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때 중국의 주류 정치는 ‘공산당 당원’이라 불리는 ‘돈에 환장한’ 지도자들의 자화자찬 외엔 별게 없다.

그러나 지난주는 달랐다. 중국의 대표적 스타 정치인인 충칭 공산당 서기장 보시라이의 ‘오른팔’ 충칭 부시장 왕리준이 미국 영사관으로 도망갔다. 그는 수백 명의 무장 경관을 대동한 충칭 시장에게 붙잡혔다.

이 사건은 올해 최고위 지도부 물갈이를 앞두고 공산당 지배자들 내에서 벌어지는 암투와 관련 있는 것이 분명하다. 

이번 소동은 앞으로 발생할 더 큰 갈등의 서막일 수 있다.

중국의 2011년 마지막 분기 성장률은 8.9퍼센트였다. 평균 10퍼센트 이상의 성장세를 기록하던 나라에서는 불안한 조짐이다.

지방 정부들은 크게 늘어난 부채를 갚을 형편이 아니다. 

부동산 시장도 냉각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중국의 최대 수출 대상인 유로존이 심각한 불황에 빠져들고 있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는 공산당 지도부 교체와 경제 불안정이 마지막으로 겹쳤던 시기가 1988년이었고 그것이 1989년 톈안먼 항쟁을 촉발하는 계기 중 하나였다는 것을 상기시켰다.

전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급진화 과정 ― 경제 위기가 각국 지배자들의 내분을 악화시키면서 기층 반란을 강화하는 것 ― 이 중국에서도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사실 공산당 지배자들은 꽤 오랫동안 시장 개혁이 낳은 모순 때문에 민중의 불만이 폭발할 가능성을 의식해 왔다. 그들은 지난 10년 동안 다양한 민중 투쟁을 겪으면서 탄압만으로는 노동자와 민중의 투쟁을 잠재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들은 몇 가지 양보를 했다. 

지난 1월 중국 선전시에서 도로를 점거한 파업 노동자들   중국 노동계급이 새로운 대안을 건설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예컨대, 2005년 중앙 정부는 농촌 불안정의 중요한 원인이던 농업세 징수를 중단했다. 농촌에 국가가 보장하는 의료보험을 재도입하는 계획도 발표했다. 2003년에는 10년 가까이 진행된 파괴적 국영기업 민영화 물결이 일단락됐다.  

광둥성 정부는 수출 공업 단지의 최저 임금을 주기적으로 상향 조정했고, 노사 단체협상과 노동자 경영 참가 제도를 체계적으로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충칭의 보시라이는 야심찬 공공주택 사업을 벌이고 호구제 개혁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런 조처들은 30여 년 동안 시장 개혁이 야기한 문제들을 해결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오히려, 지방 정부들은 줄어든 농업세 수입을 벌충하려고 경작지 토지 매각을 가속화했다. 덕분에 수많은 농민이 변변한 보상금도 받지 못하고 쫓겨났다. 

광둥성에서는 임금이 인상되는 동시에 노동강도도 강해졌고 높은 물가인상률 때문에 임금 인상 효과가 반감됐다. 충칭은 민공의 저임금 문제는 손대지 않았다. 복지 비용 확대도 국유 토지 가격의 급격한 성장이라는 지속되기 힘든 시장 상황에 의존한다.      

또, 광둥성이든 충칭이든 노동자와 농민 들이 민주적 조직을 건설할 권리를 억압하는 독재란 측면에서는 별 차이가 없었다. 

언론의 주목을 받는 경쟁하는 ‘광둥 모델’과 ‘충칭 모델’이란 것은 사실 시장 의존적이고 기층의 자주적 활동을 억누른다는 중요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진정한 양보는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중국 지배자들이 국내외적으로 치열한 자본주의 경쟁을 벌이고 경제 위기의 그림자가 드리운 상황에서 합의하기 쉽지 않은 문제다. 

양보 제스처

그러나 지배자들의 양보 제스처는 의도치 않게 저항을 촉진하는 결과를 낳았다. 즉, 많은 노동자와 민중이 지배자들의 개혁 약속을 실천할 것을 요구하면서 투쟁한 것이다. 

