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뜻밖의 사고로 우리 곁을 떠난 조성민 동지는 반생을 사회주의자로 살며 혁명 조직 건설에 힘을 쏟았다. 그가 죽기 직전까지 했던 활동은 운동을 건설하며 신문을 판매하고, 후배들과 토론하며 그들을 혁명조직의 활동가로 성장시키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혁명조직을 건설하는 것은 왜 그토록 중요할까? 

혁명적 사회주의의 핵심은 아래로부터의 대중행동만이 세계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최근 일어난 아랍 혁명에서도 볼 수 있듯이, 지배자들에 대항한 거대한 도전 속에서 평범한 사람들은 엄청난 에너지와 창조성을 발휘한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노동 대중이 자기 혁신 활동에 나설 것이며 경제적·정치적·문화적 권력을 얻으려고 투쟁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운동은 본질상 복합적이며 모순적이다. 현실 세계에서 실제 운동들은 온갖 경향들과 자극들로 이루어져 있다. 거대한 운동에 참가한 사람들이 모두 똑같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은 아니다. 만일 그렇다면 삶은 얼마나 단순할까!

예를 들어, 2008년 촛불항쟁이나 최근 한미FTA 반대 투쟁에는 다양한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참여했다. 그런 사상의 차이는 운동을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가를 둘러싼 태도의 차이 등으로 나타난다. 운동을 이런 차이를 둘러싼 토론과 논쟁이 계속 벌어지는 공간이라고 여기지 않으면 우리는 운동을 이해할 수 없다. 

그런 논쟁들은 부분적으로 우리가 세계를 어떻게 이해하는가를 둘러싼 것이지만, 특별히 무엇을 할 수 있고 해야 하는가를 둘러싼 논쟁들도 있다.

권력자들을 설득해 태도를 바꾸도록 로비하는 게 가장 좋은가? 아니면 강력하고 전투적인 운동들을 건설해 권력자들의 결정권 자체에 도전해야 하는가?

우리가 투쟁하는 쟁점들은 서로 동떨어진 것들인가, 아니면 모두 서로 연결된 것들인가? 만약 그렇다면 어떻게 연결돼 있는가? 우리는 다른 나라 운동들의 실수와 성공에서 배울 수 있는가?

이런 문제들과 그 밖의 다른 많은 문제들을 둘러싸고 다양한 대답들이 주기적으로 나타난다. 온갖 집단들이 등장하고 이들은 때로는 외부 기구들(정당, 종교단체, 직능단체, 기타 등등)과 연결돼 저마다 어떤 제안을 내놓는다.

이런 제안들 중 일부는 운동을 탈선시킬 것이다. 일부는 운동의 결집력을 약화시킨다. 일부는 운동 안에 분열의 씨앗을 뿌린다. 

사회주의자들이 응집력 있는 조직을 결성해 자신들의 견해를 표명하며 운동에 개입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잘못된 견해들이 운동 속에서 유력해질 수 있다. 

프랑스 공산당 관료들은 1968년 5월에 노동자들이 파업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드골 정권은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1979년 이란 혁명에서는 우파 성직자들이 혁명의 지도력을 장악해서 노동자 투쟁의 열기를 가라앉히고 보수적인 이슬람국가 수립으로 혁명을 왜곡시켰다. 

1973년 칠레에서는 심지어 공공연히 사회주의를 주장하며 집권한 정부가 옛 정권의 군 장성들과 타협하다가 야만적인 반혁명을 자초하고 말았다. 역사는 그런 사례들로 가득하다.

어떤 사람들은 민중 반란의 “자생성”에 의존해서 모든 장애물을 일소하는 것이 해결책이라고 주장한다. 당연히 모든 위대한 운동에서는 민중의 창의성과 상상력이 엄청나게 “자생적으로” 폭발했다. 그러나 자생성은 자생성이다. 

‘자생적’으로 운동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모두 똑같은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 안팎에서는 많은 조직된 목소리들이 저마다 주의를 끌고 지지를 얻으려 경쟁한다.

따라서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은 조직을 구축해 자신의 주장들을 내놓을 수 있는 방법들을 추구해야 한다. 그리고 아래로부터의 투쟁에 의존해서 자본주의의 핵심을 제거하는 방향으로 운동을 발전시키려고 하는 조직을 건설해 대중 속에 탄탄하게 뿌리내려야 한다.  

그래서 조성민 동지는 죽기 전 마지막으로 〈레프트21〉 72호에 기고한 ‘1960년대 미국 민중 저항과 반전 운동’ 기사에서 “원칙이 확립된, 응집력과 경험을 갖춘 활동가 조직의 필요성”을 강조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