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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닥치고 경쟁’ 교육에 맞서기 위한 지침서

최근 ‘대표적인 친미주의자이자 친일파로 반정부 시위를 혹심하게 탄압한 대통령’을 묻는 문제를 출제한 역사 교사가 화제다. 동료 교사들은 나에게 그가 정치적 중립성을 어겼고, 교과서에 없는 지문을 시험에 내서 문제라고 말했다. 교사는 교과서의 지식을 그대로 전달할 뿐 ‘나’의 정치적 견해를 아이들에게 알려선 안 된다는 불문율이 교사들 사이에 퍼져 있다.

서울시 학생인권조례가 통과되자 우익들은 학생 본분에 맞지 않은 권리를 줬다며 미친 듯이 저주를 퍼부었다. 각종 차별을 금지하고, 두발과 집회 결사의 자유를 주고 학교 정책에 참여할 권리를 주면 교육이 망가진다고 한다. 이들은 학생들이 ‘닥치고 공부’만 하는 기계일 뿐, 세상을 이해하고 하나의 독립적 주체로 성장하는 것은 마음 속 깊이 두려워 한다.

《교사로 산다는 것 : 학교교육의 진실과 불복종 교육》 조너선 코졸 지음|양철북|180쪽|9천 원

이렇게 교사와 학생 모두의 기본적 인권과 정치적 권리가 ‘거세’된 한국에서 교사로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조너선 코졸이 지은 《교사로 산다는 것》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진보적 교사로 살아가겠다고 마음먹었던 나 자신도 마음이 뜨끔뜨끔 했다. 왜냐하면 교육과정(교육의 실제 내용)이 지배 이데올로기를 반영하고 있다는 것을 추상적으로만 이해했을 뿐, 교실에서 학생들에게 이를 비판하고 논박하는 것에는 힘을 기울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학생들과 함께 실천하는 문제에서는 용기가 없어 종종 뒤꽁무니를 뺐다. 나조차 학생들을 교사에게 순응적인 존재로 만들려고 훈계하지 않았나.

저자는 학교의 이데올로기적 측면을 다각적으로 지적한다. 학교는 12년 동안 “앞 세대의 무미건조한 가치관과 심한 편견을 주입”하는 과정이고, 그 결과 “맹목적 애국주의”와 자본주의의 “이기심”을 가진 체제 “순응”적인 인간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아무리 공교육의 목표를 아름다운 수사로 치장해도 공교육의 창시자들이 지적했던 것과 같이 학교는 “부자들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가장 적은 경비로 목적을 달성하는 곳”이다.

공교육이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는 과정은 어렵지 않다고 한다. 교사는 ‘나’의 정치적 신념을 말해선 안 된다. 중도는 진실하고 양극단은 불온하다는 편견과 정치적으로 조작된 개념이 교과서에는 가득하다. 교사도 논쟁적인 학생을 만류한다. 국기에 대한 맹세로 계급 분단선이 아니라 국익을 강조한다.

교과서는 혁명적 역사도 급진적인 활동가들도 무미건조하게 조작한다. 불복종 운동으로 저명한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경우 수많은 저작 중에 미국 교과서에 실린 글은 고작 숲과 시냇물에 대한 감상이었다. 교과서 지도서는 교사가 학생에게 어떤 결론을 내려 줘야 하는지까지 나와 있다. 이는 한국의 교육과정이 내용뿐만 아니라 결론까지 지정해 주는 것과 동일하다. 교과서는 신념도 비전도 없는 무미건조하고 뻔한 스토리로, 교실은 논쟁과 토론이 없는 지루한 수업으로 가득 찬다.

진정 교사로 산다는 것은

저자인 조너선 코졸은 명문대를 졸업하고 가장 빈곤한 흑인 거주지의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했다. 그는 흑인 해방 운동을 노래한 시로 수업했다는 이유로 해직됐고, 그 이후에 미국의 불평등 교육과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실천을 해 왔다. 저자는 미국 교육의 어두운 현실을 공론화해 사회 변혁에 필요한 운동을 촉진하려고 책을 썼다고 한다.

저자는 책을 통해 교사들에게 제안한다. 교실을 ‘교과서 감옥’에서 벗어나게 해 ‘자유로운 생각의 장’으로 만들라는 것이다.

교사는 학생들에게 지배자들의 관점부터 급진적인 관점까지 판단할 수 있는 다양한 자료를 제공하고 치열하게 논쟁함으로써 학생들이 선택하게 만들어야 한다. 판단을 유보하고 침착함을 유지하도록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불의한 현실에 분노하고 비판할 수 있도록 불복종 교육을 실천하라고 제안한다. 지배자들의 언어가 아닌 아래로부터의 관점을 가진 교과서를 학생들과 함께 만들고, 거대한 사회적 운동에 참여하는 것이 부담스러운 학생들에게 아주 작은 실천에서부터 시작해 실천의 삶으로 인도하자고 말한다.

“학생의 기억에 가장 오래 남는 수업은 공책에 필기한 내용도 아니고, 교과서에 인쇄된 궁색한 문장도 아니다. 그것은 수업하는 내내 교사의 눈빛에서 뿜어져 나오는 메시지다. 그것이야말로 평생 잊히지 않는 교훈이 될 것이다” 하고 저자는 주장한다.

물론 이러한 교사들은 문제 교사로 낙인 찍히고 징계를 받을 수 있다. 저자는 이러한 비난을 피할 수 있는 몇 가지 조언도 세심하게 하고 있다. 그러나 진정으로 학생들에게 가장 훌륭한 ‘수업’은 교사 자신이 지금 현실에 맞서 싸우는 실천으로 말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기심과 복종만 배운 채 경쟁의 낙오자로 학생을 길러내는 현실에 분노하는 교사에게, 이 책을 함께 읽고 학교를 진정으로 혁신하기 위해 토론하고 실천하자고 제안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