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 이후 보수 언론 들은 일부 근거 없는 소문까지 섞어서 그를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박정희 같은 독재자를 찬양해 온 우익들이 ‘독재’ 운운하며 김 위원장을 비난하는 것은 위선이다. 

물론 그렇다고 김 위원장을 ‘위대한 지도자’라고 찬양하고 미화하는 북한 관료와 남한 진보진영의 일부 인사들의 주장이 옳은 것은 아니다. 북한 정권은 권력 세습을 정당화하려고 김 위원장의 출생지를 백두산으로 조작하고 그의 이력을 과장해 영웅으로 떠받들어 왔다. 

‘후계 체제’ 지지자들에 따르면, 김 위원장이 권력을 대물림 받은 것은 그가 어릴 적부터 보인 타고난 능력 덕분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김 위원장이 후계자로 부상한 것은 1960년대 후반 지배 관료 내 일부를 숙청하는 과정에 앞장서면서부터였다. 당시 북한 체제는 모순을 드러내며 위기에 빠졌고, 지배 관료들은 분열했다. 이때 김정일은 아버지 김일성 주석의 경제 모델을 고수하고 억압을 강화하는 데 중요한 구실을 했다. 

그리고 그는 1970~80년대 인민 대중을 동원하고 억압을 정당화할 목적으로 ‘주체사상 확립’에 앞장섰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이후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남한 우파들은 김 위원장이 한반도의 긴장을 불러온 주범인 것처럼 묘사하지만, 사실 미국이 북한을 악마화하며 위기를 조성한 게 한반도 위기의 진정한 배경이었다. 

선군정치 

미국이 이 지역에서 패권을 유지하려고 북한을 ‘불량국가’로 몰고 압박하면서 북한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그리고 북한은 기존의 ‘자력갱생’적 축적 모델이 파산하면서 끔찍한 경제 위기를 겪었다.

김 위원장은 이런 미국의 압박과 체제의 위기에 대처하고 내부 불만을 제압하려고 거듭 군사적 방법에 의존했다. ‘선군정치’라는 이름으로 미사일과 핵 개발에 우선순위를 뒀고, 위기의식을 팽배하게 해 인민의 불만을 외부의 적으로 돌리도록 만들었다. 

그는 제국주의에 맞서 사회주의와 혁명을 수호하기 위해서라며 이를 정당화했다. 그러나 선군정치는 노동계급의 자기 해방과 무관하다. 인민 대중이 기아에 허덕이는 상황에서 식량과 생필품보다 핵과 미사일 개발에 우선순위를 놓는 것도 노동계급 자기 해방과는 거리가 멀다.  

게다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북한 지배 관료들의 방식은 진정한 반제국주의도 아니었다. 그들은 파산한 경제를 재건하는 데 제국주의 열강의 도움을 원했다. 그래서 2002년 김 위원장은 당시 일본 총리 고이즈미에게 “부시 대통령과 밤새 목이 쉬도록 노래 부르고 춤추고 싶다”고 말했다. 또, 북한에 적대적이지 않다면 한반도에 미군이 남아 있는 것에 반대하지 않겠다고도 표명해 왔다. 

전에 김정일은 방북한 정주영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가는 데마다 [사람들이] 나와서 환영해 주지만 사실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내가 잘 압니다. 꿈에서 돌팔매를 맞았는데 돌 던진 사람이 첫 번째 미국 사람, 두 번째 남한 사람, 그리고 북한 사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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