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몰리뉴가 자본주의가 보편적 자유를 요구하며 등장했지만, 민주주의는 늘 투쟁을 통해 확대됐고 지금도 결코 완전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존 몰리뉴는 영국 포츠머스 대학 ‘예술사와 철학’ 교수이자 사회주의노동자당(SWP) 활동가다.

《사회주의란 무엇인가》(책갈피), 《고전 마르크스주의 전통은 무엇인가?》(책갈피), 《마르크스주의와 당》(북막스) 등을 썼다.


세기에 들어 거의 모든 정치인은 자신들이 민주주의에 헌신하고 있다고 선언했다. 오바마, 사르코지, 메르켈, 캐머런 같은 이들만 아니라 심지어 파시스트 정당인 BNP[영국국민당]의 닉 그리핀 같은 자마저 그렇게 주장했다. 마찬가지로 스웨덴의 파시스트들은 스스로 스웨덴민주당이라고 부르며, 이집트 무바라크 정부의 집권 정당 이름도 국민민주당이었다.

이것은 현대 사회에서 민주주의라는 개념이 갖는 이데올로기적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잘 보여 준다. 냉전 시대 학자들과 대중매체의 지원 아래 민주주의는 ‘자유’란 개념과 함께 ‘서방’ 체제를 정당화하는 핵심 개념으로 발전했다.

지난해 투쟁을 통해 독재 정권을 타도한 이집트 민중 진정한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한 이집트 민중들의 투쟁은 계속되고 있다. ⓒ사진 호쌈 엘하말라위

이런 관점은 세계가 다원적 민주주의에 바탕을 둔 자유로운 서방과 전체주의적인 동방의 공산주의로 나뉘어 있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많은 체제 옹호론자 ― 밀턴 프리드먼과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같은 자들 ― 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사이에 본질적이고 필연적인 관련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좀더 깊이 들여다 보면, 민주주의를 옹호한다는 지배자들의 맹세가 흔해진 것은 현대 사회에서 피억압 민중이 지닌 잠재적 힘 ― 그 힘은 전 세계적으로 도시 노동계급이 증가하면서 어마어마하게 커졌다 ― 을 증명하는 것이고 지배자들이 그러한 힘을 두려워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제 지배자들은 민중을 지배하려면 반드시 ‘민중의 이름으로’ 지배하는 형식을 취해야 한다.

이것은 정치가들의 말과 행동이 따로 노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다. 지난해 11월 1일, 그리스 총리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는 유럽중앙은행(ECB), IMF와 합의한 ‘구제금융 계획’(다시 말해 가혹한 긴축 프로그램)을 국민투표에 부칠 것이라고 발표했다. ‘시장’(다시 말해 자본가들), 언론, 메르켈, 사르코지 등은 투표를 통해 결정할 권리를 민중에게 부여한다는 생각에 분통을 터뜨리며 격렬히 반발했다. 파판드레우는 긴급 회담에 불려가 이러한 투표를 결코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무시무시한 경고를 들었다.

이틀 후에 국민투표안은 철회됐고 일주일 후에는 파판드레우가 물러나고 선출되지 않은 루카스 파파디모스가 신임 총리가 됐다. 언론은 파파디모스를 ‘기술 관료’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 말은 이번 경제 위기에 쓰인 대부분의 전문 용어들 ― ‘양적 완화’, ‘손실 분담’ 따위 ― 처럼 문제의 본질을 흐리려고 고안된 용어일 뿐이다. 파파디모스는 은행가다. 그는 1994년부터 2002년까지 그리스은행 총재였고, 2002년부터 2010년까지 ECB 부총재였다.

또, 이탈리아의 국채 부도 위기가 심각해지자, 실비오 베를루스코니가 사임하고 또 다른 선출되지 않은 ‘기술 관료’인 마리오 몬티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몬티는 경제학자고, 유럽연합 집행위원, 골드만삭스와 코카콜라의 국제 고문 출신이다. 그는 지난해 11월 9일에 이탈리아 대통령에 의해 ‘종신 상원의원’으로 임명됐고, 고작 일주일 후에 은행가들과 기업주들의 지지를 받는 “거국 일치 내각”의 총리로 취임했다.

