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는 사회주의를 “노동계급의 자기 해방”이라고 말했다. 노동자와 억압받는 사람 들은 투쟁하는 과정에서 민주적인 조직을 만들어 자본가들의 국가 기구를 대체할 수 있다. 진정한 사회주의는 이렇게 노동계급이 스스로 운영하는 사회다. 

그러나 북한이나 옛 소련은 아래로부터의 노동자 민주주의는커녕 선거와 같은 기본적인 민주적 권리조차 억압했다. 수십 년간 수천만 명이 강제수용소에 끌려갔다.

국제사회주의 경향의 창시자인 토니 클리프는 국가자본주의 이론을 통해 옛 소련이나 북한 같은 사회의 성격과 동력을 분석할 수 있는 틀을 제시했다. 

많은 사람들이 옛 소련이나 북한을 사회주의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사회주의는 곧 생산 수단의 국유화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유화가 곧 사회주의라면 생산을 대부분 국가가 통제한 나치 시대 독일이나 박정희 시대 남한도 사회주의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토니 클리프는 생산수단의 소유 형태를 넘어서, 근원에 있는 실제 생산 관계와 체제의 근본 동학에 주목했다. 이 때문에 체제의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었다. 

실제로 자본주의에서 자본을 소유한 단위는 개인, 소기업, 대기업, 국가 등으로 변해 왔다. 자본주의의 발전과 구체적 상황과 조건에 따라 자본을 소유하는 단위가 바뀌어 왔지만 그렇다고 체제의 근본 동학이 바뀐 것은 아니다. 

착취와 경쟁

자본주의에서는 자본가들이 노동자들을 착취해 잉여가치를 만들고, 더 많은 이윤을 위해 자본가들끼리도 끊임없이 경쟁해야 한다. 이렇게 착취와 경쟁을 통한 축적이 자본주의의 근본 동학이다. 

물론 옛 소련 체제를 세계 체제와 떼어 놓고 보면 그 속에 경쟁하는 자본가도 없고, 시장도 없어 자본주의와는 다른 사회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국제적으로 봤을 때 옛 소련은 서방과 군사적·경제적 경쟁을 해야 했기 때문에 자본주의의 핵심 원리가 구현된 사회였다. 

실제로 옛 소련 사회에서는 서방과 경쟁에서 지지 않으려면 “더 빨리, 더 빨리” 생산해야 한다는 논리가 사회 전체를 압도했다.

이 때문에 옛 소련 사회의 생산은 결코 평범한 사람들의 필요를 위해 이뤄지지 않았다. 핵무기를 만들고 인공위성을 쏘는 북한에서 평범한 사람들은 기아에 허덕이는 현실을 봐도 알 수 있다.

이렇게 북한과 옛 소련 같은 사회를 국가자본주의로 분석하는 것은 중요한 실천적 함의가 있다. 

국가자본주의론은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 전통을 지킬 수 있게 했다. 사회주의는 스탈린주의 군대나 지도자가 위로부터 국유화와 계획경제를 도입하는 것을 통해 이뤄지는 게 아니라, 노동자들 스스로 자기해방을 위해 투쟁해 민주적으로 사회를 통제함으로써 이룰 수 있는 것이라는 원칙을 일깨웠다. 옛 소련이 몰락한 후 그 체제를 사회주의라고 생각했던 많은 활동가들이 큰 혼란을 겪었지만, 국가자본주의론은 그 혼란을 벗어날 수 있는 나침반 구실을 했다. 

또 국가자본주의론에 근거해 북한 사회를 보면 더 올바른 분석과 대안을 찾을 수 있다. 

북한 사회 내에서도 자본을 축적하는 과정에서 노동자 계급이 형성됐다. 이들은 스스로 투쟁에 나설 수 있다. 북한을 사회주의라 생각해 지지하거나, 그 반대로 서방 자본주의가 더 낫다고 생각하는 잘못된 양자택일을 벗어나 진정한 아래로부터의 대안을 추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