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버스의 맨 앞에 섰다는 이유로 구속된 송경동 시인과 정진우 진보신당 비정규직실장이 3개월 만에 석방됐다. 송경동 시인(아래 사진)을 만나서 희망버스 평가와 운동의 과제 등을 물었다.


쌍용차 3차 포위의 날에 참가한 송경동 시인 

출소 소감을 들려 주세요.

제가 나오게 된 것은 희망버스 운동이 희망 뚜벅이로, 재능·쌍용차 투쟁으로, 다른 수많은 투쟁으로 중단 없이 계속됐기 때문입니다. 저를 가둘 수 없었던 것이 아니라 운동을 가둘 수 없었던 것입니다. 

지금 자본들은 ‘잘못했다간 시대가 바뀔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것이 세계적인 흐름입니다. 누구는 우리에게 무슨 힘이 있느냐고 물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다른 세상을 요구하는 흐름이 있고, 그런 힘들이 한국 사회 내에서 희망버스 운동으로도 터져 나온 것입니다. 

희망버스 운동의 의미는 무엇이었다고 보십니까? 

경제 위기 이후 우리가 밀려 왔는데 [희망버스 운동으로] 하나의 반격 지점을 만들어 냈습니다. 지금 노동운동에 필요한 투쟁과 연대의 정신을 되살려 보자는 제기가 성공적으로 이뤄진 것입니다. 

‘외부의 시민들이 노동자들을 도와줬다’는 것은 맞지 않는 평가입니다. 

기존에 조직돼 있는 민중운동에 더해서 미조직 대중까지 함께해 사회적 연대운동을 만들 가능성을 보여 줬습니다. 

모두에게 기쁜 일입니다. 노동진영뿐 아니라 인권·장애인·성소수자 운동이 실제적 주체로 함께했습니다.  

이명박 정권은 말도 안 되는 정권입니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만이 문제인 것은 아닙니다. 1987년 이후 20여 년간 절차적 민주주의는 약간 성장했지만 경제적 측면에서는 공격이 계속됐습니다. 

9백만 비정규직 시대, 미래가 없는 세대, 최소한의 생존이 파탄 나는 사회. 이런 것들에 대한 분노가 자연스럽게 자라 왔습니다. 또한, 정권은 정치적 권리, 인간적 권리도 박탈했습니다. 모든 인간들의 삶이 소외돼서 자신이 왜 사는지 모르는 시대가 아닌가요. 

분노가 운동이 되는 것은 산술적인 과정이 아닙니다. 질적 변화를 합니다. 어린아이가 말을 배울 때 어느 한 순간 언어를 깨닫듯 운동도 지난한 것 같지만 질적 변화를 하는 순간이 옵니다. 비정규직·촛불·노동 등 그동안 우리는 운동 속에서 각종 네트워크들을 만들어 왔고, 희망버스는 그런 네트워크들이 만나는 용광로가 돼서 사회를 뒤흔들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노동운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이 땅 노동자들의 현실이 어떤지 쌍용차 노동자 스무 명의 죽음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났습니다. 한 단위 작업장의 투쟁으로 생각할 것이 아닙니다. 하나의 투쟁이지만 전체 전선의 성격을 이해하고 집중해서 달려들어야 합니다. 

‘쌍용차 3차 포위의 날’   다른 세상을 요구하는 흐름이 희망버스를 거쳐 계속되고 있다.

희망버스 운동이 벌어지자 민주당이 쫓아왔습니다. 이들이 운동에 힘을 보탠다면서 기웃거리고, 왜곡하고, 성과를 가져가려고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다. 

중심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불순물까지 다 녹여서 더 큰 운동을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힘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패배주의에서 벗어나 더 큰 꿈을 키워야 합니다. ‘새로운 노동운동은 어떻게 만들 것인가’, ‘새로운 연대운동은 어떻게 가능한가’ 이런 것들을 고민해야 합니다.  

노동자들이 전체 운동의 중심에 서야 합니다. ‘사회주의적 지향을 가진 세계를 만들 수 있는가, 그 사회는 어떻게 운영되는가’ 하는 문제가 중요한 시기입니다. 그건 가능할 수도 있고, 그저 꿈일 수도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자본주의가 수명이 다 했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고 인류는 그것을 원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자원과 주체가 우리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