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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이주노조 전 위원장의 편지:
“저는 위협과 욕설, 폭력 속에 추방당했습니다”

아래 글은 미셸 이주노조 전 위원장이 4월 30일 한국에 입국하기 위해 인천공항에 도착한 뒤 다음 날 아침 강제로 필리핀 마닐라로 추방되는 과정을 소상히 정리해 이주노조에 보내온 것이다.

미셸 동지는 올 초 필리핀으로 귀국한 후 최근 한국 출입국관리소가 발급한 유효한 비자를 가지고 출입국관리소의 부당한 비자 취소에 맞선 소송과 비자 연장을 위해 한국에 입국하려 했다. 그러나 출입국관리소는 미셸 동지가‘블랙리스트’에 올라있다며 부당하게 입국을 거부했을 뿐 아니라 출입국 직원과 경찰 20여 명을 동원해 매우 폭력적으로 추방했다. 

지난해 출입국관리소는 이주노조를 탄압하기 위해 당시 이주노조 위원장이었던 미셸 동지의 비자를 박탈했고 추방 위협을 가했다. 이것은 그 동안 법무부와 정부가 이주노조 간부들에 대해 집요하게 벌여 온 표적 탄압의 일환이었다. 미셸 동지와 이주노조는 이런 탄압에 굴하지 않고 맞서 싸웠고 1심 법원도 출입국의 부당한 비자 박탈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출입국은 법원의 판결을 이행하기는커녕 항소를 했고 이 때문에 이 소송은 아직 진행 중이다. 

미셸 이주노조 전 위원장

비행기가 약간 지연돼 우리는 오후 9시 30분께 인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비행기에서 내려 입국심사대로 갔는데, (심사관은) 여권과 외국인등록증, 지문과 사진을 확인하더니 저를 출입국관리사무소로 보냈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몇 시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어떻게 사증을 취득했는지, 한국에서 무엇을 하려는 건지, 얼마나 오래 머무를 건지, 되돌아가는 비행기표는 샀는지 등 약 두 시간 동안 저의 사증에 관한 무작위 질문을 받았습니다.

사무소에 있는 분들에게 한국으로 저를 들여보내줄지 물어보았을 때 한 심사관은 조금 복잡하더라도 들어갈 수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답했습니다. 처음에 사무소에 들어갈 때 저는 그사람의 이름을 물어보았지만 나중에 알려준다며 답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이 전화를 받을 때 자신의 이름을 밝히는 걸 엿들을 수 있었을 뿐, 저에게 끝까지 이름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보다 나이가 더 많은 (아마 더 높은 직급의) 다른 심사관은 방안을 왔다 갔다하며 저에게 질문을 했고 다른 심사관들과 무언가를 상의하는 것 같았습니다.

어느 시점엔가 그들은 컴퓨터에 입력된 기록에 제 이름이 2011년 2월자로 블랙리스트에 올라있다고 말했습니다. (출국명령 행정처분 취소소송에서) 승소한 뒤 저는 2011년 11월에 G-1 (인도적 사유에 의한 체류허가) 비자를 받은 바 있습니다. 출입국관리사무소는 그럼에도 블랙리스트에서 제 이름을 지우지 않았고, 따라서 기록상 5년간 저의 한국 입국이 금지된다고 나온 것입니다. 저는 G-1 비자를 받은 이상 블랙리스트는 무효하다고 주장했습니다. 한 직원은 계속 확답을 주지 않았지만, 그들이 쉬쉬하며 저에 대해 상의하는 걸 엿들으니 저의 입국을 허용하지 않을 거라는 내용이 들렸습니다.

