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미국을 추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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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시장을 수용한 것은 제3세계 나라들이 따라야 할 모범 사례로 인용된다. 크리스 하먼이 이 과장광고에 숨겨진 현실을 파헤친다.
중국이 미국을 추월할까?
중국이 세계 경제 발전을 둘러싼 논쟁의 화두로 갑자기 떠올랐다. 이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중국은 20년 넘게 경제 성장이 지속돼 왔으며, 1990년대 말 동아시아의 다른 신흥 공업 경제들을 강타한 불황도 겪지 않았고, 지금은 세계 최대의 철강 생산국이다. 중국의 수출이 세계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980년 약 1.2퍼센트에서 오늘날 약 5퍼센트
이런 성장 때문에 지금 중국에 대한 외국 자본 투자가 급속히 증가하고 있으며, 그래서 미국은 같은 북미자유무역지대
중국이 세계 시장에서 성공한 것은 시장 자본주의의 고전적 기구들―주식 시장, 산업의 성공을 이윤 잣대로 측정하기, 외국인 직접 투자의 자유 보장 등―을 많이 도입한 것과 일치했다. 이것은 많은 좌파가 갖고 있던 신념
이 점을 포착한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그들은 시장을 수용한 중국이야말로 다른 제3세계 나라들이 따라야 할 모범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에는 세가지 주된 결함이 있다.
이것은 진정한 의미의 사회주의와 아무 관계도 없었다. 대다수 국민이 굶주림에서 벗어낫다고 할 수 없는 아주 가난한 나라에서 국민소득의 약 30퍼센트가 공업―흔히 매우 비효율적인―과 국방을 건설하는 데 들어갔다. 주민 대중에게 떠넘겨진 부담은 엄청난 것이어서, 그것이 최고에 이른 1950년대 말의 “대약진” 기간에는 기근으로 약 2천만 명이 사망했다. 그런 부담을 강요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온갖 전체주의적
국가자본주의
그런 공포에 기초한 중공업 성장이 없었다면, 1970년대 말 이래로 중국 수출 산업의 성공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중국의 수출 산업들을 좌우한 것은 동부와 동남부 연안 지역의 새로운 사기업들
둘째, 중국식 “발전”을 찬양하는 신자유주의자들은 그 불균등성
그래서 중국사회과학원 소속 연구원 유지안롱이 작성한 보고서는 이렇게 말한다. “도시와 농촌의 관리들은 권력을 직접·간접으로 이용해 사리사욕을 채우고 뇌물을 받고 공갈·협박을 일삼고 향응을 제공받는다. 그 때문에 관리들과 민중 사이에 긴장 관계가 조성되고 있다.”
허난성
일부 관리들은 경제 성장으로 창출된 부의 일부가 농촌으로 흘러 들어갈 것이므로 전체 빈곤 수준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농업부 연구원 장샤오후이는 어떻게 “냉장고·TV·에어컨·휴대전화 등 내구재에 대한 농촌의 1인당 평균 지출이 지난해에 33퍼센트 증가해 89위안이 됐는지” 얘기한다.
이를 보면, 서구식 생활과 사치품에 점차 익숙해지는 중간계급 이미지들에도 불구하고
불균등 발전
거기서 그들은 또 다른 3천만 명의 도시 실업자들과 취업 경쟁을 벌인다. 이 수치는 하락할 조짐이 안 보인다. 낡은 중공업들의 효율을 증대시켜 새로운 수출 산업들을 위한 생산요소를 창출하기 위해 그런 낡은 중공업에서 인력을 감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상황을 잘 보여 주는 사례는 페트로차이나
다른 산업들이 성장함에 따라 창출되는 새로운 일자리의 압도 다수는 심각한 빈곤과 비교했을 때만 매력적으로 보인다. 도시 실업자와 대다수 농민은 바로 그런 심각한 빈곤에 처해 있다. 그래서 예컨대 11만 명을 고용하고 있는 신발회사 푸첸이 노동자들에게 지급하는 대가는 겨우 “월급 약 59파운드
농촌 빈곤, 실업, 사양 산업의 인력 감축, 저임금은 중국식 “모델”의 우연적 특징이 아니라 핵심적 특징이다. 생산량 증대가 축적률에 좌우되는 정도는 지령 경제의 전성기보다 지금 훨씬 더 크다.
계산에 따르면, 국민소득의 40퍼센트가 “저축”된다. 즉, 소비되지 않고 이런저런 종류의 투자로 전용된다. 이것은 대다수 국민의 생활수준을 최대한 억제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수백만 달러를 소유한 부자들의 수가 몇 곱절 늘어나고 중간계급 일부가 처음으로 서구식 소비재를 이용할 수 있게 됐는데도 말이다. 마르크스 당시의 영국과 마찬가지로,
중국식 “모델”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이것이 일시적 현상이라고 주장한다. 경제가 더 성장하면 농민들이 현대적 부문으로 유입될 것이고 그 부문의 임금도 국민총생산의 증대와 함께 증가할 것이라고 한다. 사실, 그들은 중국의 막대한 소비재 수요 덕분에 여전히 가난한 다른 아시아 지역들이 똑같은 산업화 경로를 추구할 수 있는 시기가 올 것이라고 예견한다. 그들은 중국의 성장이 먼 미래까지 평온하게 계속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그들의 세번째 오류다. 그런 식으로 중국의 성장이 평온하게 계속될 것이라는 보증은 결코 없다. 사실, 중국식 모델에는 여러 요인들이 내재해 있고, 세계체제와 그 모델이 결합되면서 그런 전망의 실현 가능성은 희박해진다.