그리스와 이탈리아의 사례는 경제 위기가 대단히 심각한 상황에서 국제 은행가들이 요구하는 긴축 조처들의 신속한 이행을 위해 국민이 자신의 정부를 뽑을 민주적 권리가 쉽사리 ‘보류’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 줬다. 이러한 긴축 조처들은 매우 혹독해서 선출의 압력을 받는 정치인이라면 누구나 채택하길 꺼릴 것이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사르코지와 메르켈은 모든 유럽연합 국가의 재정 통합을 확대하고 각국에 더 엄격한 예산 규제를 강제하는 내용으로 리스본 협정을 개정할 것을 요구하는 중이다.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의 권력을 더욱 약화시키겠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도대체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실제로 무슨 관계란 말인가? 이를 이해하려면 역사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의 역사

역사적으로 보면 자본주의의 등장과 현대 민주주의 등장 사이에는 모종의 관계가 있지만 둘 사이의 연관성은 흔히 주장되거나 암시되는 것보다는 훨씬 간접적이다.

봉건제에서 자본가 계급은 봉건 귀족에게 종속됐다. 당시 자본가 계급은 소수였지만 이미 착취 계급이었다. 따라서 그들이 권력을 쥐려면 자신을 전체 사회의 대표자인 것처럼 보이게 해야 했다. 이에 관해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사회주의, 공상에서 과학으로》에서 이렇게 말했다. “봉건 귀족과 모든 사회 구성원을 대표한다고 주장하는 시민계급[부르주아] 사이의 적대는 착취자와 피착취자 사이의, 게으름뱅이 부자와 가난한 노동자 사이의 적대와 공존했다. 바로 이런 사정 때문에 자본가 계급의 대표자들은 자신들이 특정 계급을 대표한다는 것이 아니라 고통 받는 전체 인류를 대표한다고 내세울 수 있었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고자 자본가 계급은 추상적인 권리 선언을 곧잘 만들어냈다. 그러한 것들로는 1689년 영국의 권리장전부터,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됐으며, 신은 이들에게 빼앗을 수 없는 몇몇 권리를 부여했다. 이러한 권리에는 생명권, 자유권, 행복추구권이 있다” 하고 말하는 1776년 미국 독립선언서, 그리고 그 후속인 미국 권리장전, “자유, 평등, 우애”를 외친 프랑스 혁명과 프랑스 인권선언을 들 수 있다.

더욱이 자본가 계급과 부르주아 혁명의 성장 과정은 다양한 형태의 군주 권력과 귀족 권력에 대항해 의회 통치를 추구하는 싸움과 관련 있었다. 16세기 네덜란드 독립전쟁 때 주연합의 의회가 한 구실, 1642년 영국 혁명 때 의회와 왕 사이에 벌어진 전쟁, 프랑스 혁명 때 삼부회와 국민의회가 한 구실이 바로 그러했다.

그러나 실상 ‘인간’이나 ‘보편’에 대한 헌신은 항상 중대한 예외 조건과 여러 가지 회피 조항을 담고 있었으며 진정한 ‘보편’과는 거리가 멀었다. 1689년 권리장전에서의 가톨릭 교도와 미국 독립전쟁 때의 흑인 노예의 경우는 그 고전적 보기이며, 당연히도 ‘인’권에 여성은 포함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식민주의의 희생자인 원주민이나 토착민에게는(피부색이야 어떻든) 어떠한 인권이나 정치적 권리도 부여되지 않았으나, “재산권”은 항상 가장 신성한 권리로 신주 모시듯 다뤄졌다. 또한 의회 통치를 추구하는 자본가 계급의 열정이 보통선거권의 확립으로까지 확장된 적도 없었다.

1647년의 퍼트니 논쟁에서 헨리 아이어턴(급진적 수평파인 레인즈버러에 맞서 올리버 크롬웰을 대변한 인물)은 이렇게 주장했다. “이 왕국에 영구불변의 이해관계를 갖지 않은 사람은 나랏일을 처리할 때 자기 이익이나 몫을 주장할 권리가 없다. 또한 그런 사람들은 우리가 따라야 할 법들을 결정할 사람으로 나서거나 그런 일을 할 사람을 고를 권리도 없다.”