몇 시간에 걸친 토의 끝에 마침에 그들 중 최고위급으로 보이는 심사관 한 명이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하다고 했습니다. 저는 괜찮다고, 이해한다고 했습니다. 그는 이어서 블랙리스트 내용대로 집행하기로 했으며 저를 마닐라로 되돌려 보낼 의향이라고 했습니다. 출입국관리소 직원들이 저를 필리핀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기다릴 “3층에 있는 라운지”까지 인도할 거라고도 했습니다. 그는 제가 아침 7시께 필리핀으로 돌아가게 될 것 같다면서 그래도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고 어떤 요소들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명확히 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상황이 아직도 바뀔 수 있다는 힌트를 주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그들이 결정을 번복하도록 정식으로 이의를 제기할 의사를 표현했습니다. 저는 이 라운지가 추방되는 사람들을 가두는 감금실이냐고 물어봤지만 그는 부인했습니다. 또한 “3층에 있는 라운지”에서 제 변호사한테 전화할 수 있는지 물어봤습니다. 그는 할 수 있다고, 3층 라운지에서 원하는 걸 다 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또한 그들의 결정에 항의할 것이기 때문에 5월1일에 필리핀으로 돌아갈 의사가 없다고 몇 번씩이나 분명히 말했습니다. 5월1일은 휴일이고, 따라서 탄원서를 접수하는 관련 관공서 (법원과 출입국관리사무소 등)들이 모두 문을 닫는다고도 설명했습니다. 제가 아무런 법도 어기지 않았기 때문에 하루 종일 (5월1일) “라운지”에서 제 변호사를 기다렸다가 (관공서가 문을 여는 다음날) 탄원서를 제출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의 신청이 기각된다면 비행기 예약을 조정해 휴일 다음날이라도 되돌아갈 의사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 최고위급 심사관은 라운지에서 원하는 모든 걸 할 수 있다고 다시금 말했습니다. 이 시점부터 제 여권을 비롯한 다른 서류처리업무가 더 젊은 심사관에게 넘겨졌습니다. 그 심사관은 최고위급 심사관이 저에게 앞서 말한 사항들을 얘기할 때 함께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가 저를 라운지로 인도했는데, 알고 보니 그 라운지라는 곳은 본국으로 송환되는 외국인을 위한 대기실이었습니다. 그곳은 2층이었습니다. 대기실로 향하는 길에 저는 제 외국인 등록증이 여권에 끼워져 있는지 물어보았고 함께 확인했을 때 등록증은 여권 안에 없었습니다. 저는 (등록증을 가지러) 다시 돌아가려고 했지만 그 젊은 심사관은 나중에 자기가 갖다 주겠다고 말했습니다.

대기실에는 많은 외국인들이 잡혀있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자고 있었습니다. 또 다른 심사관이 당번으로 근무 중이었습니다. 저는 지인들에게 궁지에 몰린 저의 상황을 알리려는 희망에 가져온 노트북을 바로 꺼내 들었지만 인터넷 연결이 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당번인 심사관이 자리를 비운 사이 함께 온 젊은 심사관에게 전화를 쓸 수 있냐고 물어봤습니다. 처음에 그가 주저하길래 상급 심사관이 이미 전화하는 걸 허락했다고 일러주었습니다. 저는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고 합법적으로 한국에 입국하는 중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저의 곤란한 처지를 이해한다고, 왜냐하면 (이 상황은) “그들의” 잘못 때문이지 저의 잘못은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왜 그들의 실수 때문에 제가 이런 어려움을 겪어야 하냐고 물어봤습니다. 그는 제가 전화를 쓸 수 있도록 해주었고 저는 여러 사람에게 접촉을 시도했습니다. 가까스로 친구에게 연락이 닿았고 제 처지를 설명할 수 있었습니다. 그 친구에게 제가 아무래도 아침 7시나 7시 반에 송환될 것 같으니 이주노조 사람들에게 연락을 취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이것은 제가 심사관들끼리 쉬쉬하며 대화한 것을 엿들어서 알게 된 내용이었습니다. 전화를 한 뒤 저는 그 젊은 심사관에게 5월1일은 휴일이기 때문에 필리핀으로 돌아갈 의향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의 신청서를 제출하고 싶었고, 그 심사관에게도 협상을 통해 5월2일 오후에라도 돌아갈 수 있도록 비행기 일정을 조정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심사관이 네팔에서 온 다른 두 명의 외국인을 데리고 돌아왔습니다. 몇 분 뒤에 그 심사관에게 전화 한 통을 더 할 수 있냐고 물어봤습니다. 그는 이미 아침 7시에 떠나기로 예정되어 있는데 전화 한 통이 왜 필요하냐고 되물었습니다. 그는 그냥 앉아서 잠이나 자라고 했습니다. 다시 한번 저는 아침에 떠날 의사가 없다고, 탄원서를 정식으로 제출할 의향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는 손을 흔들어 저를 쫓아버렸습니다. 저는 얘기를 해봤자 제 속만 상할 뿐 아무 소용이 없을 거라고 느꼈습니다. 제 자리로 돌아가는 동안 분노를 삭이는 수밖에 아무런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 와중에 그가 이주노조 자원활동가 중 한 명의 전화를 받았고 짜증난 기색이 역력했지만 저에게 전화를 넘겨주었습니다. 그 자원활동가에게 제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그녀는 저에게 누구와 이야기 했는지, 앞으로 어떻게 할 계획인지 얘기해줬습니다. 저도 추방을 거부하고 탄원이 기각된다면 협상을 통해 그 다음날 떠나는 비행기라도 예매할 거라고 얘기했습니다. 또한 항공사에 전화해 다음날 돌아가는 비행기를 예약하는 등의 다른 여러 대안들도 제안했습니다. 공항 노조가 있다면 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습니다. 심사관은 제가 말하는 모든 걸 들었고 저의 예매 계획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확실히 듣지는 못했지만 제가 대화를 끝내길 바라고 있었습니다. 전화를 끊은 뒤 저도 그에게 말로 대응했는데 왜냐하면 그의 오만함은 차치하더라도 그가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여러 대안을 찾고 계획을 세우는 걸 원치 않는 듯 보였기 때문입니다. 저는 자리로 돌아와 다른 두 명의 네팔 남자들과 간단히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러고는 쉬려고 했으나 잠은 오지 않았습니다.

