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개의 미국》,조너선 닐 지음, 문현아 옮김, 책갈피, 1만 5천원, 3백83쪽

미국 월가 ‘점거하라’ 운동을 통해 ‘99퍼센트의 저항’이 분출하면서 미국 사회의 본모습에 대한 관심이 높다. ‘테러와의 전쟁’에서의 후퇴, 워싱턴 컨센서스로 상징되는 신자유주의 시스템의 파산 위기, 중동 혁명이 가져온 친미 정부들의 잇따른 붕괴는 21세기를 ‘미국의 세기’로 규정하려 한 미국 지배자들이 꽤 멍청했다는 것을 드러냈다.

그런 멍청이들과 초대형 무역협정을 맺고, 그 멍청한 시스템을 더 확실하게 한국사회에 이식하겠다는데 누군들 불안하지 않겠는가. 경북대 사회학과 김광기 교수가 쓴 《우리가 아는 미국은 없다》는 이런 불안을 등에 업고 근래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그 책은 미국 사회 이면의 정경유착, 승자독식, 부패 등을 잘 폭로하고 있지만 미국인들을 길들여져서 ‘No’를 잊어버린 순종적인 존재로만 규정하고 있다. 이런 관점은 정의감에 가득찬 미국인들이 월 스트리트를 점거한 현실과 맞지 않다.

탁월한 전망

따라서 미국의 본모습에 대한 분석과 탁월한 전망을 얻고자 한다면 조너선 닐의 《두 개의 미국》을 읽어야 한다. 이 책은 20세기 후반을 다룬 작은 미국 현대사라고 해도 좋을 만큼 엄밀한 정치학으로 쓰여졌다.

저자는 사회적으로 발설이 금기시되는 두 단어가 미국 사회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핵심도구라고 주장한다. “미국인들은 대부분 미국이 부자들과 권력자들에 의해 굴러간다는 사실을 쓰라린 경험을 통해 터득한다. 그런데 이를 지배계급과 자본주의라고 표현하면, 구닥다리 골수 마르크스주의자로 몰린다. 이런 식으로 금기가 작동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단어를 사용하지 않으면 진실을 직시할 수가 없다. 미국의 정책에만 분노할 뿐 지배계급을 비난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너무 쉽게 모든 미국인을 탓하는 반미로 빠지고 만다.” 

저자의 관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런 관점에 입각해 저자는 세계 자본주의 위계질서에서 미국 지배자들이 처한 상황을 분석하는 것으로 문제를 풀어 나간다. 나아가 미국 사회를 지배하는 1퍼센트로부터 99퍼센트의 대중을 분리해 내고, 그들의 독립적인 정치적 여정을 그려 낸다. 

특히 세계화를 다룬 7장은 1973년 경제 침체기 이후 본격화된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이 평범한 미국인들과 제3세계 대중의 삶을 어떻게 궁지로 몰아넣어 가는지를 주도면밀하게 관찰하고 있다. 한미FTA가 바라는 한국 사회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면 7장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한국어판 후기(2008년 미 대선 무렵)에서 밝힌 저자의 예측은 지금 조금씩 들어맞고 있다. “오바마를 지지했던 활동가들이 사기저하 할 것인지, 아니면 그를 넘어서고 결국 그를 비판하게 될 것인지 … 나는 후자의 가능성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 세계경제가 불안정하고, 세계의 권력균형도 불안정하며, 신자유주의 사상의 정치적 지배력 역시 불안정하다. … 그 결과가 1930년대와 1960년대에 그랬듯이 미국에서 거대한 대중운동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세계를 지배하는 강대국에서 그런 규모의 운동이 벌어진다면 그 메아리가 전 세계에서 울려 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