아이어턴이 언급한 “영구불변의 이해관계”라는 말은 소유권, 특히 토지 소유권을 뜻했다. 그는 재산이 없는 사람이 투표하는 것을 허용할 수 없다고 주장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들은 필연코 투표를 이용해 재산의 지배를 끝장내려고 할 텐데, 그런 생각은 당연히 말도 안 되기 때문이었다. 보통선거권(다시 말해 노동계급에게 투표권을 주는 것)에 대한 이와 같은 반대는 적어도 19세기 말까지 영국의 자본가 계급과 세계 각국 자본가 계급의 공통된 태도였다.

19세기의 자유주의 역사가인 맥콜리는 “보통선거권은 정부의 존재 이유 자체를 심각하게 위협할 것이며, 그러한 발상은 문명과 결코 양립할 수 없다” 하고 썼다. 심지어 위대한 자유주의 철학자인 존 스튜어트 밀마저 자신의 책 《대의정치론》에서 평등한 보통선거권에 반대했다. 육체 노동자 계급이 다수라는 사실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노동계급이 투표할 권리를 쟁취하는 싸움은 노동계급 자신의 몫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기나긴 싸움이었다. 그 과정에서 1819년의 피털루 대학살, 1838년부터 1859년까지 벌어진 위대한 차티스트 운동, 1871년의 파리코뮌, 1893년의 벨기에 총파업, 여성 참정권 운동, 1950년대와 1960년대에 벌어진 미국의 공민권 운동 같은 많은 기념비적인 싸움들이 벌어졌다.

1977년에 《뉴레프트 리뷰》에 발표한 ‘자본의 지배와 민주주의의 성장’이라는 기사에서 예란 테르보른은 17개 주요 자본주의 국가 가운데 1900년까지 완전한 보통선거권을 채택한 곳이 한 곳도 없었음을 보여 줬다. 오스트레일리아가 1903년에 최초로 도입했고, 뉴질랜드가 1907년에 그 뒤를 따랐다. 조금이나마 진전된 보통선거권을(1928년까지 영국에서는 30세 이하 여성이 참정권을 얻지 못한 것과 같은 무수한 구체적인 문제들이 있었다) 확립한 결정적인 시기는 1917년에서 1920년 사이였다. 이 시기 보통선거권 확대 사례로는 오스트리아(1918), 캐나다(1920), 핀란드(1919), 독일(1919), 스웨덴(1918), 영국(1918)을 들 수 있다.

별로 보통선거권답지 않은

다시 말해서, 대체로 참정권은 제1차세계대전이 끝난 뒤 유럽을 휩쓴 혁명 물결의 부산물로 노동계급이 획득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참정권을 흔히 민주주의의 품질 보증 마크처럼 생각하지만 그것은 상당히 자유롭고 “조작되지 않은” 선거로 자주적 의회를 선출할 경우에나 의미있는 얘기다. 무바라크 집권기에 이집트에서 정기적으로 치러진 선거나 1918년 독일 혁명 이전에 존재했던 황제한테 굽신거리는 의회 따위는 이와 아무 상관이 없다.

따라서 투표는 오늘날 대다수 사람들이 민주주의의 구성 요소로 간주하는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노동조합 조직의 자유, 파업권, 저항권, 법 앞의 평등 등과 같은 민주적 권리들의 꾸러미 가운데 일부다. 투표와 마찬가지로 노동자들이 이러한 권리들을 획득하는 과정도 기나긴 싸움의 연속이었다. 노동자들은 셀 수도 없이 싸우고 또 싸워야 했다. 그 사례로는 19세기 후반에 독일에서 비스마르크의 사회주의 규제법에 맞서 벌인 싸움, 여러 나라에서 파시즘에 맞서 벌인 저항, 매일매일 정치적 권리, 노동조합 할 권리, 법적 권리를 둘러싸고 벌이는 작은 싸움들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대체로 많은 예외와 단서를 달고서(예를 들어 중국과 같은 사소한 경우들과 중동의 심각한 경우들 같은) 그 전투들이 승리했다는 사실은 계속되는 계급 전쟁 속에서 불안정한 타협이 이뤄진다는 의미다.