아침 6시30분에 저는 새로 당번을 서고 있던 또 다른 심사관에게 앞서 말했던 두 명의 심사관을 불러달라고 했습니다. 그는 화난 (또는 적대적인) 기색이었지만 뭐가 필요하냐고 물어봤습니다. 저는 제 변호사랑 얘기해야 하며 탄원서를 제출하려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다른 심사관이 얘기해줄 때까지 제 케이스의 심각성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는 제가 “5J” (그들은 제가 타고 온 항공편 이름을 제 케이스의 약어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라는 걸 모르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에게 제가 탄원서를 제출할 계획이며 따라서 변호사와 통화해야 하며 아침 (5월1일 오전 7시)에 떠나길 원치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저 또는 제 변호사가 법무부에 전화하기만 하면 된다면서 번호 (032-740-7262)를 줬습니다. 그는 이곳에서는 전화를 걸거나 받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저는 화가 나서 그의 이름을 물어봤습니다. 그는 제가 왜 이름을 알아야 하냐고 했습니다. 그때 한겨레신문사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그는 자신은 정태우라고 하면서 전화를 받았습니다. 심사관이 대답하는 내용으로 볼 때, 기자는 제가 대기실에 있는지를 물었고 몇 가지 추가 질문을 하는 듯했습니다. 심사관은 기자에게 저에게 주었던 전화번호와 똑 같은 전화번호를 일러줬습니다. 그 심사관은 제가 돌아가려고 하자 저를 다시 불렀습니다. 그는 제 변호사 번호를 묻더니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런 다음 저에게 떠나기를 원치 않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원치 않는다고 답하면서 탄원을 제기할 때까지 대기실에서 기다릴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탄원이 기각된다면 예매를 조정할 의사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 대화가 어떤 식의 효력을 발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나중에 그는 가까스로 제 변호사와 얘기했고 그녀가 실제로 해결책을 찾으려고 사람들과 접촉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제가 (추방을) 거부할 권리가 있지만 그렇게 되면 경찰들이 개입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는 제가 법을 위반한 게 아니기 때문에 법적으로 그들이 공권력을 사용할 근거는 없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럼에도 경찰의 도움을 받을 여지가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경찰서나 감금실에 붙잡혀있을 용의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그럴 가능성은 없다고 했습니다. 경찰의 역할은 그저 실력을 행사하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괜찮다고, 그 결과를 받아들일 의사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는 이주노조 자원활동가의 전화를 받았고 저에게 전화를 넘겨주었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7시30분께 추방될 예정이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저의 출국 거부 의사가 어떤 식으로든 참작될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몇 분 뒤, 심사관이 두 명의 경찰과 함께 들어왔습니다.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둘러보면서 저를 찾는 듯 보였고, 두 명이 더 따라 들어왔습니다. 몇 분 뒤에 지난 밤에 사무소에서 보았던 또 다른 심사관이 들어왔고, 남녀 각각 한 명의 항공사 직원도 따라 들어왔습니다. 그는 자신이 세부 파시픽에서 일한다고 밝혔고 거만한 손짓으로 일어나서 따라오라고 했습니다. 그는 다른 심사관처럼 저를 위협하고 욕설을 했습니다. 저는 따라가기를 거부한다고 밝혔지만 그들은 계속 언어 폭력을 행사했고 이민국이 이미 입국을 거부했으니 떠나야 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계속해서 정당한 절차를 밟을 권리가 있으며 입국과 관련해 아무런 법도 위반하지 않았고 정당한 절차 없이는 떠나기를 거부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들은 그저 저는 한국인이 아니라고만 말했습니다. 그리고 저의 권리 따위엔 관심 없다고 말했습니다. 심사관은 그들에게 저를 끌어내라고 지시했습니다. 저는 만약 무력으로 저를 끌어낸다면 그와 항공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것이며 탑승객을 강제하는 건 그의 권한 밖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항공사 직원이 아닌 정부관계자 행세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 항공사 직원에게 출입국사무소에서 일하고 있냐고 물었고 그는 항공사 소속임을 숨긴 채 공항에서 일한다고 둘러댔습니다. 저는 그에게 탑승객의 동의 없이 항공편 스케줄을 바꾸는 건 그의 권한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답변은 “당신은 한국인이 아니다, 당신은 지금 한국에 있다”가 전부였습니다. 저는 제가 한국인이 아니라도 권리가 있기 때문에 그건 문제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에게 당신들도 당신들 원칙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제가 5월2일 오후로 항공편을 조정한다면 뭐가 달라지냐고 물었습니다. 탄원이 기각된다면 기꺼이 떠나겠다고 말했습니다. 탄원을 할 기회가 필요할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어딘가로 전화를 했고 저는 다음 비행기가 5월3일에 있다는 걸 엿들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바로 끼어들어 5월3일도 괜찮다고 말했습니다. 일이 벌어지는 동안 경찰들은 당번인 심사관으로부터 제가 트렌스젠더이지만 법적으로는 생물학적 여성이기 때문에 물리적 접촉은 불법이라는 경고를 들은 터라 지켜보는 것밖에 아무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또한 적법 절차 없이 무력으로 저를 끌어내는 건 불법이라고 계속 경고했습니다. 저의 권리를 침해한다면 인권위에 항의서를 제출할 의사가 있음을 말로 표현했습니다.

