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 위기가 5년째 지속되고 있지만, 회복의 기미는 보일 듯 말 듯 하고 한쪽에서 겨우 땜질해 놓으면 다른 쪽에서 터지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일부 경제는 오히려 더 심각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 유럽 경제 위기가 날로 심각해지고 있고 유럽 지배자들은 스페인이 다음 희생양이 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지금까지 경제 위기가 주로 선진국에서 벌어졌다면, 이제는 중국을 포함한 신흥공업국 경제들로 확산되고 있다. 중국이 세계경제 위기의 구원자가 될 수 있을까 하는 논의가 자취를 감추고, 부동산 거품 붕괴와 수출 감소로 중국이 세계경제를 나락으로 빠뜨리는 또 다른 뇌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퍼지고 있다. 

《좀비 자본주의》, 크리스 하먼 지음, 이정구ㆍ최용찬 옮김, 책갈피, 2만 4천 원, 5백60쪽 ⓒ사진 책갈피

세계경제 위기가 처음 터졌을 때 주류 경제학계는 ‘멘붕’(정신적 공황) 상태였다. 최근에서야 주류 경제학계에서 소수의견을 제시하던 사람들의 책들이 여기저기서 출판되고 있다. 그중 하나가 하버드대 교수인 케네스 로고프가 쓴 《이번엔 다르다》인데, 이 책에서는 과거 국가재정 위기와 금융공황에 관한 유용한 몇 가지 사실들을 알려주지만, 왜 ‘이번엔 다른지’를 찾아볼 수 없다. 

최근 영국의 〈이코노미스트〉가 설문 조사한 세계경제 위기 이후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학자 1위에 선정된 라구람 G. 라잔의 《폴트라인》도 마찬가지인데, 그는 이번 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은 점점 악화하는 미국의 소득 불평등 때문이라고 지적하지만, 정작 그런 소득 불평등이 어디서 왜 비롯했는지는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그는 기껏해야 금융개혁을 단행해 시스템 리스크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할 뿐이다.

좌파 진영에서 나온 책 중에는 김수행이 쓴 《세계대공황》과 존 벨라미 포스터가 쓴 《대금융위기》가 눈에 띈다. 그런데 둘 모두 마르크스가 자본주의 위기의 핵심 원인으로 지목한 이윤율의 저하 경향을 이번 위기의 근본 원인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김수행의 《세계대공황》은 2007년에 시작된 위기와 이에 대처하는 미국 지배자들의 대응이 서민에게 피해를 주는 방식(이른바 ‘손실의 사회화’)이라는 점을 잘 폭로하지만, 자본주의의 근본적 모순과 연결시키지 못하고 있다. 포스터의 《대금융위기》는 실물 부문의 이윤율 하락이 아니라 자본의 금융화가 문제라는 관점을 취하고 있다.

금융화

반면 이번에 출간된 크리스 하먼의 《좀비 자본주의》는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분석에 기초해 자본주의 체제의 동역학을 설명한다. 또, 이를 마르크스 사후 자본주의의 전개 과정에 일관되게 적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최근의 여러 저작들과 차별성을 지닌다. 하먼은 “이 체제를 제대로 설명하려 한 중요한 분석 전통은 단 하나뿐”이라고 단언하는데, 그것은 바로 마르크스주의 전통이다. 

하먼은 자본주의란 “스스로 팽창하는 체제일 뿐 아니라 경제 위기와 이윤율 저하 압력에서 드러나는 모순된 힘의 상호작용을 바탕으로 팽창하는 체제”이며 이 체제가 “팽창과 동시에 생산력이 크게 성장할 뿐 아니라 이런 생산력이 파괴력으로 변모해 사람들의 삶을 파탄 내기도 하는” 모순적인 체제라고 설명한다. 

이런 마르크스주의적 설명은 모든 주류 경제학파(정설파이든 이설파이든)와 다른 점이다. 하먼은 이 때문에 21세기의 자본주의를 분석하려면 마르크스의 설명을 토대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먼은 마르크스의 경제 위기 설명이 당대의 주류 경제학자들보다 훨씬 앞선 것이었다고 지적한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주류 경제학은 1930년대에야 경제 위기를 진지하게 연구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자유시장 경제학의 중시조라 할 수 있는 하이에크조차 “경기순환을 설명할 수 있는 사상을 소개한 사람이 마르크스”라고 인정하면서, 자신의 선배인 “뵘바베르크의 이론은 경기순환 문제를 다룰 때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고 실토할 정도였다.

