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쓴 ‘사노위 손상일 동지의 비판에 답해’(〈레프트21〉 72호. 온라인 게재 12월 30일)에 이어 손상일 동지가 사노위 신문 26호에 다시 반박 글을 실었다. 이에 대해 간단히 답변을 추가하려고 한다.

손상일 동지의 재반박 글은 새로운 논점을 제기했다기보다는 큰 틀에서 볼 때 자신의 애초 주장을 보완하는 차원에서 몇몇 주장을 덧붙였거나 원래 논지를 반복하고 있다. 또 일부는 나와 다함께의 입장을 잘못 이해 또는, 왜곡 하고는 불필요한 반론을 펴기도 한다.

첫째, 손상일 동지는 내가 통합진보당이 노조 상층 간부들에 기반하고 조직된 노조운동 부문과 연계돼 있으며, 많은 현장 투사들의 지지를 받고 있음을 고려해서 사회주의자들이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을 반박한다.

그러나 손상일 동지가 통합진보당이 ‘노조 상층 간부에 기반하고 있어서 개혁주의적인 것 자체가 문제’라고 목청 높이는 것은 번지수가 없는 얘기다. 나는 이 논쟁의 시발이 된 11월 16일 토론에서도 민주노동당이든 통합진보당이든 노동자들의 궁극적 대안이 될 수 없는 개혁주의 정당이라고 했다. 또 노동계급의 진정한 자기해방을 위해서는 사회주의 정당이 필수불가결하고, 다함께는 진정한 사회주의 정당 건설을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음을 명확히 했었다. 그러니 손상일 동지가 나를 비판하고자 ‘통합진보당이 개혁주의다’ 하고 소리치는 것은 소용 없는 일이다.

둘째, 내가 제기했던 진정한 논점은 사회주의자들이 비록 개혁주의지만 부르주아 정당과는 구별되는 통합진보당에 개입할 것인가 아닌가였다. 나는 당원들과 당 지도부를 구분하지도 않은 채, 통합진보당을 지지하는 노동자들과 접점을 형성하려는 노력을 아예 포기하고는 통합진보당이 진보가 아니라고 싸잡아 내치는 것은 옳지도 않고, 어리석다고 말했던 것이다.

셋째, 손상일 동지는 개혁주의 정당을 폭로하고 모욕을 주면 그 당을 지지하는 노동자들이 금세 개혁주의 정당의 본질을 깨닫고 사회주의 정당 건설 노력에 가담할 거라고 암묵적으로 가정한다. 그러나 현실이 그리 녹록하지 않다는 점을 사노위 동지들이라고 모를 리가 없다.

“의회주의·개량주의 지도력을 노동자계급 스스로 거부하게 만들기 위한 진지한 시도”라고 추켜 세우는 ‘통합진보당 배타적 지지 반대 캠페인’의 불투명한 앞날이 이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이 선언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은 통합진보당의 우경적 행보 반대와 배타적 지지방침 철회에 공감해 모였지만, 대안은 각양각색이다.

불투명한 앞날

캠페인에 좌파적 활동가들이 참여한 것은 사실이지만, 노조 상층 간부들이 주도권을 쥐고 있기는 마찬가지고, 이 때문에 손상일 동지가 비판하는 “의회주의·개량주의”란 점에서 별 차이가 없는 진보신당이나 사회당을 지지하거나 그와 비슷한 당을 만들자는 사람들이 다수다.

넷째, 손상일 동지는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방침에 관한 나의 주장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듯하다. 손상일 동지는 배타적 지지방침 철회가 곧 통합진보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는 것이라고 여기지만 나는 그것을 통합진보당을 포함한 복수의 진보정당과 정치세력가운데 선택하도록 하자는 뜻으로 주장했었다. 이는 다함께가 애초부터 주장해온 대안이기도 하다. 다함께의 입장이 바뀐게 아니라 손상일 동지가 자기의 바람을 앞세워 상대편 주장을 정확히 숙지하지 않은 것이다.

다섯째, 손상일 동지가 사노위의 당 건설 방식만이 유효하다고 주장하는 것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사노위는 이미 사노준―사노련 등 정치단체의 통합을 통한 당 건설 시도에서 실패를 겪은 바 있다. 게다가 내가 보기에는 지금 형성된 통합진보당에 대한 비판적 정서가 사노위를 향한 지지로 옮겨 올 거라는 보장도 거의 없어 보인다.

손상일 동지는 ‘사회주의 세력의 독자적 세력화와 당 건설 없이 개혁정당에 대한 개입과 견인이 불가능하다’고 하는데 지당한 말씀이다. 그러나 그는 정작 다함께가 사회주의 조직으로서 정치적 독자성은 물론 조직활동에서도 독립적으로 활동해 왔다는 사실을 보지 않으려 한다.

앞서 얘기한 11월 16일 토론회 때도 내가 말했듯이 다함께는 이미 시궁창 같은 현실에 뛰어들어 가끔 물도 마셔가며 이미 수영하는 법을 터득해 가고 있다면, 사노위 동지들은 순수성을 잃을까 봐 무서워 물에 들어 갈 엄두도 못 낸 채 물가에 서서 수영 교본만 만지작거리고 있는 격이다.

그러나 반복하지만, 개혁주의 세력을 지지하는 노동조합 투사들의 모순된 정서, 노동자들의 기대와 지도부의 개혁주의적 대안 사이의 모순에 개입하고 이 과정에서 운동의 전진에 기여하고, 사회주의적 대안이 옳음을 입증 받는 과정 없이 사회주의 조직의 지도력은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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