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포트 사이드에서 축구 클럽 알 아흘리팀을 응원하던 팬들 74명이 사망한 것은 처음에 알려진 것처럼 이집트 축구 훌리건이 저지른 일이 아니다. 학살은 ‘울트라스’라는 이름의 조직된 축구 팬들을 겨냥했고 군사정권이 지휘했다는 것이 곧바로 드러났다.

이집트 혁명 초기부터 울트라스는 타흐리르 광장을 방어하는 선두에 서 있었다. 카이로의 혁명적사회주의자단체(RS) 회원인 모하메드 와케드는 울트라스가 혁명에서 했던 역할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내무부 앞에서 벌어진 항의 시위에서 막 돌아와 얘기를 전해 줬다. 포트 사이드에서의 학살이 있은 뒤 가증스러운 최고군사위원회에 맞서 수천 명의 ‘울트라스’와 다른 이들이 거리를 점거하고 투쟁했다.

최고군사위원회의 수장 모하메드 우세인 탄타위에 대한 울트라스의 요구는 간단하다. “우리는 너의 목을 원한다”

군부가 포트 사이드에서 저지른 학살에 항의하는 시위

투쟁은 군대에 맞선 거리 전투로 이어졌다. 시위대 일부가 살해됐고 수많은 사람들이 부상당했다. 모하메드는 이렇게 말했다.

“수요일 경기가 시작하자마자 평범한 서포터스의 행동이 아니라는 걸 분명히 알 수 있었다. 휘슬이 울리자 홈팀 알 마스리 서포터스로 위장한 침입자들이 곧바로 경기장에 침입해 선수들과 알 아흘리팀 서포터스들을 공격했다.”

“경찰들은 순식간에 물러서서 경기장 침입자들이 소수의 울트라스들을 구석으로 몰아세우는 것을 방관했다. 보통 최종 휘슬이 울린 뒤 경기장 문들은 열려 있는데 이번에는 잠겨 있었다. 그리고 4시간 동안 학살이 진행됐다”

모하메드에 따르면 포트 사이드에서의 공격이 정확히 1년 전인 2011년 2월 2일 ‘낙타 전투’가 벌어진 날 발생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낙타들

당시에 독재자 호스니 무바라크의 깡패들이 낙타를 타고 달리며 타흐리르 광장에 모여 있던 시위대를 공격했다. 하지만 시위대는 그들을 물리쳤다. 이 처절한 전투에서 울트라스는 핵심적인 구실을 했다. 모하메드는 “무바라크의 계승자들이 울트라스에게 복수하기를 원했다”고 말했다.

울트라스는 시작부터 혁명 과정에 적극 뛰어들었다. 그들은 2010년 경찰에 의해 맞아 죽은 젊은 블로거 칼레드 사이드 살인에 항의하는 시위에 참가했다. 칼레드 사이드는 나중에 혁명의 상징이 되었다.

가장 큰 적은 무바라크 이집트 축구장 참사에 항의하는 집회에서 서로 다른 축구팀의 깃발이 함께 휘날리고 있다.  

모하메드는 이렇게 말했다. “타흐리르 광장에 모인 서로 다른 팀의 서포터스들이 협력해서 ‘울트라스 타흐리르 광장’이라는 새로운 조직을 만들었다. 가장 큰 적은 알 아흘리팀이나 자말렉팀, 알 마스리팀이 아니라 무바라크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최근에는 자말렉팀과 알 아흘리팀의 깃발이 함께 휘날리는 것도 볼 수 있었다.”

많은 축구팬들이 이런 경험을 했고 경찰에 대한 증오를 키워 왔다. 이집트 축구장에서는 이런 증오가 국제 서포터스의 구호인 ‘모든 경찰은 개새끼다’를 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나라에서와 마찬가지로 경찰에 대한 반감은 심화하는 상업화와 경기 관람표 가격 인상에 대한 거부와 함께 성장했다.

지난해 이집트 축구 서포터스의 구호는 매우 정치화됐다. 지난 달에 경기장들에서 울려 퍼진 구호는 “군사정권 물러나라”였는데 집에서 TV를 보던 이들에게도 들릴 정도였다.

모하메드는 혁명에 대한 어떤 공격도, “그들이 울트라스를 파괴하려고 하든, 무슬림과 기독교들을 대립시키려 하든, 그 어떤 형태의 분열지배 전술에도” 저항과 연대로 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출처: 영국의 혁명적 좌파 신문 <소셜리스트 워커> 228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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