《좀비 자본주의》의 앞부분은 마르크스의 경제학 개념들을 설명하고 있는데, 마르크스주의를 잘 모르는 초심자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쓰였을 뿐 아니라 오늘날의 예들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 이 책의 장점 중의 하나다. 

자본주의에서 금융이 어떤 구실을 하는지에 대한 하먼의 설명이 그 한 예다. 이번 위기를 금융위기로만 이해하는 사람들은 마르크스가 금융의 구실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었는지 그리고 금융이 생산과정과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를 잘 봐야 한다. 

하먼이 소개한 마르크스의 주장은 이렇다. “신용 제도는 생산력의 물질적 발전과 세계시장의 확립을 촉진하지만” 그와 동시에 “자본주의 생산의 동기, 즉 다른 사람의 노동을 착취해서 재산을 늘리는 일을 가장 순수한 형태의 도박과 사기로까지” 발전시킨다. 

그래서 금융은 “생산과정이 그 자본주의적 한계를 뛰어넘게” 만든다. 그러면 그 결과가 다시 생산 자체에 영향을 미쳐 “과잉거래, 과잉생산, 과잉신용”이 나타난다. 포스트케인스주의 경제학자들은 하이먼 민스키를 이번 위기를 가장 잘 설명한 경제학자로 묘사하지만, 마르크스가 그의 핵심 논점을 이미 1백 년이나 앞서 주장했던 것이다.

《좀비 자본주의》가 지닌 또 다른 장점은 마르크스 사후에 나타난 독점, 제국주의 전쟁, 국가 문제에 대해 고전적 마르크스주의 관점을 확대하고 발전시켰다는 점이다. 제4장과 제5장은 양차 세계대전과 대공황이라는 자본주의 격동기에 대한 설명뿐 아니라 이 시기를 살았던 혁명가들의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해석과 논쟁 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다. 

제2부와 제3부에서 하먼은 전후 자본주의의 역사를, 트로츠키의 말처럼 들숨과 날숨을 쉬듯 확장과 수축을 거듭하면서 점차 노후화하는 과정으로 묘사한다. 

하먼은 주류 경제학에서는 난제(難題)로 여기는 1929년 대공황의 발생과 그 원인, 1930년대의 세계체제 위기에 대한 소련식 변종, 전후 장기호황의 기초가 된 군비경제, 장기호황의 종말, 소련의 붕괴, 일본의 부상과 몰락 등의 현상들을 자본주의 체제의 동역학에 기초해 설명함으로써 마르크스주의의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파노라마

크리스 하먼의 책을 보고 있노라면, 마르크스가 살았던 시대 이후의 역사가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가면서 그 고비마다 속살을 드러내고 있는 자본주의 체제의 역동성과 모순이 피부에 와 닿는다. 하먼의 또 다른 역작인 《민중의 세계사》를 읽은 독자라면 《좀비 자본주의》에서도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시각과 예리한 분석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하먼이 남긴 마지막 저작이기도 하다. 《좀비 자본주의》 영어판이 출간된 지 4개월 뒤인 2009년 11월 그는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하먼이 말년에 심혈을 기울여 저술한 이 책은 그래서 그 의미가 남다르게 느껴진다.

이 책이 지닌 가장 중요한 값어치는 자본주의 체제를 변혁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이론적 무기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하먼은 이 책의 말미에서 “그런 일(자본주의 체제의 변혁)이 일어나려면, 자본주의를 탐구하는 사람들이 자본주의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이 벌이는 운동의 필수적 일부가 돼야 한다.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런 운동이 없다면 이번 세기가 끝날 때까지도 다수의 사람들은 이 참을 수 없는 세계에서 계속 살아가야 할 것이라는 점이다” 하고 지적했다.

《좀비 자본주의》에서는 평생을 체제 전복을 위해 살다간 한 혁명가의 치열한 고민의 흔적을 볼 수 있다. 비록 세상을 떠났지만 그는 반란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 책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랐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