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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회포럼 참가자들이 보내온 편지

세계사회포럼 참가자들이 보내온 편지

우리는 세계사회포럼의 활력을 싣고 돌아왔다

김성보(교사)

인도 뭄바이의 첫인상은 답답함이었다. 비행기가 공항에 내려서자 타이어를 태우는 듯한 매운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비행기 내부만을 채운 냄새인 줄 알았지만, 숨쉬기 어려울 정도의 답답한 공기가 뭄바이에 가득했다. 맨처음 나는 이런 곳에서 수만 명이 모이는 세계사회포럼이 무사히 치러질 수 있을까 의심했다. 개막식에 참가하기 위해 행사장으로 가는 버스에서 본 바깥 풍경은 사회포럼의 개최 가능성을 더 의심하게 만들었다. 정비되지 않은 도로, 곳곳에 널려진 쓰레기, 언덕을 가득 메운 판잣집. 벽돌 몇 개 쌓아두고 천 하나 걸어둔 집들도 많다.

그러나 답답함과 불안은 행사장에 도착하면서부터 차츰 사라지기 시작했고, 이틀 뒤엔 자신감과 만족으로 바뀌어 있었다. 옛 공장 터에 만들어진 행사장의 벽과 바닥과 각종 안내판과 음향시설, 조명시설, 선풍기들은 낡았지만, 새로 설치된 것들이었다.

행사장 근처에 있는 영화촬영소 노동자들이 행사장을 만들었으며 그들은 “세계사회포럼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행사다. 우리가 행사장을 만들게 되어 자랑스럽다”고 했다고 한다. 개막식 연설에서 세계사회포럼 사무국의 한 명인 치코 위태커는 “인도는 정치적 분열이 심하고, 너무 위험하다고 걱정했지만, [10만이 넘는] 다양한 사람들이 여기 모였다.”며 사회포럼의 성공을 선언했다. 시작부터 세계사회포럼은 새로운 세계에 대한 가능성과 자신감이 가득했다.

아래로부터의 세계화 참가단은 개막식이 시작되기 전에 준비한 팻말을 들고 행사장을 행진했다. 피켓에는 “Our World Is Not for Sale”, “A Better World Is Possible”, “No South Korean Troops to Iraq”라는 문구가 적혔고, 참가단은 전쟁과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구호를 외쳤다. 전체 행사 규모에 비하면 ‘아래로부터의 세계화’ 참가단은 소수였지만, 첫날부터 강한 인상을 남겼다. 개막식 다음 날인 17일에 나온 사회포럼의 독립신문 테라비바 헤드라인이 ‘Globalisation from Below’였고 한국참가단의 인터뷰가 실렸다.

우리는 매일 행진하며 구호를 외쳤다. 둘째 날부터는 힌두어 팻말도 만들고, 힌두어 구호도 외쳤다. 여러 인도 사람들이 우리와 함께 행진하며 구호를 선창하기도 했다. 다양한 나라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이 우리의 구호를 함께 외치고, 우리의 홍보물을 받는 것을 보며 우리가 세계적 운동의 흐름에 함께하고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

18일 오후에 있었던 세계화와 군사주의에 관한 워크숍에 연사로 나온 미국의 활동가는 패배주의는 비 오는 시간을 위해 남겨두고, 지금은 밖으로 나가야할 때라고 말했다. 그는 3·20 전 세계적 반전행동을 성공적으로 조직해서 2·15 반전 시위에 이어 우리야말로 사라지지 않는 진정한 슈퍼파워임을 보여주자고 호소했다. 3월 20일, 우리 나라에서도 세계적인 슈퍼파워를 만들어 보자.

참가단에게 제공된 훌륭한 통역과 안내 덕분에 너무 알찬 시간들을 보낼 수 있었다. 아직도 눈을 감으면 ‘아세광장’[‘아래로부터 세계화’ 참가단이 함께 활동을 계획하기 위해 자주 머물렀던 행사장 안의 작은 뜰]이 그려진다. 다음 번 세계사회포럼에도 꼭 참가하고 싶다.

최영규(기아자동차 노동자)

나는 야간근무를 마치고 바로 공항으로 향했던 터라 몸은 무거웠지만 마음만은 가볍고 들떠 있었다.

뭄바이에 도착해서 우리 나라에서 1970년대에나 볼 수 있었던 차들과 삼륜택시를 보는 것도 재미있었지만, 한국 노동자들이 만든 현대·기아·대우차들을 볼 수 있어 반가웠다.

도로 대부분이 비포장길이었는데 거리에서 천막을 치고 노숙하는 인도 민중들을 보는 순간 우리 나라뿐 아니라 인도의 빈부격차는 우리 나라보다 한층 심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들 대부분이 댐 건설로 농토를 잃은 농민들이라는 사실을 안 순간 FTA가 체결되면 우리 나라에서도 그러한 일이 일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다.

행사장으로 끊임없이 밀려 들어오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모든 것이 신기하고 새롭기만 했다. 영어를 잘 몰라 자세한 것을 알 수는 없었지만 홍보물과 사진들은 대부분이 반전·반신자유주의·반자본주의·반핵 등의 메시지였던 것 같다.

나는 한 세미나에서 발언도 했다. 기아자동차 노동자들이 했던 반전·파병 반대 서명과 신문 광고 조직 등의 사례를 외국인 활동가들 앞에서 자랑스럽게 말했는데 그건 나에게 아주 소중하고 커다란 경험이었다.