4월30일 밤에 제 케이스를 다뤘던 심사관 중 한 명이 나중에 나타났습니다. 그는 저에게 도대체 얼마나 더 결정사항을 설명해야겠느냐고 말했습니다. 저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그들의 결정이 정당한 건지 믿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저는 또한 그가 지난 밤에 제가 하고자 하는 일을 다 할 수 있다고, 예를 들어 출국 일정을 5월2일로 옮기는 등의 일을 할 수 있다고 한 건 어떻게 된 거냐고 물어봤습니다. 저는 제 권리를 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그들에게도 권리가 있다고 응수했습니다. 저는 무력을 남용하는 건 권리가 아니며 그들 또한 법을 따라야 하고 같은 법의 적용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계속해서 저를 위협했고 경멸적인 언어를 사용했습니다. 일어나서 가방을 매고 비행기를 타라고 계속 명령했습니다. 저는 앉은 채로 차분하지만 단호하게 거부했습니다. 정확한 이름을 알 수 없는 심사관이 경찰들에게 저를 끌어내라고 계속 지시했지만 다른 심사관이 그건 위법임을 상기시켰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만약 손 하나라도 댄다면 제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며 그렇다면 법적인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밤에 만난 심사관들 가운데 직급이 높아 보이는 심사관은 계속해서 “인권이 뭐야?”, “당신을 이해할 수 없어!” (인권) “상관 안 해!” 같은 말로 빈정댔습니다.

