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9일, 마지막 순간까지 피를 말리게 했던 서울시 학생인권조례가 찬반 격론 끝에 서울시의회에서 최종 가결됐다. ‘학교에서 동성애가 허용되면 에이즈가 창궐한다’ 따위의 억지 주장을 하면서 동성애 혐오 캠페인을 벌였던 우파들을 통쾌하게 물리친 것이다. 

사실, 서울시 학생인권조례안 가운데 ‘성적 지향’, ‘임신과 출산’에 따른 차별금지 사유가 논란이 될 것이라는 점은 예견된 일이었다. 곽노현 교육감 재임 시절, 서울시교육청 자문위원회가 학생인권조례 교육청 안을 준비할 때부터 성적 지향 등을 차별금지 사유에서 제외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12월 17일 한미FTA 비준무효 촛불집회에 참가한 성소수자와 인권활동가들  성소수자와 인권활동가 들의 단호한 점거 농성과 광범한 연대가 값진 승리를 일궜다.

이에 분노한 성소수자들은 두 번에 걸쳐 항의모임을 개최하면서 ‘학생인권조례 성소수자 공동행동’(이하 공동행동)을 구성했다. 다양한 의견서를 제출하고, 한상희 자문위원장을 직접 만나 안을 수정해 줄 것을 요구했다. 결국 자문위원회 안에 성적 지향 등의 차별금지 사유가 포함될 수 있었다. 하지만 곽노현 교육감의 부재로 서울시의회에 제출되지는 못했다. 아마 주민발의안이 없었다면 서울에서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하기 위한 목소리는 한참 후에나 가능했을 것이다. 

한편, 서울시의회 교육위원들도 성적 지향 등을 포함하는 것에 정치적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우리는 서울시의회 앞 1인 시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면서 김명신, 서윤기 등 우호적인 교육위원들과 면담을 진행했다. 하지만 12월 16일로 서울시 교육위원회 회의가 예정된 상황에서도 성소수자들은 명확한 답변을 듣지 못했고, 오히려 후퇴한 수정안에 대한 논의를 진행할 것이라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12월 14일, 공동행동 소속 성소수자 30여 명과 인권활동가들은 서울시의회 의원회관 1층 로비 점거농성에 들어갔다. 그동안 ‘보이지 않는 존재’로 살아왔던 성소수자들이 당당히 모습을 드러내며 권리를 외치기 시작한 최초의 농성이 시작된 것이다. 

돈도, 먹을 것도 없고, 농성에 필요한 장비조차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채 절박한 상황에서 출발한 것이었다. 공동행동 활동가들은 새벽까지 회의하고 쪽잠을 자면서 농성을 유지했다. 

점거를 통해 거점을 형성한 행동은 매우 중요했다. 점거농성장은 연대의 중요한 구심점이었다. 농성장은 소식만 듣고 찾아온 사람들로 늘 넘쳐나 자리가 비좁을 정도였다. 

농성의 마지막 순간까지 주민발의안 성사를 위해 열과 성의를 다했던 청소년 인권활동가들도 성소수자들과 함께 농성장을 지켰다. 핫팩, 다양한 먹을거리로 가득 찼던 농성장은 축제 현장과도 같았다.

보수단체들은 연대가 확산되자 당황했는지 농성장에 들어와 성경책을 펴고 행패를 부리긴 했지만 쉽게 농성자들을 밖으로 내치지 못했다. 

그동안 우리 성소수자들은 여러 진보운동에 적극적으로 연대해 왔다. 이제 우리는 그동안 연대했던 사람들에게 커밍아웃으로 인사하고 연대를 요청했다. 

차별없는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위한 서울시의회 점거 농성장

이런 활동의 결과, ‘퀴어버스’를 기억하고 있는 한진중공업 노동자는 추운 날씨에 농성장을 찾아와 줬고, 김진숙 지도위원은 전화로 힘을 보태줬다. 쌍용자동차, 기륭, 재능 노조 역시 우리와 함께 했다. 

포이동에서는 만두가 도착했고, 학과 통폐합에 맞서 싸우는 동국대 학생들도 음료를 들고 찾아왔다. 인권활동가들은 매일 농성장으로 출근하다시피 했고 교사, 공무원 노동자들은 물론 진보정당과 시민·사회단체들의 지지방문, 연대성명도 계속됐다. 