행사 기간 중에 인도의 아동 노동자들을 만난 건 무척 충격적이었다. 12∼14살 정도의 인도 노동자들은 인도아동노동반대단체 활동가들이라고 자신들을 소개했다. 그들은 아동 착취 없는 세상이 꿈이라며 그 날이 올 때까지 투쟁하겠다고 말했다.

필리핀 타이어 공장 노조위원장도 생각난다. 그 나라 노동자들 역시 정부의 발전 사유화와 공기업 사유화에 맞서 투쟁하고 있었다.

전 세계 노동자, 농민, 활동가들의 축제인 세계사회포럼이 언젠가는 우리 나라에서도 열릴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는다. 그리고 내가 직접 보고 경험한 소중한 기억들을 현장에 돌아가서 알리고 실천해야겠다는 마음을 다지며 한국으로 돌아왔다.

변혜진(보건의료단체연합 기획부장)

나는 2002년 9월 글리벡 공대위 대표 자격으로 인도에 온 적이 있다. 에이즈 치료제 공급을 위해 활동하는 활동가들과 의료진을 만나 토론을 했다. 인도에서 글리벡 투쟁은 많은 관심을 끌었다. 인도 정부가 노바티스사에게 글리벡 독점판매권을 주었기 때문이다.

인도 정부는 2005년에 지적재산권협정에 가입할 예정이다. 그리고 다국적 제약 회사와 미국 정부의 압력에 굴복해 인도 특허법을 개정하려고 한다.

‘WTO와 의약품의 접근권’은 세계사회포럼에서 본 여러 행사 가운데 하나였다. 우리는 여기서 글리벡 독점판매권 부여에 항의하는 연대 성명과 서명을 조직했다. 노바티스 사 앞에서 집회를 제안하기도 했다. 이 제안은 WTO 개혁을 주장하는 국경없는 의사회(MSF)의 미온적인 태도와 대비됐다. 그래서 인도 활동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았다. 아쉽게도 인도 집시법(15일전에 신고를 해야하고 노바티스인디아는 집회금지구역이라고 한다) 때문에 성사되지 못했다.

나는 인도 활동가들과 사회운동 조직들의 열정과 적극성을 세계사회포럼 참가 일정 내내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작년 브라질 포르투 알레그레와 사뭇 다르게 실내에서 진행되는 워크숍만이 아니라 다양한 요구를 외치며 매일 매 순간 행사장 거리를 꽉 메운 달릿들과 인도 활동가들의 모습이 그것이다.

브라질 참가단 150명 역시 이들의 모습에 고무받아 포럼 사흘 째 되던 날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이곳에 왔는가? 더 나은 세계는 가능하다”, “모든 인도의 동지들에게 애정의 포옹을 보낸다.”고 말했다.

세계사회포럼이 내년에 어디서 어떻게 개최가 되든 브라질 참가단이 말한 대로 우리는 한 발자국을 내딛을지언정 결코 물러서진 않을 것이란 확신이 든다.

특히 아시아 지역에서의 군사주의 문제로 여러 워크숍을 개최한 ‘남반구의 초첨’을 비롯한 아시아 지역 단체들도 전세계의 반전 운동에 힘입어 군사주의와 신자유주의가 동전의 양면임을 역설하고 반전공동행동 동참을 결의했다.

카길, 네슬레, 몬산토 등의 다국적 농업 기업들, 화이자, 노바티스, 로슈 같은 다국적 제약회사, 수에즈, 비벤디 같은 다국적 물기업, 록히드마틴, 보잉 같은 다국적 군수기업 등은 이윤을 위한 세계화를 위해 활동 중이다.

이들의 세계에 맞서기 위한 항의의 최전선에서 우리는 투쟁해야 할 것이다. 반전운동의 성과를 기반으로 반자본주의 운동을 한국에서 건설하기 위해 이제 우리는 그 새로운 출발점 위에 서 있다.

조지영(학생)

나는 뭄바이에서 각국에서 온 다양한 활동가들을 만났다. 세계사회포럼 조직위가 발행한 신문의 1면을 ‘아래로부터 세계화’ 참가단이 장식하자 많은 활동가들이 우리에게 관심을 보였다.

한 미국인 반전활동가는 “남한의 활동가들이 너무나 중요한 일들을 해냈다”고 감격했다. 그녀는 “우리들(평범한 미국인들)이 낸 세금으로 부시가 이라크에서 끔찍한 짓을 하고 있”다며 “3월 20일 함께 행진을 하자”라고 말했다.

스위스의 한 독립미디어 활동가도 “3월 20일 반전행동에 참여할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그리고 남한의 반전활동가들이 너무나 의미심장한 일들을 하고 있다고 격려해 주었다.

김연오(학생)

뭄바이 포럼은 세계의 사람들이 모인 거대한 축제였다. 행사장에는 하루 종일 각종 시위 행진과 퍼포먼스, 수백개의 토론들이 열렸다. 행사장 곳곳에서 “제국주의를 패배시키자”는 구호를 흔하게 볼 수 있었고, 시위대들은 “다운 다운 캐피탈리즘, 업 업 소셜리즘!!”이라고 외쳤다.

가장 인상 깊었던 시위는 달릿들의 행진이었다. 이들은 세계사회포럼에 참가하기 위해 행사장까지 걸어왔으며 거리에서 적극적으로 자신의 요구를 드러냈다. 나는 거대하고 급진적인 운동들이 아시아에서도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식민지의 경험과 제국주의를 혐오하는 정서가 아시아에 공통적으로 있다는 것도 보았다. 물론 이 운동이 어디로 가야할지에 대해 결론이 나기까지는 좀더 시간이 걸리겠지만 3월 20일 전 세계적 반전 행동은 바로 이 세계사회포럼의 결과를 성큼 나아가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