한편으로 그러한 타협은 자본가 계급의 팔목을 비틀어 얻어 낸 진짜 승리들이므로 축하하고 지켜 내야 할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그 승리는 약간의 사회 안정같은 어떤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지배계급과 자본주의가 ‘민주주의’와 대체로 잘 지낼 수 있다는 것과, 지배계급이 느끼는 공포와 달리 재산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 사유재산을 금하는 데 투표하지 않도록 유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세계의 지배계급들이 차츰 이해하게 된 것을 반영한다.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본질

민주주의의 문자 그대로의 의미는 민중의 통치이지만,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가장 순수하고 가장 완벽한 형태에서조차 결코 민중의 통치를 구현하지 않는다. 사실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언제나 ― 마르크스의 말을 빌면 ― “자본가 계급의 독재”다.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이러한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가장 민주적으로 선출된 의회와 정부조차도 핵심 생산 수단이나 사회에 축적된 부를 소유하거나 통제하지 못하고, 이러한 것들이 선출되지 않은 자본가들의 수중에 고스란히 남아 있으며, 자본주의적 경쟁 법칙에 따라 그것들이 작동한다.

따라서 선출된 정부는 대개 자본가 계급이 정하고 자본가 계급(‘시장’, 기업, 기타 등등)이 수용할 수 있는 한계 안에서 통치하며 이를 머뭇거리는 정부는 투자 중단, 자본 도피, 그 나라 통화에 대한 투기 공격 등으로 거의 항상 굴복시킬 수 있다.

둘째, 선출된 의회는 국가기구(군대, 경찰, 사법부, 행정 조직, 기타 등등)의 일부이자 그것과 공존하는데, 이러한 국가기구는 선출되지 않고, 매우 위계적이며, 자본가 계급의 이해관계와 수천 가닥으로 ― 사회적, 경제적, 역사적, 이데올로기적으로 ― 묶여 있다.

집회·시위의 자유조차 온전히 보장되지 않는 부르주아 민주주의 ⓒ이미진

사회의 결정적인 물리력을 집중적으로 소유함으로써 이러한 국가기구는 정부 정책을 실행할 진정한 열쇠를 보유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그러한 정책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고, 필요하다면 실제로 정부를 대신할 수도 있다(다시 말해, 1973년 칠레에서처럼 선출된 좌파 정부를 무너뜨린 군부 쿠데타를 일으켜서).

셋째, 마르크스가 말했듯이 사회의 지배적 사상은 지배계급의 사상이다. 전체 정치 과정의 틀은 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적 가정에 ― 무엇보다도 자본주의적 생산 관계와 이윤 논리가 자연스럽고 변화 불가능하다는 가정 ― 맞춰진다. 그러고 나면 자본주의적이고 국가 통제를 받는 언론이 그러한 이데올로기적 가정을 특정한 정책과 사고방식으로(긴축의 필요성, 파업의 무책임성, 기타 등등) 바꾼다. 더욱이 자본가 계급과 노동계급 사이에 거대한 불평등이 존재하므로 선거를 포함한 정치 투쟁 자체에 각 계급을 대표하는 자들과 정당들은 매우 불평등한 자원을 지니고서 싸움에 뛰어들게 된다.

게다가 평상시에 노동계급과 가난한 사람들의 상당수가 자본주의 하의 일상생활에서 겪는 소외, 착취, 억압에 너무나 시달리고 사회에서 완전히 배제됐다고 느끼므로 그들은 정치에 관여하길 꺼리고, 정치에 관심이 없다. 투표 기권층은 사회 상층보다는 사회 하층에서 훨씬 그 비율이 높다.

마지막으로, 부르주아 민주주의적 선거와 선거 시스템은 ― 그것이 어떻게 변형되든 상관없이 ― 진짜 민주주의를 약화시킨다. 왜냐하면 유권자들은 원자화된 개인들로서 4년이나 5년에 한 번씩 넓은 지역으로 이뤄진 선거구에서 의원을 뽑을 뿐이기 때문이다. 거기서 뽑힌 정치인은 평균적인 노동계급 유권자보다 훨씬 높은 경제·사회적 지위에 오른다. 그에게 책임을 묻거나 소환할 수도 없다. 결국 이러한 대표자들이 교활하게, 또는 거리낌없이 부패를 저지르고 자신의 선거 공약을 뒤집는 것은 지극히 손쉬운 일이다.