무엇보다 매일 진행된 촛불문화제에 1백 명이 넘는 성소수자들이 함께했다는 것이 점거농성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보여 줬다. 

통합진보당 지도부의 미온적인 태도는 아쉬움으로 남는다. 당 성소수자위원회가 농성에 결합해 있었음에도, 성소수자위원회가 직접 작성해 준 논평조차 즉각 발표하지 않아 공개사과 요구를 받아야 했다. 나중에 통합진보당 서울시당 간부가 농성장을 지지방문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성소수자들을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점거농성장의 추위가 아니라, 차별금지 사유가 타협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성적 지향, 임신·출산 등의 차별금지 사유가 열거 대상에서 빠지고 포괄적으로 뭉뚱그려질 수 있다는 말이 들려오고, 그에 대해 우리의 입장을 낼 것을 강요받는 잔인한 상황이 계속 연출됐다. 

‘여러 달 동안 주민발의안을 성사시키기 위해 노력해 온 청소년 등을 생각하면 부족한 주민발의안이더라도 통과시켜야 하는 것 아닌가’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원칙과 타협 사이

하지만 성소수자들은 타협하지 않기로 했다. 우파의 압력 때문에 구체적 차별 사유를 빼고 ‘모든’ 차별을 금지한다는 식으로 뭉뚱그린다면 결국 그 ‘모든’ 차별금지사유에서 ‘성적 지향’은 빠지는 것이나 다름 없다고 판단했다. 존재가 인정돼야 권리도 이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이것은 타협할 수 없는 마지노선이었다. 

이런 팽팽한 대립 속에 인권조례 관련한 서울시의회 교육위원회 결정은 원래 예정된 16일에서 19일 오전 9시로 연기됐다. 

주어진 시간은 이틀. 성소수자들은 학생인권조례를 만신창이로 만들면서 그 어떤 당론도 정하지 않고 있던 민주당 지도부를 직접 만나 눈치보기를 그만하고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 원안을 통과시킬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 

결국 12월 19일, 서울시 교육위원들은 ‘성적 지향’, ‘임신 출산’은 물론, 법률에서는 최초로 ‘성별 정체성’이라는 차별금지 사유까지 적시한 학생인권조례안을 확정했다. 

이 승리에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농성을 이어갔던 성소수자들의 힘이 가장 주요했다. 서울시의회 교육위원 중 찬성표를 들었던 의원들은 농성장을 찾아 ‘원칙을 지켜 줘 고맙다’, ‘농성장 계신 분들의 힘이 컸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리고 본회의에서 학생인권조례안은 안건 마지막인 51번째로 올라왔다. 본회의에서 우파 의원들은 동성애 혐오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하지만 찬반 격론 끝에 찬성 54, 반대 28, 기권4로 최종 통과돼 완승으로 끝났다. 농성장은 환호와 눈물로 넘쳐났다. 

통과된 학생인권조례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교과부가 제동을 걸고, 교육청도 재심의 요청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완전히 끝났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의 승리가 학생들을 훈육하고 기득권의 구미에 맞는 사람으로 키워내는 학교 교육에 일침을 가한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이번 농성 투쟁은 성소수자들이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님을 확인시켜 줬다. 소수자 청소년들의 존재가 언론에 많이 알려졌고, 입법기관에서 동성애에 대한 토론이 벌어진 것 자체도 처음 있는 일이다. 

이번 투쟁은 성소수자 운동에 자신감을 북돋아 줬고, 단결의 의미를 일깨워 줬다. 또, 지지와 연대의 힘을 확인시켜 줬다. 

농성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지지와 연대와 감사의 의미로 또 다른 연대활동을 기획하고 있다. 12월 23~24일에 진행된 쌍용자동차 희망텐트에 참여해 양말을 전달했고, 앞으로도 이와 같은 연대활동을 계속할 계획이다. 

하지만 차별에 맞선 성소수자들은 이제 겨우 숨통이 트였을 뿐이다. 서울시의회를 통과하자마자 위기를 맞고 있는 학생인권조례가 제대로 제정되고 학교에 그 정책이 안착되는 순간까지 성소수자들의 정당한 싸움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끝까지 지지와 연대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