그 모델은 축적 수준에 달려 있는데, 그 축적 수준은 쉽게 지속될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포기해 버릴 수도 없다. “새로운” 산업들의 역동성은 생산설비를 확장하기 위해 중국 기업 상호 간에, 그리고 외국 기업들과 미친 듯이 경쟁하는 것에 기초하고 있다.
당장은 이 덕분에 중국의 수출이 증대하고, 국내적으로 중간계급의 부유한 부문이 이용할 수 있는 소비재가 급속히 증대하게 된다. 그래서
그러나 고전적 자본주의 호황에서 그랬듯이, 심각한 문제들이 표면 바로 아래 숨어 있다.
과잉생산
첫째는 지속적인 과잉생산 경향이다. 축적을 위해 임금과 농민 소득을 억제해야 하고, 이 때문에 국내 시장이 급속히 확장되지 못하고 있는데도, 서로 경쟁하는 기업들은 생산설비를 증설하고 있다.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중국 제조업 제품의 90퍼센트가 공급과잉 상태다.” 중국 정부 관리들은 “부동산, 시멘트, 철강, 자동차, 알루미늄을 포함해 많은 부문들이 과잉투자 상태”라고 불평한다.
기업들은 가격을 대폭 인하함으로써 소비재 과잉생산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중국 기업들 사이에서 가격 전쟁이 특히 격렬한 이유는 경쟁 업체들이 단기 수익성의 개선을 추구하지 않고 흔히 시장 점유율을 높이려 하기 때문이다. … 무자비한 공급 경쟁 때문에 많은 현지 기업들은 매출 이익이 거의 제로에 가깝다.…”
많은 수출품의 수익성도 별로 높지 않다. 해외 시장에서 중국 기업들이 더는 한국 같은 기존 공업국들의 고가 제품과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중국 기업들의 저가 제품들과 경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더 값싼 중국산 전기제품들의 소매 가격이 하락한 것이 그런 사례다.
과잉생산 경향과 동시에, 노동집약적 기계설비류 투자가 아니라 자본집약적 기계설비류 투자가 지속된다. “흔히 기업들은 노동자를 고용하고 훈련시키는 것보다는 기계화에 돈을 쓰는 것이 더 싸게 먹힌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 결과는 최근 몇 년 동안 국내총생산
다시 말해, 시장의 한계까지 생산이 증대함에 따라 노동 대비
그러나 이것은 은행 자체에 대한 문제들을 제기한다. “부실 대출”이 GDP의 20∼45퍼센트나 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정부는 은행 파산을 막기 위해 개입할 수 있고 십중팔구 그렇게 할 것이다. 그러나 그 비용은 정부의 수입을 막대하게 잠식할 것이다.
해외 판매 신장은 수익성에 대한 압박을 덜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러나 그것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중국 정부가 무역수지 흑자 때문에 중국 통화인 위안 화의 가치를 절상하지 않고 그럼으로써 제품의 가격이 낮게 유지되는 데 달려 있다. 미국 정부가 요구하는 위안화 절상은 중국 수출품의 가격을 인상시킬 것이고 중국 국내에서 생산된 제품보다 해외 수입품의 경쟁력을 더 높일 것이다.
이것은 달러화 가치를 높게 유지시키고 자국 통화 가치를 낮게 유지하기 위해 미국 금융기관들에 거액을 대출함으로써 필사적으로 산업을 확장하고 공업화를 달성하는 데 혈안이 된
중국은 안정된 성장의 길을 가고 있기는커녕, 그 지배자들은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줄타기는 부분적으로 미국 정부의 또 다른 줄타기에 달려 있다. 미국 정부는 중국과 여타 동아시아 나라들의 자금을 계속 끌어들여 달러화 붕괴를 막으려고 노력하는 한편, 미국 제조업자들의 처지를 개선하기 위해 중국 정부에 위안화를 절상시키라는 압력을 넣고 있다.
줄타기가 혹시 효과를 낼지도 모른다. 1990년대 초와 1990년대 말에 중국의 경제 위기가 임박했다던 무서운 예언들
그러나 제 정신이 있는 사람이라면 중국에 유리한 결과가 무한정 계속될 것이라고 장담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자본주의의 호황이 붕괴하면 항상 끔찍한 불황이 찾아오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일이 결코 일어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지금처럼 위기가 지속되는 국면에서조차 자본주의에는 역동성이 존재한다. 경쟁의 결과 일부 자본들은 ― 가끔은 뜻밖에 ― 성장할 수 있고, 다른 자본들은 마찬가지로 뜻밖에 쇠퇴할 수 있다. 그러나 역동성은 체제 전체에 균형 성장이 아니라 불안정을 일으키고, 이것이 이번에는 갑작스런 정치·사회 위기로 돌변한다.
다른 한편, 경제 성장 때문에 노동계급이라는 사회세력의 규모가 커지고 있다. 이들을 두려워한 중국 정권은 1989년 천안문 광장에서 학생 시위를 그토록 잔인하게 진압했었다.
지난 몇 년 동안 낡은 산업뿐 아니라 새로운 산업에서도 빈발한 파업들은 그 세력이 옛 국가자본가들과 그들의 사적 자본가 후손들 모두에 대항하는 독자적 투쟁 전통을 발전시키기 시작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