그러나 이 모든 요인들이 의회 민주주의를 자본의 지배를 감추는 허울로 만들지라도 자본가 계급이 이러한 허울이나마 유지하는 데 무조건적으로 헌신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점도 강조해야 한다. 이 점은 이탈리아, 독일, 스페인, 포르투갈의 파시즘 경험, 그리스의 군사독재(1967∼74), 라틴아메리카, 중동 등지의 서방 후원을 받는 무수한 독재 정권들이 되풀이해서 증명했다.

계급 타협

이것은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계급들 사이의 타협이고, 자본가 계급한테서 얻어 낸 양보이기 때문이다. 위에서 지적했듯이, 부르주아 민주주의에는 ‘권리’와 관행 들이 포함돼 있다. 그것들은 비록 어떠한 측면에서도 자본가 계급의 지배를 끝내는 것이 아니지만, 그러한 지배를 제약하고 노동계급과 다른 민중 세력이 그러한 지배에 맞서 조직할 수 있게 한다. 우리 지배자들은 민주주의를 짓밟는 과정에 조심성 없이 착수하진 않을 것이다. 지배자들은 ‘동의에 의한’ 지배와 민주주의적 가면을 통해 얻는 합법성의 장점과 공공연한 파시즘 독재를 강요하는 시도를 할 때 받게 될 막대한 위험을 익히 알고 있다.

지배자들은 경제적 긴박함과 정치적 공포를 느끼고 더불어 자신들이 공공연한 독재를 용납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 때에 이르러서야 그러한 노선을 채택할 것이다. 지배계급 대부분이 파시즘이나 반민주적 선택지를 결정하기 전에 그러한 문제를 두고서 심각한 전술적·전략적 분열이 나타날 가능성이 확실히 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어디쯤에 서 있는가? 우리는 자본주의가 세계적인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고 이 위기가 아주 다양한 경제·사회·정치적 긴장을 낳고 있음을 익히 알고 있다. 그리하여 유로존은 위기를 겪고 있고, 미국에서는 ‘점거하라’ 운동이, 스페인에서는 ‘분노한 자들’ 운동이, 영국에서는 대규모 시위와 파업이, 중동에서는 아랍의 봄 이후 매우 강도 높은 투쟁이, 그리스에서는 계속해서 총파업과 시위, 소요가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 비춰 볼 때 그리스와 이탈리아에서 파파디모스와 몬티가 취임한 일은 중대한 사태 발전이다. 그것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정착 과정을 구성하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적대 세력 사이의 균형에 커다란 반민주적 변화가 일어났음을 나타낸다. 그것은 또한 영국에서 시위대에 대한 억압이 늘고 보복성 판결이 차츰 증가하고 있는 것과, 미국에서 ‘점거하라’ 운동에 대한 경찰의 합동 공격이 이뤄지는 맥락에서도 살펴봐야 한다.

본질적으로 이러한 발전이 당장 노동계급의 노동조합과 정치 단체를 불법화하고, 파업과 시위를 금지하고, 선거권을 박탈하고, 의회를 해산하는 것과 같은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결정적 폐기를 뜻하진 않는다. 그러나 그것들은 다가오는 것들이 어떤 형태를 취할지, 1퍼센트가 필요로 하다면 거리낌없이 할 태세가 돼 있는 행동이 무엇인지를 심각하게 경고하고 있다. 그것은 또한 우리가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어떠한 환상도 가지고 있지 않고 그것을 노동자 평의회라는 더 높은 수준의 민주주의로 대체하려고 노력하지만, 노동계급이 과거 투쟁에서 쟁취한 모든 민주주의적 성과들을 방어하기도 해야 한다는 오래된 교훈을 환기하고 있기도 하다.

출처: 영국의 혁명적 좌파 월간지 《소셜리스트 리뷰》 2012년 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