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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촛불시위 건으로 재판받은 정성휘의 항소심 최후진술:
“촛불운동의 확대를 위해 애쓴 나는 무죄다”

부산의 진보 활동가 정성휘 씨는 2008년 ‘촛불항쟁’ 때 부산에서 촛불시위를 주최했다는 혐의로 벌금 2백만 원이라는 약식명령을 받았고, 이 명령에 불복해 정식재판을 청구했다.

이후 군 입대한 정성휘 씨는 군사법정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지난 6월 28일 군사법원에서 벌금형을 선고 받았지만 이에 불복해 항소했다.

판사가 최후진술을 수차례 가로막는가 하면 최후진술 직후 곧바로 판결을 내리는 등 재판 자체가 요식 행위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거듭 드러났기 때문이다.

얼마전 정성휘 씨가 항소심 재판에서 한 최후진술문을 싣는다.

이명박 정부는 2008년 임기를 시작한지 단 두세 달 만에 상위 1퍼센트만을 위한 불도저가 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99퍼센트의 반감이 확산돼 ‘강부사·고소영 정권’이라는 비아냥을 들었고, 이명박 스스로도 “부자들만 모여있다는 인식”을 준 것 같다고 한탄했습니다.

그런데도 정부는 한미FTA 추진을 위해 광우병 의심 쇠고기 수입도 강행하려 했습니다. 이에 분노한 촛불의 불길이 이명박 정부의 부자 프렌들리 정책에 대한 항의로 이어졌습니다. 운동은 1백만여 명이 참가한 역사적 저항으로 성장해 취임 네 달 된 대통령을 몰아 붙였습니다.

이 사건으로 사람들은 대통령이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지 않”게 됐습니다.

촛불운동의 강력함에 놀란 우익 언론들도 재협상이 필요한 것 아니냐고 했습니다. 이명박 팬클럽 인 ‘명바라기’ 운영자조차 “저 역시 촛불집회에 가야겠다는 생각”이라고 했습니다.

결국 정부는 수입 고시를 두 번이나 연기하고 관보 게재도 일시적으로 유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통령도 직접 방송에 나서 두 차례나 사과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TV 앞에서는 “두려운 마음으로 겸손하게 다시 국민 여러분께 다가가겠”다던 대통령은 뒤에서 “저 사탄의 무리들이 이 땅에 판치지 말”게 해달라고 기도했고, 촛불이 잦아드는 것처럼 보이자 당시 경찰청장이 말한 것처럼 “1980년대식 진압이 무엇인지 보여 주겠다”며 물대포와 군홧발로 집회 참가자들을 짓밟고 대거 소환·수배 조치하는 위선을 보였습니다.

2008년 8월에 저도 같은 이유로 소환 당했습니다.

저는 이명박 정부가 민주주의를 위축시키고 촛불의 대의를 꺾으려 하는 것에 응할 수 없어 소환을 거부했습니다. 그래서 열 달 동안 수배 생활까지 해야 했습니다.

2009년, 저는 이명박 정부가 용산 철거민들을 살해한 데 항의하는 집회에 참가하고 돌아가는 길에 사복형사 10여 명에게 강제 연행됐습니다. 이후 재판은 연기됐다 재개되고, 다시 군법정으로 이동하며 결국 2010년에 판결을 받습니다. 관련 자료만 수천 페이지에 달하고 2년간 끌어온 이 과정은 단 하루 만에 기본적 사실 확인도 생략한 채 결론지어졌습니다.

재판부는 제가 배포한 유인물이 너무 잘 만들어졌기 때문에 주최 측에서 만든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는 황당한 논리를 폈습니다. 집회 장소가 자주 변경돼 주최자들에게 자주 전화해야 했다는 제 주장도 묵살됐습니다.

1심 재판부와 검찰 측은 제가 반성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피고인으로서 제게 주어진 최후진술의 권리도 방해했습니다. 재판장은 촛불운동을 공격하는 듯한 질문을 반복하며 보수적 편파성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이런 졸속적인 재판은 요식행위일 뿐이고, 실제로는 열의 있게 집회에 참가한 이들을 괴롭혀 운동의 사기를 꺾으려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오늘 재판부에게 묻고 싶습니다. 과연 이 모든 과정은 제가 반성하고, 그래서 더 완화된 형을 받으면 끝나는 것입니까? 길바닥에 넘어진 여학생의 머리를 군홧발로 짓밟는 것에 분노해 집회에 참가한 것이 불법이었다고 사과하면 되는 것입니까? 경찰이 아이를 안은 어머니와 할아버지, 어린아이까지 방패로 밀치고, 쓰러진 청소년을 걷어차고, 여성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폭행한 것이 적법한 것이었고, 진정한 민주주의라고 말하면 되는 것입니까?

그래서 이제 거리에서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하는 것은 잊고, 이명박 정부의 온갖 부패 추문은 덮어버리고, ‘여당 대선 후보에게 형광등 1백만 개의 아우라가 느껴진다’는 우익 방송들이나 보자고 하면 되는 것입니까?

이번 재판을 준비하면서 저는 지난 촛불운동에 관한 기사를 읽었습니다. 그중에 한 여고생이 집회에서 발언한 내용이 있었습니다.

“우리 할머니가 리어카 끌고 폐지 모아서 저를 키웠는데, 의료보험 민영화돼서 아파도 병원에 못 가게 되면 어떻게 하란 말인가요?” 그 여고생은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고 합니다.

촛불운동의 대의는 이런 것이었습니다. 할머니가 추운 날씨에 리어카 끌고 폐지 모으지 않아도 그 여고생이 졸업하고 등록금 걱정 없이 대학에 다닐 수 있게 하자던 소망, 할머니가 이제 병원비 걱정 없이 치료받아 좀 편안해졌으면 하는 소망. 이제 그런 소망도 돈 없는 99퍼센트에게는 잘못된 것이라고 말해야 하는 것이 정의입니까?

저는 그렇게 반성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촛불운동이 보여 주었던 그 정의와 민주주의의 불길이 우리가 다니는 병원과 학교와 우리 작업장으로 다시 확대돼 이 사회의 진정한 권력이 촛불운동에 참가하고 응원했던 99퍼센트에게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촛불운동의 확대를 위해 애쓴 저의 노력은 자랑스러운 일이고, 마땅히 무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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