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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편지
처벌 강화는 학교 폭력의 진정한 대안이 아닙니다

 박태현 교사는 군서고등학교에서 학생생활지도를 담당하고 있다. 이 글은 손학수 씨가 쓴 '진정한 교사라면 평범한 학생들이 행복하게 다닐 수 있는 학교를 만들어야 한다'는 독자편지에 답한 것이다.

손학수 씨가 쓴 글을 잘 읽었습니다. 글에서는 학교 폭력을 해결하고 학생들이 편안하게 학교를 다니게 해야 한다는 고민이 묻어납니다. 그러나 저는 실제로 학생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고, 학교 문제가 곧 제 문제이기도 한 교사로서 저의 경험과 고민을 돌아보건데 처벌 강화는 결코 학교 폭력의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몇 가지 논쟁점들을 검토하면서 왜 처벌 강화가 학교 폭력 해결의 대안이 될 수 없는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손학수 씨는 “잘못된 제도가 범죄를 일으킨다고 해서 범죄자에 책임을 묻지 않아야 하는가?”라며 학교 폭력이 발생한 현재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상황에서 당연히 가해 학생에게 적절한 조처를 취해서 자신의 행위에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금 우파 언론들은 책임을 지는 방안으로 사법 처리, 징계 강화, 생활기록부에 학교 폭력 사실 기록 같은 처벌 강화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런 것들이 진정으로 학생들에게 책임을 묻는 방법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책임을 지게 한다는 것은 자신의 행위를 반성하고 이를 다시 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학생의 징계 수위를 올리고 심지어 생활기록부에 기록까지 남기는 것은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게 하기보다는 학교에 대한 반발심만 키울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학생이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고 학교 생활을 잘 해보려고 할 수도 있는데, 학교에서 사회까지 평생 동안 학교 폭력 가해자라는 낙인이 찍힌다면 “어차피 찍힌 인생 잘 살기보다는 대충 살자” 하는 생각을 할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요? 그런 점에서 사람들의 흔한 주장, “상담과 별도로 강한 처벌을 해야 한다”는 것에도 동의할 수 없습니다.

또한 처벌 강화가 학교 폭력 재발을 막는다는 것은 전혀 검증되지 않은 사실입니다. 비교할 만한 예로 사형제도를 들 수 있습니다. UN은 2002년까지 세 차례 보고서를 통해 사형 존폐와 범죄율은 아무 상관 없다고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또한 미국에서는 사형제도를 폐지한 주가 존치하는 주보다 오히려 범죄율이 낮았으며, 1976년 사형제도를 폐지한 캐나다에서는 2002년 범죄율이 폐지 전인 1975년보다 40퍼센트나 낮았습니다.

이런 사실들을 볼 때 진정으로 책임을 진다는 것은 흔히 말하는 처벌 강화와는 전혀 다른 것이어야 합니다. 그것은 지속적이고 실효성 있는 상담으로 가해 학생에게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인간 관계를 다루는 방법에 대한 교육을 ‘의무적으로’ 하는 것, ‘의무적인’ 부모 상담을 통해서 가정적 요인들을 제거하는 것, 피해 학생과 가해 학생 모두를 적절하게 보살피고 상담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물론 피해 학생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가해학생을 피해학생에게서 일시적으로 격리시키는 조처 등은 할 수 있지만, 처벌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이런 방식은 반드시 경쟁적이고 비인간적인 학교 체제 자체, 즉 손학수 씨도 인정하고 있는 학교 폭력의 근본적 원인을 완화하는 과정과 함께 이뤄져야 합니다. 좋은 예는 혁신학교의 사례입니다. 혁신학교 중에는 경쟁이 아니라 협력이 필요한 학급 학교 행사를 공식 수업으로 넣어 수업 부담을 줄이고, 친구들이 소중하다는 것을 진심으로 깨닫게 한 곳이 있습니다. 또한 교문지도 폐지 등 학생에 대한 억압적인 통제를 금지한 곳도 있습니다. 그랬더니 학생 간 갈등과 폭력이 눈에 띄게 줄었다고 합니다. 이런 일들은 지금 당장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부는 학교폭력 가해 학생이 그 자신의 반성과 긍정적 발전을 통해 이 문제를 진정으로 책임지게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교육 운영을 보여 줍니다. 예컨대 학교 폭력 가해 학생이나 피해 학생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그들을 지도하려면 선생님이 많이 필요한데도 2011년 경기도 초등학교의 학급당 학생수는 1인당 35명일 정도로 선생님들이 학생들 한 명 한 명을 돌보는 것이 역부족인 상황입니다. 게다가 각 학교에 상담 교사가 없거나 불안정한 인턴 교사인 경우가 부지기수일 뿐 아니라 그나마도 한 센터가 1백50개 학교 34만 5천 명을 담당하는 경우가 있을 정도입니다.(서울 은평구 WEE센터) 게다가 경쟁 교육을 강화하기 위한 일제고사, 보충수업 강화, 학교 성과급, 자율형 사립고 등은 정부가 한 대표적인 정책입니다.

