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혁명 1주년을 맞아 알렉스 캘리니코스가 혁명 물결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혁명이 더욱 심화할 가능성은 어떤지를 검토한다.


아랍 혁명은 놀라운 끈기를 보여 줬다. 아랍 혁명으로 일부 독재자들이 쫓겨났고 다른 독재자들은 흔들리고 있다. 아랍 혁명은 진행형이다.

이집트 사회를 민주화하려는 싸움이 계속되고 있다. 시리아 정권의 손에 5천 명 이상이 죽었지만 시리아 혁명가들은 놀라운 용기와 투지를 보여 주고 있다.

그런데 이 혁명의 중요성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역사적 비교를 해보는 것이 흥미로울 것이다. 

이집트 혁명 1주년을 맞아 타흐리르 광장에 혁명 열사의 이름을 새긴 탑을 세우고 있는 이집트 민중  이집트 노동자 운동이 군부와 사장들에 맞선 투쟁 방향을 제시할 수 있을지에 따라 혁명의 결과는 달라질 것이다.

아랍 혁명과 가장 자주 비교되는 것은 1848년 혁명이다. 1848년 혁명은 프랑스 왕정 타도로 시작됐고 유럽의 구체제를 뒤흔들었다.

이런 비교가 썩 내키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1848년 혁명 때 구체제는 그럭저럭 버텨냈고 혁명을 진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1848년 독일 혁명의 극좌파 지도자 가운데 한 명이던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20년 후 망명지인 맨체스터에서 당시를 되돌아봤다.

엥겔스는 망명한 또 다른 혁명 지도자이자 자기 친구이자 동지인 칼 마르크스에게 이렇게 썼다. “혁명과 반혁명의 인과 관계가 철저히 망각되는 것이야말로 반동이 승리했을 때 필연적으로 뒤따르는 것입니다. 독일의 젊은 세대는 1848년에 관해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들에게-편집자] 역사는 1847년에서 돌연 멈춥니다.”

엥겔스는 혁명과 반혁명의 역학에 관한 기억이 반동기에 어떻게 잊혀지는지 설명했다.

이전 혁명이 패배했을 때 나타나는 결과 가운데 하나는 혁명이 되돌아왔을 때 새로운 혁명을 반혁명이 승리한 시절에 만들어진 왜곡된 렌즈를 통해 보게 된다는 것이다.

세계적

오늘날이 바로 그렇다. 아랍 혁명은 ― 그리고 세계경제 위기는 ― 자본주의가 아무런 제약 없이 날뛰고 혁명이 구시대 유물로 취급되던 신자유주의 시대에 구멍을 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러한 자유 시장의 반동 시대에 만들어진 신화들을 통해 아랍 혁명을 이해하려고 한다.

이러한 신화 가운데 하나는 비교적 깨뜨리기 쉽다. 그것은 바로 튀니지의 벤 알리와 이집트의 호스니 무바라크의 전복이 전 세계에 서구식 자유 자본주의를 확산시킨 ‘색깔 혁명’의 최신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이 명백히 잘못됐음은 튀니지와 이집트 혁명으로 서방 제국주의와 매우 긴밀한 관계를 맺은 지배자들이 제거됐다는 사실만 봐도 알 수 있다.

더욱이 세계은행은 그 정권들이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을 확고하고 성공적으로 시행했다고 찬양했다.

사실 반란을 추동했던 것은 바로 신자유주의의 결과였다. 신자유주의는 이집트와 튀니지 사회를 양극화하고 빈곤하게 만들었고 정권과 밀접히 관련된 소수 엘리트를 살찌웠다.

시리아에서도 이것과 똑같은 동역학이 작용했다. 바사르 알아사드는 이스라엘·서방과 반목하지만, 그의 경제 ‘개혁’은 한 줌의 사업가 패거리들한테만 이득이 됐다.

그러나 신자유주의가 횡행하던 시절 신자유주의를 비판한 사람들 가운데 일부도 신화를 만들어 냈다. 가장 영향력있는 것 가운데 하나는 마이클 하트와 안토니오 네그리가 《제국》에서 발전시킨 것이다. 이 책은 오늘날 무정형의 ‘다중’이 반자본주의를 주도한다고 주장했다. 다중은 경제·정치적 권력의 성채를 정면이 아니라 측면에서 공격한다는 것이다.

최근 폴 메이슨은 신간 《사방에서 난리가 나는 이유》를 통해 비슷한 생각을 퍼뜨리려 한다. 물론, 메이슨은 이 책에서 옳은 지적도 많이 한다. 예컨대, 메이슨은 경제 위기로 미래를 빼앗긴 대졸 실업자들이 아랍 혁명뿐 아니라 긴축에 반대하는 남유럽의 운동, ‘점거하라’ 운동에서 중요한 구실을 했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이런 그럴듯한 분석도 통신 기술과 소셜 미디어에 대한 다소 순진한 열광 탓에 손상된다.

 그는 이렇게 썼다. “정보 네트워크가 사회화되기 시작하면 그 영향은 막대할 것이다. 진실이 이제는 거짓보다 빨리 퍼질 수 있고, 모든 선전이 즉각 불꽃을 일으킬 것이다.”

