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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 처벌 강화한다는 정부는:
몽둥이를 든 도둑이다

초등학교 5학년 점심시간, 한 남자 아이는 여자 아이를 향해 “이 씨××아!”라고 큰 소리로 욕을 한다. 담임인 내가 제지했지만 남자 아이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여자 아이와 마주앉은 남자 아이는 젓가락을 흉기처럼 잡고 여자 아이의 얼굴을 찍으려 했다. 여자 아이는 고개를 푹 숙이고 묵묵히 밥을 먹고 있다.

여자 아이는 이른바 우리 반 ‘왕따’였다. 외모가 좀 덜 청결하고 영악하지 못한 것이 이유였다.

나는 남자 아이에게 여자 아이한테 사과하라고 했다. 남자 아이는 “아이, 씨×” 욕을 내뱉으며 거부했다. 거듭된 나의 지도에 남자 아이는 입에 담을 수 없는 욕과 함께 악을 쓰기 시작했다.

교사인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나는 남자 아이를 따로 데리고 가 상담을 시작했다.

남자 아이가 화가 난 이유는 간단했다. 그 아이가 왜 하필 밥맛 떨어지게 자기 앞에 서 있었냐는 것이다. 남자 아이의 어머니가 학교로 오셨다. 어머니 앞에서 남자 아이는 그 여자 아이가 우리반에서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젓가락으로 왜 찍으려고 했냐고 물어보니 영화에서 봤다면서 그렇게 죽이고 싶었다고 거침없이 말했다.

이런 일이 어제오늘 일도 아니다. 다른 아이들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마찬가지로 이 여자 아이를 괴롭혔다. 대놓고 아무나 여자 아이에게 욕을 했고, 때렸고, 조롱하는 낙서를 했다.

남자 아이의 어머니는 내게 사과를 하고 아이를 잘 지도하겠다고 다짐하고 아이를 데려가셨다. 그러나 다음날부터 이런 일은 또 반복됐다.

여자 아이는 엄마가 없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키우고 있었고 아빠는 먼 지방에서 일을 하셨다. 여자 아이의 아빠와 통화를 해서 여자 아이의 이런 현실을 말씀드렸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겨울부터 늦봄까지 계속 입던 점퍼가 바뀌었을 뿐이다.

수없이 가해 학생들과 그 아이들의 어머니들과 상담을 했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거기까지다. 경험상 더 가해학생과 그 부모에게 ‘개입’을 하면 교사가 오히려 민원 제기를 당할 수 있다. 멀쩡한 학생(가해자)을 이상한 학생으로 몰아간다는 이유로.

폭력적인 사회와 아이들을 숨 쉴틈 없이 몰아 온 경쟁교육이야말로 비극을 낳은 원인이다.

최근 왕따 중학생 자살사건으로 온 사회가 학교폭력에 관심이 집중돼 있다. 그리고, 교사가 아이에게 관심을 덜 가진 것이 문제였다고 교사에게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학교폭력 앞에서 교사가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다.

더구나, 학교폭력의 책임은 교사 개개인이 아니라, 일제고사 등 아이들을 한 줄로 세워 숨 쉴 틈 없이 몰아세운 어른들에게 있다. 이제 형사법상 미성년자를 열두 살로 낮춰 가해 아이들을 감옥에 집어넣겠다고 한다. 학교 폴리스를 도입해 아이들을 통제하겠다고 한다.

도둑이 몽둥이를 드는 격이다.

이 아이들에게 어른들이 보여 준 모습은 촛불시위대를 짓밟고 물대포를 쏘며, 용산세입자들을 불태워 죽이고, 쌍용차 노동자들을 폭력 진압하는 모습이었다. 폭력을 가르치고 아이들을 경쟁의 지옥으로 몰아붙인 어른들을 단죄해야 하는 것 아닌가? 아이들이 물고문을 어디에서 배웠겠는가?

왕따 중학생의 자살 사건이 정말 가슴 아프다면, 학교교육과정 개정, 학급당 인원 감축, 잡무 감축, 상담교사 증원 등 학교의 전반적인 문제들을 개혁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 임시방편으로 아이들만 처벌하려 할 때 학교폭력은 근절되지 않고 오히려 더욱 ‘발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