둘째, 위의 내용을 보면 학교 폭력의 원인을 진정으로 누가 만들고 유지시키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손학수 씨도 명확히 밝히고 있듯이 그것은 “자본주의 체제로 인한 경제적 불평등, 약육강식의 입시경쟁” 등을 만들어내는 정부와 교육 당국입니다. 그런데 처벌을 강화하는 것은 학교에서 학생들이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는 것을 심화시켜서 학교 폭력의 원인을 더 강화할 수 있습니다. 학교 폭력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면 오직 학교 폭력에 대한 처벌만 강화될까요? 실제는 학교에서 벌어지는 처벌이 모두 강화될 가능성이 큽니다.

학교는 체제에 순응할만한 수동적인 인간을 체계적으로 재생산하는 곳이기 때문에 학생들이 학교 체제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학생들이 이해할 수 없는 어려운 수업을 듣지 않으려고 하거나, 두발이나 복장 규제에 반항하는 것 등을 모두 부정적인 행위로 치부합니다. 그러면 학교 폭력 가해 학생에 대한 처벌도 강화하는데 이런 학생들에 대한 처벌이 강화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이와 같이 처벌 강화는 자칫 학생에 대한 비인간적인 대우를 강화하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게다가 처벌 강화는 처벌을 받은 학생 개인들의 잘못된 인격이 학교 폭력의 원인인 것처럼 만들어서 비인간적인 학교체제와 그로인한 학생들의 고통이라는 학교 폭력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을 가리는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정부는 바로 그들이 학교 폭력이 만연하는 교육과 사회 체제를 만들고 유지시키는 주체임에도 불구하고 그 책임을 일부 학생들에게 떠넘기고, 학교 체제를 개혁하기 위해 돈을 들이며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는 이것에 반대해야 합니다.

셋째, 학생 인권 조례는 위에서 밝힌대로 미친 교육 체제를 만들고 유지함으로서 학교 폭력의 진정한 책임을 가진 정부에 대항하는 훌륭한 장치입니다. 그것은 미친 교육 체제의 피해자이기도 한 학교 폭력 학생들에게 처벌이란 방식으로 일방적으로 학교 폭력의 책임을 돌리려 하는 정부의 몰염치한 작태에 대항해서 미친 교육을 개혁하려는 제도이기도 합니다.

흔히 학생 인권 조례를 그저 강제 보충과 야자를 막고, 체벌을 금지하는 조항 정도로 협소하게 보는 경우가 많은데, 인권 조례 전문을 보면 훨씬 더 풍성한 내용이 있습니다. ‘경제적인 사유로 차별 받지 않을 권리, 학습 곤란을 겪는 학생의 학습권 보장, 인간다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권리, 학교의 정보를 열람하고 학교 운영에 참여할 권리, 제대로 된 복지를 받을 권리, 건강한 환경에 살 권리’ 등이 인권조례에 명시돼 있는 사항입니다. 이것들은 모두 손학수 씨가 학교 폭력의 근본적 원인으로 제기한 “자본주의 체제로 인한 경제적 불평등, 약육강식의 입시경쟁” 등을 완화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학생인권조례는 학교와 교사로부터 학생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조례”라는 손학수 씨의 말에 동의하면서도 이어지는 “학생 간의 폭력을 막기 위해 만든 조례가 아니다. 학생인권조례 도입으로 학교폭력이 사라진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물론 학교 폭력의 원인이 단지 학교만이 아니라, 사람들을 소외시키고 빈곤하게 만들고 불평등하게 만드는 사회에 있기 때문에 학생인권조례만으로 학교 폭력을 없앨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학생인권조례는 학교 폭력을 완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학교 폭력을 예방하고 완화하기 위해서 처벌을 강화할 것이 아니라 학생인권조례를 더욱 강화해야 할 것입니다.

손학수 씨의 말처럼 “평범한 학생들이 행복하게 다닐 수 있는 학교를 만들 … 진정한 교사”라면 “체제의 탓”만을 연발하며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대응책들에 손을 놓아선 안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처벌 강화와는 다른 방식이어야 하며 동시에 체제 개선이 궁극적인 대안임을 명확히 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