적 리더십

그 점에서, 기획단의 일부에서 ‘숨 고르기가 필요하다’며 시간을 끄는 것은 아쉽다. 이것은 의도치 않게 1차 승리로 고무된 사람들의 열기를 누그러뜨리는 구실을 할 수도 있다.

일부 동지들은 협상이 만족스럽지 못해 ‘70퍼센트 따낼 것을 40퍼센트밖에 따내지 못했다’고도 하고, 최종 타결 내용이 ‘정리해고 철회’가 아니라며 의미를 깎아내린다.

그러나 희망버스는 노동자들이 제힘을 발휘하지 못해 10~20퍼센트도 따내기 어려웠던 상황에서 전국적 연대를 건설해 꽤나 많은 성과를 냈다. 희망버스가 만들어 낸 사회적 압력 덕분에 국회 권고안조차 가능했던 것이고, 종국엔 이보다 더 나은 성과를 거뒀다.

따라서 희망버스가 거둔 성과는 앞으로도 이어가야 할 우리의 자산이다.

우리가 이런 성과를 디딤돌 삼아 또 다른 희망을 만들려면, 다시 한 번 사람들을 결집시키고 초점을 제공해야 한다.

일부 동지들은 “자발적으로 여기저기서 희망버스를 출발시키자”고도 말하지만, 이것은 중심을 흐트러뜨린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희망버스가 위력적이었던 것은 그동안 흩어져 싸우던 사람들을 한곳으로 집결시켰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국적 초점을 형성하며 지배자들을 압박할 수 있었던 것이다.

초점

지금 많은 사람들은 쌍용차로 핸들을 돌리자고 말한다. 김진숙 지도위원이, 송경동 시인이, 그리고 많은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우리에게 그 길을 향하자고 했다.

쌍용차 노동자·가족 19명의 연쇄 죽음은 우리 사회 정리해고의 상징이요, 경제 위기 고통전가의 상징이다.

쌍용차 노동자들은 2008년 미국발 경제 위기의 첫 희생양이 됐다. 그리고 다시금 경제가 더 깊은 위기로 빠져들고 있는 지금, 다시 쌍용차에서 연대 투쟁을 시작하자는 목소리가 터져 나온 것은 의미심장하다.

따라서 ‘특정 작업장을 메뚜기처럼 뛰어다니지 말아야 한다’는 논리도 ‘쌍용차로 가자’는 제안에 대한 반박이 될 수 없다.

희망버스 기획단과 전국 회의는 이 방향으로 힘을 모으고 출발을 알려야 한다. 이미 대중의 목소리는 쌍용차로 가자는 것이다. 기획단은 이런 여론을 대변해야 한다.

일부 동지들은 “기획단이나 전국 회의는 결정권이 없다”고도 말하지만, 기획단은 이미 수많은 결정을 내리고 방향을 제시했다. 앞장서 운동을 이끌고 조직하는 이들이 방향을 제시하는 것은 진정으로 민주적인 방식이다.

오히려 모두의 의견을 다 들을 때까지 기다리자는 것이 무책임한 얘기다. 

게다가 한진중공업에서 거둔 승리의 기운이 사람들을 고무했을 때 즉시 방향을 결정하지 못한 것도 아쉽다.

물론, 희망버스 조직자들의 어깨는 실로 무겁다. 이 운동이 거둔 성과가 큰 만큼, 다음에도 성공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큰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좋은 출발선에 서 있다. 우리에겐 그간 쌓아 놓은 네트워크와 신뢰와 지지가 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1퍼센트만 대변하는 정부·여당의 한미FTA 날치기 처리로 분노하며 ‘명박 퇴진’을 외치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고 있다.

따라서 희망버스는 더 늦기 전에 새로운 힘찬 출발을 알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