여성 경찰이 없었기 때문에 공권력 개입은 그들에게 불가능했습니다. 이쯤 되자 4~6명의 경찰관이 대기실을 드나들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여성 경찰을 불러왔습니다. 저는 그 고위급 심사관으로부터 자발적으로 움직이라는 마지막 경고를 들었습니다. 저 또한 그들에게 실력을 행사하는 것은 인권 침해이자 위법이며 인권위에 항의할 것이라고 마지막으로 경고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이 모두 저에게 일어나라고 명령했지만 저는 거부했습니다. 저는 가방을 지지하기 위해 두 발을 카트에 집어넣고 단단히 팔짱을 꼈습니다. 여성 경찰관 한 명이 들어왔습니다. 그러자 고위급 심사관이 비행기를 지연시켰다며 저를 비난했습니다. 저는 비행기를 지연시키라고 한 건 그들이지 제가 아니기 때문에 제 잘못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두 명의 여성경찰관이 더 들어왔고 경고를 계속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실력을 행사하라는 허락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건 그들의 선택이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움직이길 거부했기 때문에 두 명의 여성 경찰관이 저의 팔꿈치를 잡고 억지로 일으켜 세우려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고위급 심사관이 제가 발 밑에 두고 고정장치로 사용하던 카트를 폭력적으로 끌어냈습니다. 이때 세 번째 여성 경찰관이 제 뒤에서 손을 뻗어 제 바지 끝을 움켜쥐었습니다. 이번에는 저를 강제로 끌어내 제 자리에서 들어 올려 바깥으로 끌어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저에게 가해질 폭력을 피하고 제가 폭력적이었다고 그쪽에서 주장할 여지를 주어 상황을 악화시키지 않기 위해 무력으로 저항하지 않는 편을 택했습니다. 고위급 심사관이 협조해서 고맙다고 했지만 저는 절대로 협조하는 것이 아니며 여전히 비행기에 오르길 거부한다고 응수했습니다. 저항의 신호를 보이자 그들은 잡고 있던 손에 더 단단히 힘을 주었습니다. 4~6명의 경찰관이 교대로 대기실을 드나들었습니다; 대기실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포함해 약 7명의 심사관이 있었습니다; 대기실에서 일하는 심사관을 포함해 4명의 여성 심사관이 있었습니다; 1명의 남성 항공사 직원이 있었고; 1명의 여성 항공사 직원이 있었고; 심사관인지 항공사 직원인지 제가 식별할 수 없었던 2명 또는 3명의 여성들이 있었습니다. 어느 시점에서 18명에서 21명의 경찰관과 심사관이 저를 둘러싸고 있었다고 추정합니다. 대기실엔 CCTV가 설치되어 있었으므로 영상을 검토한다면 이를 실증할 수 있습니다. 이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제가 플랫폼에 다다를 때까지 따라왔습니다.

가는 길에 한 명이 제게서 펜을 앗아갔습니다. 그 펜을 다시 가져와 제 주머니에 넣으면서 저는 제가 폭력적인 사람이 아니며 폭력을 행사하려는 어떤 의도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 여성 심사관은 그들이 실력을 행사할 것을 허락 받았으며, 이런 처우를 받을 수 있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저는 어떻게 이게 다행스런 일이라며 되물었습니다. 비자는 취소되고 인권은 침해당했으며, 정당한 절차 없이 추방당하는 게 어디를 보아 행운이란 말입니까? (저는 그녀가 물리적 안전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라고 생각은 하였으나 무시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녀는 제게 조용히 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저는 당신은 이제 사람들이 한국 출입국관리소가 형편없음을 알게 되는 게 싫어서 저보고 조용히 하라고 하는 거라며 더 큰 목소리로 응수했습니다. 그녀는 제가 출입국관리소에 대해 한 말을 기억해두겠다고 했습니다.

심사관 가운데 한 명이 우리가 많은 승객들과 행인들의 주목을 받아왔음을 지적했습니다. 다수의 심사관과 경찰들, 그리고 항공사 직원이 단 한 명의 승객과 함께 움직이고 있는 모양새였기 때문에 우리 일행은 많은 주목을 받았습니다. 게이트에 도착하자 그들은 저에게 항공사의 확인서에 사인하라고 요청했습니다. 특정한 날 (5월1일)에 떠나는 것은 제 의사에 반하는 일이므로 사인을 거부했습니다. 그들은 사인이 필수라고 말했습니다. 약간의 토론과 출입국 쪽의 확인을 거쳐 그 서류 절차는 생략되었습니다.

플랫폼에서 그들은 제 여권을 대기실에 놓고 왔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들은 그냥 비행기에 탈 것을 두 번 종용했고 저는 여권 없이는 더더욱 타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기다리는 동안 저는 되도록 많은 관련자의 이름을 알아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들은 제가 자신들의 이름을 적고 있다는 걸 눈치채고는 아이디를 숨겼습니다. 제 나쁜 시력과 시야를 가리는 각도 탓에 그들의 이름을 정확히 알아내는 데 실패했습니다.

상당한 시간을 기다린 끝에 여권이 도착했고 승무원에게 넘겨졌습니다. 저는 비행기의 뒤쪽에 앉혀졌고 세부 파시픽 5J-190 항공편으로 약 1시께 마닐라에 도착했습니다. 여권은 저에게 바로 넘겨지지 않고 필리핀 이민국으로 넘어갔습니다. 이민국에서 저는 간단한 인터뷰를 했고 사건에 대해 서면으로 진술서를 낼 것을 요청받았습니다. 폼을 작성하고 진술서를 쓴 뒤에야 여권을 손에 넣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대기실에서 저를 괴롭힌 세부 파시픽 직원에게 정식으로 진정서를 제출했습니다. 나중에 그들이 인천에서 컴퓨터/승객 관련 업무를 처리하도록 세부 파시픽과 파트너십을 맺은 대한항공 직원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주제
차별 이주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