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장하준 정승일 이종태 | 부키 | 1만 4천9백 원 | 4백23쪽

2005년 《쾌도난마 한국경제》에서 ‘재벌과의 대타협’과 복지국가를 경제 대안으로 제시했던 장하준(케임브리지대 교수), 정승일(복지국가소사이어티 운영위원), 이종태(〈시사인〉 기자), 세 저자가 최근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이하 《선택》)를 냈다.

저자들이 7년 만에 책을 다시 낸 것은 한국 사회에서 총·대선을 앞두고 재벌 개혁과 ‘경제 민주화’가 다시 화두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선택》은 강철규·유종일·김상조·김기원·김대호 등 대표적인 재벌개혁론자들과 통합진보당을 직접 거명하며 재벌개혁론의 문제점을 논쟁적으로 제기한다.

예를 들어, 《선택》은 재벌개혁론자들이 재벌 해체의 모델로 제시하는 민영 KT를 사례로 들면서, 노동자는 대량 해고하고 주주 배당은 대폭 늘리는 기업 소유 구조 개편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냐고 묻는다. 

마찬가지로, 《선택》은 재벌개혁론자들이 이명박 정부의 외환시장·금융시장 개입을 ‘관치’라고 비판하며 금리 인상과 긴축재정으로 구조조정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에도 반대한다.

재벌개혁론자들이 “빚이 많은 가계와 기업의 파산이 더 많아[지고], 경제적 약자부터 파산할 거라는 점”을 알면서도 ‘어차피 터질 폭탄은 빨리 터뜨리는 게 좋다’는 식으로 주장하는 것은 신자유주의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선택》의 이런 비판이 설득력 있는 것은, 재벌개혁론이 독과점(재벌 체제 같은)과 국가 개입이 시장의 효율적 작동을 방해한다는 생각을 신자유주의자들과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통합당뿐 아니라 새누리당조차 ‘재벌 개혁과 경제 민주화’를 거론할 수 있는 것은 재벌개혁론이 시장 개혁과 큰 차이가 없다는 점을 보여 주는 것이다.

주주 자본주의

이처럼 《선택》이 재벌개혁론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것은 《선택》의 저자들이 이전부터 자유시장 확립이 성장의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신자유주의 신화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신자유주의 시대에 오히려 성장률이 떨어졌다고 폭로해 온 것과 관련 있다. 그리고 이런 점들은 여전히 이 책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선택》의 약점은 신자유주의의 문제점이 바로 주주 자본주의에 있다고 분석하면서 나타난다.

“2000년대 초중반 기업들은 저금리에도 불구하고 미국이건 한국이건 은행 대출을 별로 받지 않았어요. … 저금리 대출 자금이 두드러지게 주택 대출 쪽으로 흘러가게 된 것도 그래서입니다. 그렇다면 기업들은 왜 이렇게 달라졌을까요? 바로 기업들이 주주 자본주의에 포획되면서 단기 수익성 위주로 경영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78쪽)

《선택》은 재벌들이 비정규직 고용을 대폭 늘리고 중소기업을 ‘수탈’하며 양극화를 확대하는 데 앞장서는 것도 재벌의 본성이 아니라 주주 자본의 강요에 의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처럼 저성장과 불평등 확대를 전적으로 금융자본이나 주주 자본의 책임으로 돌리고 나서, 《선택》은 국가 개입 강화와 재벌의 경영권 보호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신자유주의 이전의 자본주의 형태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재벌개혁론이 자유시장과 중소기업을 효율성의 원동력이라고 미화하며 중소기업과의 동맹을 추구하는 것이라면, 《선택》의 재벌타협론은 국가 개입과 재벌의 투자 확대를 대안으로 보면서 재벌 같은 거대 산업자본과의 계급연합을 추구하는 것이다.

따라서 《선택》은 재벌개혁론을 비판하고 있지만, 기업·국가 경쟁력 향상이라는 대전제를 재벌개혁론과 공유하고 있다.

실제로 《선택》은 노동의 유연(안정)성과 생산성 향상 협조를 주장하고, 무상복지를 위해 노동자들부터 먼저 보험료를 올려야 한다며 계급 타협을 옹호한다.

계급 연합

그러나 주주 자본주의론은 신자유주의 이전에 경제를 좌우하던 거대 산업자본들이 왜 주주 자본의 ‘지배’를 받아들이게 됐는지, 또는 신자유주의 시대 전까지는 힘이 미약하던 주주 자본이 어떻게 산업자본을 위협할 수 있게 됐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는 약점이 있다.

실제로 한국의 상당수 재벌뿐 아니라 전 세계의 주요 산업자본들이 배당금을 내느라 허덕이기는커녕 막대한 사내유보금을 쌓아 놓은 채 투자를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은 《선택》의 주장이 현실에 들어맞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준다. 

따라서 《선택》이 주장하듯이 재벌에게 경영권만 보호해 주면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설 것이란 생각은 비현실적이다.

오히려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이 설명하듯이, 1970년대에 이윤율이 떨어지면서 경제 위기가 발생하자 산업자본이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해 자본이 금융 부문에 몰린 것이다. 

마찬가지로 국가 개입주의가 더는 경제 성장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점이 분명해지자 산업자본을 비롯한 전 세계 지배자들이 새로운 대안으로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였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리고 산업자본가들을 포함한 지배자들 전체가 이윤율을 회복하는 방안으로 신자유주의를 선택한 것이라면 자본가 계급 일부와 동맹을 맺어 사회 진보를 이루겠다는 생각은 몽상일 수밖에 없다.

재벌의 실질적인 양보를 얻어 내려면 재벌에 맞서 싸우는 강력한 노동자 투쟁이 없다면 불가능하다.

한국 사회에 강하게 뿌리박힌 재벌에게 양보를 얻어 내려면 체제 전체를 뒤흔드는 노동자 계급의 운동이 필요하다.

특히 한국 사회에 강하게 뿌리박힌 재벌에게 실질적인 양보를 얻어내려면 체제 전체를 뒤흔드는 노동자 계급의 운동 건설이 필요하다.

그런데 재벌개혁론과 재벌타협론은 노동계급이 자기 착취자를 착취 형태에 따라 좋은 착취자와 나쁜 착취자로 나누어 보도록 고무하는 공통점이 있다. 이는 계급의식을 좀먹는 효과를 내, 재벌에 맞서 일관되게 투쟁하기 힘들게 만든다.

실제로 IMF 때 김대중 정권이 ‘재벌 해체’를 내걸고 구조조정을 추진할 때 많은 재벌개혁론자들은 그것이 낳는 노동자 공격에 일관되게 맞서지 못했다. 《선택》의 재벌타협론도 효율성 향상을 명분으로 한 재벌들의 구조조정에 일관되게 반대하지 못할 공산이 크다.

우리가 재벌만이 문제라는 재벌개혁론이나 금융·주주 자본만이 문제라는 재벌타협론 중 하나만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 체제를 뛰어넘는 전망을 갖는 고전적 마르크스주의 관점에 설 때, 재벌에 맞선 투쟁을 일관되게 발전시켜 재벌·대기업의 실질적인 양보를 받아 낼 수 있고, 더 나아가 노동자들이 생산수단과 국가 권력을 직접 소유·통제하는 사회를 건설해 진정한 ‘경제 민주화’를 이룰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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