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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하는 중미 갈등과 동아시아의 불안정

남중국해 스카보러섬(황옌다오)을 둘러싼 중국과 필리핀의 영유권 분쟁이 격화하고 있다. 양국의 해상 대치가 장기간 지속되자, 중국 정부는 군함들을 추가로 집결시키고 필리핀 관광도 중단했다. 중국 관영언론 〈인민일보〉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면 참지 말라”며 ‘일전 불사’를 외쳤다. 이 때문에 남중국해에서 조만간 국지전이 발생할지 모른다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중국이 강경하게 나오는 데는 최근 필리핀이 미국과 군사 협력을 강화하는 것이 관련돼 있다. 4월 16~27일 미국과 필리핀은 남중국해 팔라완과 루손섬 일대에서 연례 합동군사훈련인 발리카탄 훈련을 실시했다. 이때 미국 태평양 해병대 사령관은 “남중국해의 난사군도도 미·필리핀 상호방위조약의 적용 대상”이라고 밝혔다. 즉, 유사시 남중국해에서 필리핀과 중국의 분쟁에 미국도 개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이 사태의 배경에는 중미 갈등이 놓여 있다. 남중국해는 한국, 중국, 일본에게 매우 중요한 해상 무역로이며, 주변국들이 영유권 분쟁을 벌이는 곳이다. 이곳에서 미국은 중국의 부상에 긴장하는 주변 국가들에게 보호막을 제공하려 하고, 이에 중국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중미 갈등으로 긴장이 고조하는 남중국해 한·중·일의 주요 무역로이자 자원 수입선인 이곳의 불안정은 동아시아 전체에 큰 파장을 낳을 것이다. [크게보기]

또한 미국은 중국 감시 활동에서 공조를 강화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동적 방위 협력’을 추진하기로 일본과 합의했다. 미군은 일본 자위대와 앞으로 괌과 북마리아나 제도 등에서 훈련 시설을 공동으로 사용하며 합동 훈련을 하기로 했다. 남중국해와 인도양 등지의 분쟁에 신속하게 개입하기 위해 오키나와 주둔 미 해병대 병력 중 9천여 명을 괌, 호주 등으로 분산 배치할 것이다.

이처럼 오바마 행정부는 곳곳에서 중국을 옥죄는 포위 전략을 강화해 나가고 있다.

이런 움직임에 중국 지배자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중국과 러시아는 4월 22~27일 한반도 서해에서 최초의 공식 연합 해상훈련을 했다. 이 훈련에 중국의 함정 16척과 잠수함 2척, 러시아 함정 7척 등 대규모 병력이 참가했다.

이처럼 중국에 대한 미국의 포위 전략과 중국의 맞대응은 동아시아에서 점점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이는 쉽게 해결될 성질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 패배와 2008년 경제 위기로 휘청거리는 사이에 중국은 상대적으로 부상할 수 있었다. 미국 지배자들은 전통적으로 유라시아에서 자신의 패권을 위협할 경쟁 국가의 부상을 경계해 왔는데, 지금 중국이 바로 그런 국가인 것이다.

중국이 아시아에서 미치는 경제적 영향력은 수년 전부터 급격히 증대했다. 2000년대 아시아 국가들의 대중국 수출 의존도가 매우 커졌고, 중국은 아시아 국가들의 외화 획득 원천과 시장으로서 미국의 구실을 대체하고 있다.

이런 변화 때문에 미국의 핵심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의 일부 지배자들 속에서도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균형 외교’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제기돼 온 것이다.

“균형자” 전략

자국의 안정적인 경제 성장을 보장하기 위한 중국 지배자들의 외교적·군사적 노력도 미국의 지정학적 영향력에 위협이 된다. 예컨대 중국이 무역로 보호를 위해 해군력을 증강하는 것이 미국의 해상 통제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그리고 과거 냉전 시대와는 달리, 지금의 중미 갈등은 경제적 경쟁이 지정학적 경쟁과 맞물리고 있다.

미국은 심각한 무역 적자를 해소하고 국내 경기를 회복하기 위해 수출을 늘리고 싶어 한다. 즉, 미국 자본가들이 아시아 시장에 더 많은 상품과 서비스를 수출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미 국무장관 힐러리 클린턴은 올해 초 “개방된 아시아 시장은 미국에게 전례 없는 투자와 무역 기회와 첨단 기술에 접근할 기회를 줄 것이다” 하고 강조했다.

오바마 정부는 이것을 추구하는 데서 중국이 제일 중요한 고리임을 잘 알고 있다. 미국 정부는 끊임없이 중국에게 위안화 절상을 요구하고, 중국 내에서 미국 기업과 중국 기업이 “공정 경쟁”을 하도록 보장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이런 경제적 이익을 더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미국 지배자들은 동아시아에서 중국을 겨냥해 군사적 역량을 강화해 나가는 것이다.

나아가 미국은 동아시아에서 자신이 중요한 “균형자”임을 내세우며 중국이 반미 연대를 구축하지 못하게 주변 국가들과 이간질하고, 자신을 중심으로 동맹들을 더 긴밀히 묶어 두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미국은 기존에 군사 동맹을 맺지 못한 국가들에게도 손을 내밀고 있다. 인도와 군사 협력 수준을 높이려 애쓰고, 서로 전쟁까지 한 베트남과도 긴밀한 협력 관계로 나아가고 있다. 심지어 중국 지배자와 가까운 버마 군부에게도 무역 봉쇄 조처 철회를 미끼로 접근한다.

또한 미국 정부가 한국과 FTA를 체결하고, 중국을 배제한 채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추진하는 것은 아시아의 경제 질서를 미국 중심으로 조정하려는 노력이기도 하다.

중국도 미국의 포위망을 뚫으려고 온갖 노력을 다한다. 예컨대 미국과 파키스탄이 잠시 소원해지는 틈을 타, 지난해 중국은 파키스탄 과다르 항구에 해군 기지 건설을 추진하고 파키스탄과 통화스와프를 맺었다. 중국과 러시아가 중심인 상하이협력기구가 2014년에 합동군사훈련을 하기로 하는 등 군사 동맹도 강화하고 있다. 그리고 한미FTA가 발효되자 서둘러 한중FTA 협상을 추진하고 있다.

물론 현재의 중미 갈등을 “신냉전”이라 부르는 것은 다소 과장이다. 아직 두 나라 지배자들은 갈등이 격렬한 충돌로 비화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리고 중국은 여전히 경제력과 군사력 모두에서 미국과 격차가 크다. 무엇보다 냉전 때와 다르게 주변 국가들이 양 진영 중에 반드시 어느 한 쪽에만 속해야 하는 기로에 서 있지도 않다.

그러나 헤게모니를 둘러싼 중국과 미국의 ‘그레이트 게임’ 때문에 동아시아 국가들의 관계는 한층 더 복잡하고 위험해지고 있다. 중미 갈등 속에서 남중국해 분쟁, 한반도 군사 충돌 등으로 동아시아 지역에 긴장이 쌓이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그리고 이 와중에 한국·일본·인도 등의 지배자들은 ‘위협 세력’을 핑계로 군사력을 증대하는 등 동아시아 불안정에 일조하고 있다.

따라서 좌파는 한일 군사협정 체결, 북한 선제타격 작전 계획 추진 등 최근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호전적이고 친체국주의적인 정책에 반대해야 한다. 그리고 지정학적·경제적 경쟁 속에서 군비를 증강하며 재앙을 만들어 내는 제국주의 체제 자체에 반대하는 입장을 분명히 하며 운동을 건설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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