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차 정리해고는 이명박 정부의 노동유연화 정책, 경제 위기 고통전가의 신호탄이자 노조 파괴 광풍의 시작이었다.

우리 쌍용차 노동자들은 이에 맞서 전기가 끊기고, 물이 끊기고, 의약품이 끊기고, 인권마저 사라진 공장에서, 용역 깡패와 경찰 특공대의 폭력 속에서도 하나가 돼 77일간 목숨을 걸고 싸웠다. 쌍용차 투쟁이 패배해 노동운동에 미친 악영향도 있었겠지만, 우리는 노동자들이 단결해 저항했을 때 얼마나 파급력이 큰지 보여 줬고 이후 투쟁의 거름 구실을 했다고 생각한다.

쌍용차 노동자들은 단순히 생계가 어렵거나 마음이 굳건하지 못해 연이어 죽고 있는 게 아니다. 정리해고와 77일간의 투쟁을 말하지 않고서는 쌍용차에 닥친 죽음의 행렬을 이해할 수 없다.

첫째 죽음은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닥쳐 왔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말 소리도 없이 한꺼번에 밀려났다. 

연이어 사측이 노골적으로 해고 대상자를 선정하면서, 정리해고 명단이 유령처럼 떠돌아 다녔다. 엄청난 스트레스 속에서 둘째 죽음이 뒤이었다.

셋째 죽음은 관제데모에 끌려 나온 이른바 ‘산 자’의 죽음이었다. 자본에 의해 갈라진 ‘산 자’와 ‘죽은 자’는 뼈아픈 상처를 감당해야 했다.

넷째로는 ‘희망퇴직’이라는 허울 속에서 절망해 생목숨을 끊은 이였다. 그렇게 귀한 목숨이 쓰러져 갔다.

시퍼런 분노

다섯째 죽음은 바로 이런 노동자들의 가족이었다. 죽음이 주는 슬픔과 고통에 차이가 있겠냐 마는, 가족을 위해 공장에서 함께 싸웠던 노동자들의 가슴에 맺힌 슬픔과 시퍼런 분노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렇게 벌써 노동자·가족 19명이 세상을 떠났다. 

이런 우리에게 희망버스와 한진중공업 투쟁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었다. 한진중공업 투쟁이 승리해야 우리도, 다른 노동자들도 힘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때로는 우리 투쟁보다 한진 투쟁에 관해 많은 얘기를 했다.

고맙게도 김진숙 동지를 비롯해 많은 분들이 ‘희망버스가 이제 쌍용차로 가자’고 얘기한다. 감사한 마음이 들면서도, 투쟁하는 다른 동지들도 떠오른다.

사실 몇 달 전부터 쌍용차에 대한 희망버스의 연대는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심리치유센터 ‘와락’이 많은 분들의 도움과 힘으로 만들어졌고, 후원도 이어지는 걸 보면 그렇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도 사람이 계속 죽고 있다는 것이다. 위로만으로는 죽음을 멈출 수가 없다. 투쟁과 연대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공장 바깥으로 쫓겨난 노동자들이 공장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쌍용차지부는 12월 중에 “쌍용차를 점령하라”는 이름의 텐트 노숙 투쟁을 시작한다. 억울한 죽음이 계속돼선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진 분들이 함께 연대해 주길 부탁한다.

희망버스 탑승객들에게 제안하고 싶다. 12월 23일(금)~24일(토), 죽음을 생산하는 쌍용차 공장을 포위해 희망의 씨앗을 함께 만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