지난해 연말을 뜨겁게 달군 광둥성 우칸 투쟁도 출발점은 중앙과 성 정부가 자신들을 지지할 거라는 기대였다. 우칸 주민들은 지방 정부들이 토지 강제 매각에 의존해 투자자금을 확보하는 관행에 도전했다. 

힘으로만 보면 주민 1만 3천 명이 중국에서 가장 막강한 지방 정부를 이길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은 여론의 지지를 받은 덕분에 승리할 수 있었다. 이제 우칸 주민들은 빼앗긴 토지를 확실히 되찾는 새로운 투쟁을 시작해야 한다. 

중국에서 다른 사회 집단의 연대가 필요한 것은 우칸의 농민들만이 아니다. 예컨대 억압받는 티베트 소수민족들은 연대가 더 절실히 필요하다. 

중국 정부의 점령 정책으로 한족의 대량 이주가 진행되면서 티베트와 신장의 소수민족은 심지어 소수민족 자치지구에서조차 다수 집단이 아니다. 따라서 소수민족은 자신만의 힘으로 중국 점령자를 물리치기 매우 힘든 상황이다.

포르투갈 혁명과 모잠비크 독립 간 관계나 1998년 인도네시아 민중 항쟁과 동티모르 독립 간 관계에서 볼 수 있듯이, 반식민지 운동은 식민 본국에서 대규모 투쟁이 발생해 사회의 세력균형이 근본적으로 바뀌었을 때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티베트인들이 진정한 자치를 선택하든 독립을 선택하든, 중국 내 기층 투쟁으로 현 공산당 국가가 해체되거나 약화됐을 때만 티베트인들이 민족자결권을 보장받을 가능성이 생길 것이다.

오늘날 중국에는 현존 체제에 반대하면서 다른 억압받는 집단에 강력한 연대를 제공할 잠재적 힘을 가진 집단 ― 노동계급 ― 이 존재한다. 게다가, 그들은 자신의 잠재력에 조금씩 눈을 뜨기 시작했다. 

중국 관변 싱크탱크인 사회과학원이 최근 발간한 보고서를 보면, 중국 노동운동사에 한 획을 그은 혼다 부품 공장 파업과 기타 연쇄 파업으로 뜨거웠던 2010년과 비교하더라도 2011년에 발생한 파업들은 좀더 잘 조직됐고, 기업주나 정부와의 충돌을 덜 두려워했고, 한 곳의 파업이 승리하면 다른 곳의 ‘모방 파업’을 낳는 경향도 더 강했다.

게다가, 이것은 비교적 언론의 주목을 많이 받은 민공 투쟁에 한정된 현상이 아니다. 

2012년 1월 쓰촨 성 청두에서는 중앙 정부가 직접 통제하는 국영 철강 기업 노동자들이 3일 동안 파업을 벌여 임금 인상을 따냈다. 

중국 내에서 상대적으로 ‘엘리트’ 집단으로 여겨지는 중앙 정부 직속 기업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인 것은 경기가 하락하면서 자신의 생활수준을 지키기 위해 싸우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최근 중국 노동자 투쟁의 상승세를 볼 때, 경기 하락은 일부 노동자들의 사기를 저하시킬 수 있지만 많은 노동자가 분노를 더 날카롭게 표현하는 계기가 될 수 도 있다. 

중요한 변수는 현재 중국 지배자들이 경제 위기에 대처할 능력이 얼마나 남아 있느냐다. 물론 중국 지배자들의 호주머니에는 아직 돈이 있다. 그러나 이 주머니는 지방 정부들의 악성 부채를 해결하기 위해 줄줄 샐 것이다. 그러면 경기 부양에 쓸 돈이 얼마나 남을까?

중국 자본주의를 계속 성장시킬 명쾌한 해법이 불명확한 상황에서 중국 지배자들은 자기들끼리 다툼을 최소화하면서 기층의 불만을 상대해야 하는 어려운 처지에 있다. 

중국 노동자, 농민, 소수민족 등이 공산당과 기업가들의 독재에서 벗어나 독자적 대안을 건설할 기회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이 기회를 잡을 수 있느냐에 따라 세계사의 방향이 바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