소셜 미디어

메이슨은 대서양 건너편[미국]에서 소셜 미디어가 자유 시장과 주권(州權) 옹호를 부르짖는 괴짜 공화당 예비 대선 후보 론 폴의 선거 운동에 어떻게 쓰였는지 봐야 한다. 더 나아가 공화당 우파는 정보 기술을 능수능란하게 이용하며 버락 오바마 정부를 약화시켰고 이제는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서로 헐뜯고 있다.

페이스북, 트위터 같은 것들은 활동가들이 의사소통하고 조직하는 데 확실히 중요한 구실을 했다. 그러나 인터넷과 휴대전화 통신이 끊긴 뒤 벌어진, 무바라크를 끝장낸 결정적 싸움이 벌어지는 동안에는 훨씬 구닥다리 기술 ― 일반 전화와 TV(특히 알 자지라) ― 이 사용됐다. 

현재 이집트 혁명은 무바라크의 몰락 이후에도 최고군사위원회 형태로 살아남은 옛 정권에 맞선 싸움으로 발전했다.

이 투쟁을 전진시키는 것은 젊은 노동계급 혁명가들과 국가의 무력 ― 군대와 소요 진압 경찰 들 ― 사이의 충돌이다.

혁명적인 사밥(청년)들이 트위터로 의사소통할 수도 있다. 그러나 메이슨이나 네그리와 달리 그들은 국가 권력을 회피할 것이 아니라 타도해야 한다는 점을 잘 안다.

그러나 아랍 혁명의 미래 궤적을 그릴 때 우리가 맞서야 할 아주 강력하고 견고한 신화가 또 하나 있다. 그것도 역시 신자유주의 시대에 생겼다. 바로 이슬람 혐오다.

많은 사람, 심지어 급진적이고 혁명적인 좌파조차도 벤 알리와 무바라크의 타도로 주된 수혜를 입은 것은 이슬람주의자라고 생각한다.

이슬람주의자들 ― 튀니지의 알나흐다(부흥)당, 이집트의 무슬림형제단과 자유정의당 ― 이 최근의 총선에서 승리를 거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비관적인 평가 뒤에는  두 가지 오류가 깔려 있다. 첫째는 이슬람주의를 하나로 통일된 반동 세력으로 다루는 것이다. 사실, 무슬림형제단은 대단히 복잡한 역사를 통해 형성된 복합적 정치 구성물이다. 무슬림형제단은 수십 년 동안 무바라크에게 가장 일관되게 맞선 야당이었기에 이득을 봤다. 반면에 세속 세력 ― 민족주의자와 공산주의자 ― 은 같은 기간 동안 영향력과 신뢰를 모두 잃었다.

정치적으로 성공을 거두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지 제도를 제공하려고 노력한 덕택에 무슬림형제단은 매우 다양하고 모순적인 세력들을 지지층으로 확보했다. 명망있고 사회적으로 보수적인 사업가들부터 거리 투쟁을 지지하는 청년 활동가까지 모두 무슬림형제단의 이름으로 활동한다.

이것은 [무슬림형제단이 만든] 자유정의당이 최고군사위원회와 공식적인 협력관계를 맺으면서 무슬림형제단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작용하는 거대한 압력 아래 놓이리라는 것을 의미한다. 가장 중요한 압력 중 하나는 경제 위기의 결과로 나타날 것이다.

이집트의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은 최근 성명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외환 보유고가 빠르게 줄고 있다(혁명 후 1년 새에 3백60억 달러에서 1백50억 달러로 하락). 어떠한 가격 통제 장치도 없는 탓에 물가가 오르고 있다. 실업도 계속 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이 모두 세계 자본주의의 심각한 위기라는 배경 속에서 벌어지고 있다. 세계경제의 위기로 이집트 자본주의가 관광, 수에즈 운하, 해외 투자에서 벌어들이는 수익이 감소하고 있다.”

둘째 오류는 혁명 과정의 일시적 국면을 혁명의 종착점인 양 제시하는 것이다. 이전의 혁명들과 마찬가지로 이집트 혁명에서도 의식들이 변하는 속도는 다양하다.

소수의 혁명적 청년들은 대부분 최고군사위원회를 박살내야 할 주된 적으로 본다. 그러나 노동자, 농민, 도시 빈민 가운데 더 넓은 층은 군부와 무슬림형제단한테 이집트 사회를 개혁할 기회를 기꺼이 주려 한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혁명가들한테도 호의적이다.

이러한 사람들이 어느 방향으로 움직일지가 이집트 혁명의 결과를 결정할 것이다. 그들이 최고군사위원회에 반대해 싸우는 혁명적 소수에 가담할 것인가? 아니면 오른편으로 ― 어쩌면 총선에서 성공한 살라피주의적인 극단적 이슬람주의 신봉자들 쪽으로 ― 이동할 것인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은 무엇보다도 이집트 노동자 운동이 장군들과 사장들한테 모두 맞서 집단적 투쟁을 벌이는 진로를 제시할 수 있을지 없을지에 달려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이집트에서는 새로운 노동조합이 탄생하고 매우 전투적인 파업이 계속 벌어졌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자기 자신의 조직된 정치적 목소리를 갖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아랍 혁명의 의미를 왜곡하는 온갖 신화들이 있지만, 이 혁명의 미래는 열려 있다. 이러한 투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 역사는 재창조될 수 있다.

출처: 영국의 혁명적 좌파 신문 <소셜리스트 워커> 228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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